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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6)...제주도와 육지가 버무려져 더 맛깔스런 볶음

‘무조건’은 ‘절대’의 뜻으로 말하곤 하지만
‘무턱대고, 덮어놓고’의 의미를 더 갖고 있다.
‘제주도, 무조건 오지마라’는 좋다, 살고 싶다, 라는
순간감정만으로 오지 말라는 말이다.
‘따져보고 오라’의 반어이다.
단, 따져보지 않고 떠나온다면
후회, 회한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볼수록 더 쏙 맘에 차오는 곳이 바로 제주도다.
그 뒤, ‘무조건’ 제주도를 즐겨도 늦지 않다.
무언의 제주도는
당신의 순수한 가슴을 받아들이고자 그 풋풋한 두 팔을 벌리고 이 자리 그대로 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성 빅토르의 휴고「디다스칼리온」중에서

 

귀소본능이라고 하나요? 가까이에는 세상에 나오기 전 9개월 간 있었던 어머니의 자궁을, 멀게는 원시시대의 옛 조상들이 살았다던 동굴을 우리 몸은 잠재의식 속에 품고 있다고 합니다. 연어든 송어, 철새들만이 아니라 바다 속의 게들도 가지고 있는 이 본능을 사람이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순 없을 것입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날진대... 갇혀있거나 고립되면 이래서 불안해한다지만 일상생활에서도 귀소성을 스스로 요구할 때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 때는 불안보다는 오히려 안정과 평온을 느끼기도 한다는데, 고독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립과는 다른 것이긴 하지만, 짧든 길든 혼자이고 싶다는 고독을 즐기면서 때론 고립을 자초하곤 합니다. 어렸을 때 경험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이불장롱 속 어두운 곳에 처박혀 있다가 잠들었던 때, 책상 밑이나 짐칸 사이에 끼이듯 들어가 꼼짝 않던 때입니다. 거의 누구나 경험했을 겁니다. 연어나 게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도의 자연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이는 성향으로 이러한 고립성의 즐김도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가함과 한적함도 이러한 성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섬에서 살고 싶다’에는 속세와의 단절과 더불어 자기에로의 몰입이 함께 들어있음에 이것 역시 귀소본능 같은 게 아닐까요. 우리는 참으로 번잡하고 번거롭고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곳을 우리의 삶의 터로 알고 어찌 됐든 그 속에서 복작거리며 나다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의 도피로, 일탈로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 삶의 터전을 몽땅 버리고 떠날 수는 없기에 짧은 시간만을 떼 내어 속세의 저자거리를 벗어나 봅니다. 이러다가 좀 더 용기를 내어 그 기간을 연장해 보려하는데, 이래서 선택한 곳이 제주도라면, 당신은 지금 꽤나 혼자이고 싶거나 적어도 둘만 있고 싶거나... 고립에로의 귀소성과 자기에로의 천착을 고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깜깜한 동굴 속으로 자기 몸을 깊숙이 집어넣고자 하는 욕구는 어쩌면 본능이기에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잠재의식을 자극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이 보태졌을 것입니다. 짧게는 수 백 km, 길게는 수천수만 km를 떠나온 송어나 연어가 당신일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선택이 아니라 가야할 곳으로의 회귀일지도 모릅니다.

 

제주의 한 대학교 교환교수로 1년 동안 제주시에 머물고 있는 K씨는 의외로 제주도를 돌아다니지 않고 시에만 머뭅니다.

 

“혼자인 것만으로도 좋잖아요?”

 

혼자 힘들지 않느냐? 아내가 종종 넘어오느냐? 서울은 자주 가느냐? 의례적인 질문에,

 

“아내도 자기생활을 해야지요.”

 

아내가 아닌 자기의 시간을 고집하는 말입니다. 참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해가 됩니다. 곧 교수직도 그만 둘 나이에 접어든 장년의 그는 교내의 원룸에 거의 박혀 제주도에서의 1년 휴가를 다 보내고 있습니다.

 

“올레길이 문제가 있더군요. 바다만 끼고 마냥 걸으니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같이 걷자하던 내 제안을 뿌리치고 그는 그의 자궁, 동굴 속으로 삼다수물만 잔뜩 사들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를 보며 나도 늙어가는 것을 봅니다.

