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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래리 비밀비행장 ... 말 사육하는 녹산장(鹿山場)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7) 비행장의 위치
조중연 작가  |  kalito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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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3  0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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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녹산장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비행장의 위치

그렇다면 교래리 비밀비행장의 위치는 어디일까? 지역 주민 사이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인들이 뭔가를 만들어 놓았다고 소곤대는 곳이 있었다. 지리적으로 비행장이 들어설 수 있을 만큼 평평한 지형도 한군데 밖에 없었다. 지역 주민이 지목한 장소도 대부분 거기였다.

그곳은 녹산장(鹿山場) 터였다.

녹산장은 ‘광활한 개활지’란 지형적 확증과 별개로 또 다른 직접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록산 동굴 진지였다. 대록산에서 50m 길이의 갱도가 발견되었다. 갱도 중간 지점에는 산 정상과 연결되는 수직갱도가 뚫려 있었다. 수직갱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대록산 정상이 나온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탁 터진 일대가 한눈에 잡혀왔다. 정황상으로 대록산은 비밀비행장을 경비하는 병력이 배치된 요새일 가능성이 컸다. 육군서비행장이 도두봉에, 동비행장은 원당봉에 방어 기지를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현재 대한항공에서 운영하는 훈련비행장이었다. 표선면 녹산로 주변 제동목장 터에 설치된 훈련비행장이었다. 비행장 뒤편에는 대록산과 소록산이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에서 훈련비행장 활주로로 사용하고 있는 점도 석연치 않고요. 여러 가지 지형들을 감안할 때 이곳이 가장 유력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교래리 비밀비행장이 현재 대한항공의 훈련비행장이라니……. 김수남은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녹산장(鹿山場)

교래리 비밀비행장은 녹산장이라 불리는 땅이었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말을 사육하기 좋은 장소로 손꼽혀왔다. 고려시대에 원(元)이 제주도를 탐라총관부로 삼아 직접 통치한 이유도 말 사육 때문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조선왕조는 해발 200∼600m의 한라산 중산간지대에 ‘십소장(十所場)’이라는 국영목장을, 제주 동부지역의 해발 400m 이상 산간지대에는 ‘산마장’을 설치했다.

   
▲ 조선시대 제주도 10소장과 산마장 [사진=오마이뉴스]

산마장(山馬場)은 현재의 남원읍 의귀리, 표선면 가시리, 조천읍 교래리 등 200여 리에 걸쳐 해발 400m 이상의 초지와 산림지대로 이루어진 드넓은 땅이었다. 숙종과 영·정조 때에는 침장, 녹산장, 상장으로 명명되었고, 녹산장 내에 갑마장이 설치되었다. 나라에 바치는 말 가운데 상등마(上等馬)를 사육하는 지역으로 갑마장(甲馬場)이라 불렸다. 녹산장 일대는 헌마공신(獻馬貢臣) 김만일(金萬鎰) 소유의 사(私)목장이었다. 녹산장은 국영목장을 압도할 정도로 번창하여 1만여 마리의 말을 사육했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방목지는 왕토사상에 따라 공리지(公利地)로 간주하여 소유자 없이 주민들이 공동으로 보호하고 이용했다. 그러나 일제가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제도를 도입하면서 마을 소유의 토지로 재편됐다. 일제는 토지 세부측량을 마친 후 마을 사이의 경계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마을공동목장이 배당되었는데, 국영목장이었던 십소장도 마을별로 분할되었다. 국유지였던 방목지는 마을이나 마을 대표자 명의로 등기되었다.

반면 녹산장은 갑오경장(1894) 때 폐해졌다가 일제강점기 조선 황실 업무와 재산 관리를 담당했던 이왕직(李王職) 소유로 바뀌었다. 김만일의 사목장이 어떤 경로로 이왕직의 소유로 변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그의 손자에서부터 세습된 감목관직이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1933년 녹산장 중 갑마장은 가시리공동목장으로 변경되었고, 마을공동목장조합이 관리와 운영을 맡게 되었다

녹산장의 역사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게 된 것은 1937년이었다. 1937년 6월, 제주도흥업(濟州島興業)이란 회사가 녹산장 땅 420여만 평을 구입했다. 제주도흥업은 농사, 목축, 부동산 경영 및 금융업을 목적으로 하준석(河駿錫)·조준호(趙俊鎬)․박흥식(朴興植)이 공동으로 출자해서 설립한 주식회사였다. 자본금은 50만원이었다. 1939년 발행한 잡지 「삼천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오십만원의 제주도흥업
―군마․면양․개간이 목적

하준석 사장의 사업계열 속에 제주도흥업주식회사라는 50만원 전액불입의 회사가 있다. 이것은 주식회사라 하지만은 주로
하준석(河駿錫)
박흥식(朴興植)
조준호(趙俊鎬)
김근기(金根耆)
사씨(四氏)가 출자하여 창립한 것으로 총독부의 제주도 개발방침에 따라 년전에 창설되였다.

원래 제주도로 말하면 이조시대에 여기가 군마사양지로 매우 호적한 곳이다. 불서불한한 그 기후와 평원에 천연생한 목초가 무한하게 풍부한 점이 모도다. 목마에 적하다. 제주도개발회사에서 아직은 목마를 하지 않고 있으나 장차로는 시작하리라 하며 현재는 면양 수백 두를 사육하는 중인데, 면양의 유용은 다시 더 말할 여지도 없이 국책상 중요한 것이 되야 방금 총독부에서도 북부조선에 수만 두의 면양을 치고 있는 터이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는 축우 백여 두를 하고 있으며 또한 토지의 개간에도 착수하고 있다.

   
▲ 조중연 소설가

박흥식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갑부였다. 중일전쟁 발발 후 전시 배급체제 통제경제로 모든 민간 분야가 된서리를 맞았는데도, 박흥식만은 계속 조선 최고의 갑부로 승승장구했다. 1937년 화신백화점이 세워지던 그해에 박흥식은 제주도흥업에 투자하여 취체역(이사)에 취임한다.

제주도흥업 사장 하준석은 당시 조선공작(朝鮮工作), 조선농축(朝鮮農畜) 회사의 총수를 겸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삼천리」는 ‘국책회사에 등장한 재계 거성’이라 입이 마르게 칭찬하고 있다.

이렇게 비상시 국책선상에 등장한 3대 회사의 총수 하준석씨란 었더한 인물인고. 씨의 고향은 경남 창녕으로 금년 42의 춘추에 부한 이다.

일즉 모씨가 재계의 어대소(御大所)라 할 모씨에게 현재의 박영철(朴榮喆), 한상용(韓相龍) 등 원로가 은퇴한 뒤에 반도의 재계를 지배할 후계인물이 누구일고? 한즉 언하에
박흥식(朴興植)
김연수(金秊洙)
하준석(河駿錫)
삼씨(三氏)라 하였다. 아마 이 말은 일반 회사에서 모다 승인할 정도의 타당한 평이리라. 이 삼우조(三羽鳥)가 금후의 재계를 지배할 것가지 누구든지 보고 있다.

이어 「삼천리」는 하준석의 학력과 재계의 경력을 소개하고 있다.

하준석의 청년시대에 동경 드러가서 성역중학을 마치고 다시 조도전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것이 대정14년. 그러고는 이내 재계에 투신하여 경남도 평의원에 당선, 명덕수리조합장을 지내어 다시 소작관행개선조사회위원, 세무서의 소득세 조사위원, 창녕산업조합장, 부산무진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산업경제조사회위원, 선만탁식회사설위위원 이러케 각 방면의 이력을 경하여 현재는 경남의 관선도의원으로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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