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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의 상생교육으로 여는 공감세상(1)

“삭발 끝!” 얼마 전 문자로 보내온 중학생 아들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다.

 

그 전날 정기적으로 행하는 두발검사를 위해 미용실을 다녀온 아들은 더 짧아야 한다며 저녁도 거르고 미용실로 갔다. 그리곤 두 시간 만에 이렇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10여분 뒤 후드 티로 머리를 가리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우리 식구 모두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1970년대로 돌아간 듯, 군 입대하는 듯한 머리 모양을 보고···. 조금 전 아들의 메시지를 애교 섞인 투덜거림인 줄 알았던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우리 아들, 얼굴이 잘 생겨서 짧은 머리도 잘 어울리네”란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두발단속 강화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부모 총회에서 교장선생님께 건의할 것이라는 말들과 함께 1주일 정도 학교와 가정은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의 장 속에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었다. 드디어 학부모 총회가 열리던 날! 아이들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비장한 심정으로 출정한 학부모 어느 누구도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의 확고한 지침에 ‘감히 말 한마디 못 꺼내고 나올 수밖에 없는’ 참패로 일단은 끝을 맺었다.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 두발 자유를 한다고 하는데···우리(학교)는 좀 심한 거 아니에요?”라는 학부모의 ‘애들 편들기’나, “도리어 머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공부도 안 되구요, 머리 자른다고 문제가 안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아이들의 ‘자존심 내세우기’를 보면서 나 역시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래 그렇지”라는 공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소신 있는 교장선생님의 ‘거꾸로 행보’가 어쩌면 요즘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때로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겨울,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 준 중학생 자살사건에 대한 내 나름의 고민 때문이다. 왜? 그리고 무엇이 문제였을까?

 

혹자는 결손가정으로 인한 가정교육의 문제를, 혹자는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한 게임중독을, 그리고 혹자는 학교의 안전보호에 대한 무능력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학교교육이든, 가정교육이든 우리의 교육이 기본과 원칙을 상실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여름쯤인가 보다.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미국 한 소도시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주인이 부모를 따라 오는 아이들이 장난과 소란을 피우는데도 부모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어 다른 손님들의 불평이 제기되자 고민 끝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아이 동반 가족 사절!” 그 동안의 패밀리레스토랑의 이미지 때문에 문 닫을 각오까지 하면서 내린 이 결단은 뜻밖의 성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공중생활에서 타인에게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아이 버릇들이기에 철저했던 미국의 가정교육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곁들여 나왔다.

 

우리나라 역시 갈수록 가정교육은 물론이요, 학교교육에서 정말 중요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상실되고 있다. 나는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이 적어도 ‘하기 싫어도 해야 될 것’과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것과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지킬 수 있으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되어야 하고 ‘공감(共感)’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를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상생(相生)’을 위한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우리는 겉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고 상생을 외치면서도 가정·학교·사회 어디에서도 이를 위한 삶의 기본 원칙을 지켜나가도록 가르치지도, 강조하지도 않는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내 아이 중심주의’에 갇혀 친구에 대한 배려보다 나의 주장을 더 강조하고, 학교에서는 ‘성적 제일주의’에 갇혀 친구와의 협동보다는 경쟁을 조장하고, 사회에서는 ‘잘 나가는 삶’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원칙은 상실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시할 수 있는 삶의 모델은 사라진다.

 

지난 4월11일 총선이 막을 내렸다. 이제 1주일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선거의 긴장과 흥분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 참여했던 우리 유권자 대부분은 여전히 희망 반, 체념 반의 심정으로 복잡하다. 여전히 그들의 인간성이 미덥지 않고 그들의 약속이 공약(空約)이 될 것 같고, 그들의 행보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될 것 같은 불안 때문에 말이다.

 

우리 유권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 개개인이 내건 공약(公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문제, 즉 청년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서민들 울리는 물가를 잡고, 생산과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더불어 보편적 복지사회로 한 발 다가서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대한다.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원칙에 충실한 삶을 보여 줄 수 있는 인생의 모범이 되기를!
 

 

이혜정은?=부산출생.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청소년연구원의 연구원을 거쳐 충북교육개발연구소 특별연구원, 한국지방교육센터 정책1실장을 역임한 청소년교육문제 전문가다. 충북대·청주교대·서원대에서 강의하다 지금은 한남대학교 교무연구처의 교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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