 

바닷가가 가까운,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소설가의 집이 두 채가 있습니다. 하나는 몸까지 다 옮겨와 살고 있는 P씨의 집이고, 또 하나는 여러 개 중에 하나인 Y씨의 별장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엇비슷합니다. 유명세로 보면 Y씨가 훨씬 앞서서 돈도 꽤나 벌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큰 식당을 꾸려나가니 소설가라기보다는 사업가인 것이지요. 예순이 넘은 P씨는 손님의 것까지 받은 오줌을 썩혀 거름을 만들어 작은 마당의 채소를 가꾸는 텃밭가꾸기에 재미가 쏠쏠하다며 방금 거둬온 순자연산 푸성귀들을 반찬으로 내놓습니다.

 

“언제 내가 직접 요리해보고 살아봤나? 근데 해보니까 요리도 아주 재밌네. 뭐 어려울 것도 없고, 있는 것 가지고 버무리고 이것저것 넣어서 끓이고 하면 되거든. 요리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가르치느니 배우느니 야단인지 모르겠네.”

 

지금의 유기농삶이 소설의 소재가 되고 있다며, 삶이 글 소재까지 바꿔준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이런 중에도 바지런히 글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바다며 동네며 매일 마실로써 제주도를 즐깁니다. 이런가 하면, Y씨의 별장은 언제나 문이 닫혀있습니다. 위미항에 정박해 있는 두 개의 호와 요트와 같습니다. 좀 더 큰 하나는 H그룹 회장의 것이고, 조금 작은 또 다른 하나는 종교인의 요트라는데, 바다에 떠있는 요트가 마치 아파트처럼 붙박이로 늘 서 있는 것에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Y의 별장이 그렇습니다. 두 소설가의 집에서 느끼는 소회는 제주도 즐기기의 다른 두 가지 성향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며 사는 게 즐거움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이나 요트 등 부동산을 고정시켜놓으며 사는 게 즐거움일 수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어서 사이클선수였다는 70세에 가까운 여성이 나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자칭 자전거 마니아라고 하는 50세의 승려도 가까운 데 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혼자 사는 사람입니다. 제주도가 자전거 타기엔 아주 그만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전거가 사는 방식도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게 합니다.

 

“아무리 달리기 좋은 곳이라 해도 제주도가 벨로드롬은 아니지 않아요? 이 자전거로도 충분합니다.”

 

나이가 있어 조금은 가벼워야 하니 30만 원 대 알루미늄이 적절하다고 전 사이클선수는 말합니다.

 

“내 취향이 맞는 게 바로 이 자전거입니다. 값은 좀 나가더라도...”

 

스님답지 않은 그의 말에 땡중을 떠올립니다. 그의 방 안엔 비싸다는 자전거보다도 더 값이 나간다는 엄청난 크기의 오디오스피커가 한 면 벽을 다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신도 한 명이 이를 보고, “스님도 병이 깊으신가 봅니다.” 하니, 스님 왈,

 

“올레길의 유명한 식당 웬만한 곳은 다 아니 한번 같이 식사하러가지요.”

 

호의가 역겹게 들리고 모독을 받은 듯한 건 내가 비뚤어져서 일까요? 이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제주도가 좋다지만 꾸려가는 방식은 다릅니다. 제주도를 즐기는 재미도 사뭇 달라 보입니다.

 

부모의 선택에 자녀들은 어떤가 궁급합니다.

 

“아이들 수준이 낮아!”

 

고3학생인 H씨의 아들은 제주도에 온지 3년이 됩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학생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에서 살았다고 하니 환경도 많이 달랐을 것이며, 관심이나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습니다. 자만이며 하대로 보였습니다. 수능시험을 보고 온 날, 아버지에게 아직 무엇을 공부해야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고 성적도 좋지 않으니 군대를 먼저 다녀오겠다고 했답니다. 그것도 해병대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해병대 연예인 따라 지원하겠다는 친구들이 많다며?”

 

그는 버릇없이 들릴지도 모를 대답을 합니다.

