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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16) 신구범 "20년 내다 본 밑그림"

 

신구범의 증언

 

20여년의 집념 끝에 1995년 한진그룹은 비행훈련원의 대대적인 확장공사에 착수한다. 그 결과 1998년 2300m×45m의 활주로 1본과 1500m×25m의 보조 활주로 1본을 갖춘 지금의 규모로 거듭난다. 조중훈의 호를 따서 정석비행장이라 이름 붙였다.

 

당시 제주도지사는 신구범이었다. 김수남은 삼다수 공장 설립 과정을 취재하던 도중 신구범 전제주도지사로부터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구범 = 그때 조중훈씨가 저를 굉장히 좋아했었어요. 그 기초비행훈련원 비행장 있잖아요. 제 전임 관선지사 우근민은 확장사업 허가를 안해줬거든요. 교래리 쪽에서 반대가 워낙 심했으니까. 그렇지만 제가 후임 관선 도지사로 내려오자마자 제주도특별개발법 1호 사업으로 승인해주게 되었죠.

 

김수남 = 전에 조중훈씨를 알았습니까?

 

신구범 = 조중훈씨야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 나도 이름만 알고 있었지. 만나 본 적은 없고. 근데 그것은 간단해. 요새 제2공항 만들자고 야단이잖아요. 제주도에는 예비공항이 필요합니다. 그때가 1990년도 초니까 앞으로 항공 비행 기술은 계속 발전할 거고, 안개니 비행기 뜰 때 안각이니 뭐니 장애가 있다고 하지만, 항공기술이 발전하면 그런 거는 다 극복한다. 그러면 정석비행장을 예비공항이나 국제공항으로 써서 국내공항하고 분리시키겠다…… 뭐 그런 구상을 하고 허가를 내준 거죠.

 

김수남 = 그때 벌써 그런 걸 내다봤단 말입니까?

 

신구범 = 도지사야 뭐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으니까. 내 자랑 같지만 당시 나는 내 임기 내 제주도를 본 게 아니라 20년 후의 제주도 밑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었요. 제주도사람들이 장래에도 먹고 살 방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 개발 허가를 전폭적으로 허가해 준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국가적인 이익 때문이었습니다. 조중훈이가 국내에 훈련비행장이 없으니까 괌이나 중국 뎬진에 가서 훈련을 시켰거든. 그 비용이 엄청납니다. 연간 5억원이 넘는 돈이죠. 외화 낭비였죠. 그러니까 이 활주로를 확장해서 점보기만 뜨게 해주면, 비행기 조종사들이 한국에서 훈련할 수 있단 뜻이었거든.

 

김수남 = 그래서 평생을 바쳐 정석비행장 활주로 확장공사에 집착했던 거군요.

 

신구범 = 그때 조중훈이가 4년 동안 제주도에 안왔다고. 활주로 확장을 못해가지고. 이거 해결되지 않으면 제주도를 향해서 오줌도 안누겠다고 했던 사람이 조중훈 아닙니까?

 

실제로 조중훈은 1998년 준공식에서 정석비행장을 제주공항의 보조공항으로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전세기나 자가용 항공기 등을 유치하여 제주의 제2공항으로 육성할 거라고 포부를 밝혔다.

 

확장공사 당시 정석비행장은 국제공항의 역량에 충실하도록 설계되었다. 남북 방향으로 뻗은 2300m 활주로는 저가 항공사의 보잉 737기뿐만 아니라 A300급 중형항공기나 보잉 747급 점보기가 최대중량을 탑재하고도 이착륙할 수 있었다. ‘공항’이란 이름만 안 붙었을 뿐, 25m 높이의 관제탑과 1200평의 격납고 3개동, 그리고 보잉 747 점보기 2대 크기의 주기장까지 설비되었다. 거기다 활주로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정밀계기 접근용 계기착륙장치(ILS)를 갖추고 있었고, 비상상황에는 언제든지 공항으로 전환이 가능했다. 정석비행장이 준공된 후 정석인하학원 소속 항공대학교는 경기도 고양의 수색비행장에서 실시하던 비행 훈련 전과정을 제주도로 옮겨왔다.

 

그로부터 20년 후

 

2015년 11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기습적으로 서귀포시 성산읍 2565필지, 586만1000㎡를 제주2공항 후보지로 발표했다. 이 느닷없는 발표에 온평리, 난산리, 신산리 마을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동네 여론도 분분했다. 국토교통부와 제주도가 지역 주민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공항 부지는 성산 온평리가 전체의 75%의 면적을 차지했고, 나머지 25% 땅에는 신산리, 수산리, 고성리, 난산리가 포함되었다. 제2공항 건설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예비타당성 검토를 한 후 최종 계획을 고시하는 수순으로 예정되었다. 총사업비는 4조1000억원으로 3200m×60m 규모의 활주로를 갖춘 신공항을 건설하는 내용이었다.

 

성산 지역 주민들은 국토부와 제주도정이 독단적으로 공항 부지를 선정했으며, 수백 년 고향에 조용히 잠들어있는 조상들의 혼을 강제로 이장하려 한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사전 동의 없이 입지 선정한 점을 들어 원천 무효를 주장했지만, 돌아온 것은 부동산 투기 때문에 극비리에 용역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무적인 답변뿐이었다.

 

사실 성산 주민 중에는 공항이 생기면 좋을 거라고 뜬구름 잡듯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공항 예정지 발표 당일 원희룡 도지사는 개선장군처럼 성산읍사무소를 방문했다. 동네 이장들 앞에서 원희룡은 20년 숙원 사업을 가져왔으니 제주도 동부지역은 이제 대박날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복합도시·에어시티를 지으면 지역이 발전하고 주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말하자, 이장들은 두 손 들고 환호했다. 성산 지역 유지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을 맞을 거라는 말에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일부 지역은 평당 30만~40만원에 거래되다가 한때 1000만원대까지 치솟는 등 땅값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개발 이익이 눈에 잡힐 듯하자 성산읍 마을들의 명암은 확연히 갈리기 시작했다. 공항청사가 세워지고 상업시설이 들어올 곳은 찬성했지만, 토지를 수용당하거나 소음피해를 입게 되는 마을은 반대가 우세했다. 강정해군기지를 건설할 때처럼 패가 갈렸다.

 

땅 있는 사람은 땅값이 오른다는 생각에 기대 만발하고, 땅이 없는 사람은 임대료가 오른다고 반대했다. 도 전체 여론을 보면 반대가 우세하지만 성산읍 14개 마을 중 10개 마을은 찬성했다. 600년을 같이 살아온 공동체가 제2공항 찬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온평리에 거주하는 한 촌로가 원희룡 도지사에게 한 말은 뼈를 때린다.

 

"개발, 개발 고튼 말은 더이상 나헌티 곧지 맙써양. 발전 다 되수다.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어서마씀. 집도 번듯하니 살기 좋고, 놈삐 뽑앙 팔곡 미깡 탕 팔앙 잘 살고 이신디. 똘 호나 이신 거 일찌감치 폴아노난 크게 돈 들어갈 디도 엇곡. 나의 최종 바람은 어멍 아방 조상님 산담 옆이 묻히는 거우다. 어시믄 어신대로 이시믄 이신대로 경 살아와수다. (두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발전 필요어수다. 더 이상 이보다 잘 살고정 허지를 않수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이수다. 공항 필요어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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