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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공동기획]④ 4·3에 대한 미군정 책임, 물을 수 있나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최근 3년간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연이어 무죄 또는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을 향해 이제야 단 몇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4·3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70여 년 전 제주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규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외치던 시민들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제주를 대학살의 현장으로 이끈 사실이 여러 보고서와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밝히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작업은 아직 미진한 상황.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5차례의 공동 기획보도를 통해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에 대한 진단부터 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운동, 대중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70여 년 전 제주도에선 7년 7개월이라는 기간 최소 3만명에 이르는 도민이 살해당하거나 실종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다. 

 

대다수의 도민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거나 수년간 옥살이를 했다. 무고한 이들에 대해 끔찍한 폭력을 자행한 대한민국 정부는 5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희생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후 지난달 국회에서 ‘제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국가 공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에게 보상하고 수형생활을 했던 이들에겐 전과자라는 멍에를 벗어주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하지만 70년 전 대학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한국 정부뿐만이 아니다. 제주4·3은 북위 38도 이남 지역에 단독 정부가 수립됐던 1948년 8월 15일 전까지 미군이 남한을 다스렸던 시기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에 4·3당시 벌어진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선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국제법을 위반했는지를 검토하는 방식이 유효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편에선 국제법상 미국에게 4·3 피해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고 그에 따른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살펴본다. 

 

◆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 미국에게 물을 수 있을까

 

우선 전문가들은 미 군정 시기에 따라 책임 여부 또는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법을 전공한 오승진 단국대학교 교수는 지난 2018년 열린 제주4·3평화재단 창립 10주년 제8회 제주4·3평화포럼에서 “민간인 피해를 초래한 작전에 대해 미국이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확인이 돼야 한다”며 “국제법적으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선 제주4·3으로 인한 피해를 시기별로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4·3이 발생한 직후 미 군정장관 딘은 당시 상황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초토화 작전뿐”이라며 강경진압을 주장했고 이를 제주지역 한국군 책임자에게 수차례 전달했다. 진압 작전 지휘권은 미군에 있었으며 실제로 브라운 대령이 강경 진압작전을 벌였다. 

 

미 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미군의 개입은 끝나지 않았다. 미군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이 집단으로 희생된 대규모 강경진압 작전, 소위 ‘초토화작전’은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간 벌어졌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이에 대해 “초토화의 책임은 당시 (이승만) 정부와 주한민군사고문단에게 있다고 판단된다.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군 통수권자였으며 미군은 당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고 밝히고 있다. 

 

이는 지난 2019년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 주도로 꾸려진 미국자료현지조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등을 중심으로 4·3관련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이 채병덕 국방부 참모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초토화작전을 벌인 데 대해 칭찬하고 초토화 계획과 전략을 상시적으로 공유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오 교수는 “한국과 미국 모두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금지하는 관습국제법(custom international law)을 위반했으므로 국제의무의 위반에 따른 국제책임을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한다. 

 

관습국제법이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관행을 뜻한다. 위반 행위로는 노예제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인종차별, 고문 등이 포함됐다. 또 이 같은 위법행위를 돕거나 실행하도록 감독, 강제하는 경우도 관습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미 군정 시기엔 미국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후에도 한국군을 통제한 데 대한 간접 또는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다만 4·3과 관련해선 국가적인 책임이 있고 국제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형사책임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강경진압을 직접 지시한 지휘관은 해당 범죄에 대한 형사책임을 져야 하지만 4·3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미국의 국가책임만 물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2018년 같은 포럼에서 발제를 맡았던 호프 메이 미국 센트럴미시간대학교 교수는 “미국이 범법행위를 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력에 맡겼어야 할 이른바 ‘내국인 간 소규모 충돌’을 진압하려고 ‘초토화 정책’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군을 동원해 진압하느라 과도한 힘을 사용했기 때문에 ‘과잉조치 금지 원칙(킬컵 2016)’ 또는 불필요한 고통을 금지(국제적십자위원회 규칙 2016)하는 수칙 등을 위반했다”며 “이 부분에서 미국의 책임이 발생하고 법적 책임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단순히 ‘연관성’만 갖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미국이 했던 일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폭력사태 발발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힐 연결고리와 미국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제주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사실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미국은 4·3 학살 책임 인정할까

 

미국이 관습국제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점이 드러난다면 책임을 묻는 절차 또한 수월해진다. 

 

우선 제노사이드를 금지하는 대표적인 협약인 제노사이드 협약(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의 경우 1951년 1월 12일 효력이 발생했고 미국은 1989년 2월 23일에 협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해당 협약 당사국으로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ICJ가 지난 1951년 제노사이드 금지는 관습국제법상 의무라는 견해를 제시한 점을 고려할 때 4·3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제노사이드를 금지하는 관습국제법이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언급했듯 관습국제법은 협약 당사자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로 보고 있다. 국제연합(UN)의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판결을 통해 “제노사이드 협약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들은 비록 협약상의 의무가 아니더라도 문명국가들에 의해 국가들에게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 원칙들”이라고 밝혔다. (ICJ의 판결은 구속력을 가지며 당사국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안전보장이사회가 조치를 취한다.) 

 

참고로 유엔총회는 1946년 12월 11일 만장일치로 제노사이드를 국제범죄로 규정한 총회를 결의한 바 있다. 

 

이밖에 한국과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11일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initial Financial and property settlement agreement between Korea and the U.S.)’을 체결한 점도 우려되는 지점 중 하나다. 

 

협약에 따르면 “1948년 7월 1일 이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결과로 발생하는 모든 청구권에 대한 책임을 한국 정부가 인수해 미국 정부로 하여금 그 책임을 면하게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 피해에 대한 배상,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유엔총회는 지난 2006년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이에 따르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원상회복(restoration), 금전배상(compensation), 재활(rehabilitation), 만족(satisfaction), 재발방지의 보증(guarantee of non-repetition) 등의 원칙을 고려해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원상회복은 위반 행위가 벌어지기 전의 상황으로 회복을 시키는 원칙이나 4·3의 경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경우 원상회복의 의무는 면제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금전배상을 해야 한다. 

 

또 가해국은 위반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등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하고 피해자를 비롯해 국제사회에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제주투데이=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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