 

“어른들은 왜 우리가 뭐 유행만 좇는 애들만 있는 듯이 싸잡아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예의를 갖추지 못한 건 어린 그가 아니라 어른인 나의 선입관이며 단정하려드는 나의 오만이었습니다. 아버지인 H씨가 나중에 하는 말,

 

“내 아들놈이 하는 것을 보면 제주도에 온 걸 아주 잘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무언가 스스로 하려는 자세를 갖게 했으니까요. 서울서 아직 살고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지요.”

 

 

당장은 남보다 뒤떨어질지 모르나 아들의 자립심으로 충분히 만회할 것이라고 아버지는 아들을 신뢰합니다. 이곳 학생들의 수준이 낮다는 이유는, 섬이라는 아주 작은 곳, 자기 지역만 알고 그것이 최고인 양 말하는 제한적 사고 때문이라는 말도 후에 직접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문화나 경제적으로나 소위 제주도 기득권이라는 사람들의 의식엔 스스로를 제주도 안에 함몰시키며 그 안에서 우월의식으로 자위하는 경향이 없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어린 학생의 눈에도 보였던 것이지요. ‘너희들이 뭘 알아?’ 이 의식은 좋든 나쁘든, 고급이든 저급이든 남의 것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이 또한 한국인의 특성인데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걸 제주도에 와서야 알게 됩니다.

 

어떻든, 고립은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여지가 많습니다. 독립이나 자립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물 속의 개구리에겐 제 눈에 보이는 작은 둥근 원이 하늘의 전부일 것이며, 세상은 온통 검은 돌로 에워싸여 있고 그 안의 생물 중에서 자기가 제일 크다는 것을 사실이고 진실인 양 압니다. 바깥 세상에서 나돌다 들어온 맹꽁이가 ‘그렇지 않더라’ 하면 맹꽁이를 바보로 취급해버릴 것입니다. 지나친 비유일까요? 우화가 그렇듯이 비유는 또 다른 비판이요 또 하나의 사랑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 식 제한적 사고는 깨우친 제주도민들이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주도의 올바른 발전을 막고 있다는 지적을 자주 듣습니다.

 

귀소성을 찾아 제주도로 찾아든 사람들 역시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같아지기 시작합니다. 육지 대도시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하던 O씨의 딸은 제주도 와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인 연극이나 영화에 고등학교 졸업장은 필요없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 엄마인 O씨도 ‘맘대로 하라’했다고 합니다. 오빠 역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가 있다고 합니다. 스무 살인 딸은 착해보였고 연극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사이좋은 모녀인 줄 알았던 나는 무척 놀라운 말을 딸에게서 듣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말하는 방목식 교육, 저도 맘에 들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좋았지요. 그런데 몇 년 지나고나니 엄마의 방목은 목동 없는 방목이었습니다. 내버려둔 것도 버림입니다. 엄마는 제주도의 거물들을 만나고 다니며 매일 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니 그 삶이 만족스러운가본데, 딸이 보는 엄마의 생활은 한 마디로 말하면 무책임입니다. 적어도 우리 두 남매에 대해서는요. 늘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웃는 듯이 살던 엄마가 집에만 오면 우리에겐 말이 없어요. 우울증 같아요.”

 

밖에선 자신만만한 O씨는 이래서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을 모릅니다. 제주도에 온 햇수로 보면 H씨나 O씨나 비슷합니다. 나이도 얼추 비슷합니다. 아이들의 나이까지 비슷합니다. 자식교육에 관한 한 같은 것은, ‘자유롭게 키우기’이지만 다른 것은 대화에 있습니다. 한쪽은 대화가 거의 없고 한쪽은 대화를 아주 즐깁니다. O씨의 딸이 한 말을 다시 되새겨봅니다. ‘목동 없는 방목은 버림과 같습니다.’ 어느 날, 딸은 술 마시고 들어온 엄마를 껴안고 노래를 불렀답니다. 다 듣더니 엄마는 평소 전혀 하지 않던 욕을 하더랍니다. “시끄러, 이년아! 백만 송이 좋아하시네, 씨발!” 엄마는 잠에 떨어져버렸고 이것을 보고 있는 딸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주도에 와서는 안 되는 건데...’ 제주도가 엄마에겐 환각제 또는 진통제일 뿐이었습니다.

 

백만 송이 장미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

 

 

 

오동명은?=서울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부모로 산다는 것]·[신문소습격사건]·[일본자전거여행]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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