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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찾은 하와이대 교수, 그리고 양영호 4.3유족회 부회장이 전하는 이야기

 

지난달 30일 미국의 한 학자가 홀연 제주를 찾았다.

 

국제법 전문가인 미국 하와이대의 에릭 야마모토 교수. 어이없이 미국에 점령 당한 하와이 원주민 실태를 고발, 미국 정부의 배상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1893년 1월 미국은 해병대가 진격, 하와이 왕국을 전복시켰다. 원주민을 이주시켰고, 살 땅을 잃어버린 원주민들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다 숨져갔다. 50만명이던 인구가 고작 4만명으로 줄 정도였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1993년 1월 미국 상·하원은 합동결의를 통해 사과에 나섰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정부대표로서 공식 사과했다. 하와이 점령 후 꼭 100년만의 사과다.

 

그의 학살사건 규명과 법 제정 기획으로 원주민들은 우리 돈으로 1조2000억원의 배상을 받았다.

 

그런 그의 첫 방문지는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120여년 전 하와이의 참상과 4·3사건은 어찌보면 ‘섬’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공통의 시련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제주방문 계기다. 김영훈 4·3평화재단 이사장과의 만남도, 4·3전문가인 제주대 고창훈 교수와의 만남도, 그리고 4·3이 남긴 발자취와 유적지 곳곳도 그의 관심이었지만 사실 이날 그의 제주행은 양영호 4·3 유족회 부회장과의 만남의 의미가 더 컸다.

 

개인사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픈 양 부회장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양 상임부회장은 고작 6살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생이별했다. 4·3사건이 터진 1948년이다. 그해 가을 경찰은 집에 있는 아버지를 연행, 제주경찰서에 구금했다. 그후로 소식이 끊긴 아버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이후 목포형무소로 끌려 갔고, 6·25란 전란의 와중에 형무소 인근 어딘가에서 총살 당했다는 것이었다.

 

“6·25가 발발할 당시 정부는 각 형무소와 경찰서에 수감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했다고 하데요." "서울 마포경찰서의 경우 문을 열어 줘 수감자들이 도망갔지만 전라도 지역의 경우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도 그렇게 형무소에서···.”

 

양 부회장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다. 먹을 것이 없어 공부는 꿈도 못 꿨다“는 그는 ”청년이 돼 해군을 지원, 병무청에서 합격 판정까지 받았는데 입소가 불허됐다. 연좌제 때문이었다"고 ‘군대도 못 간 처지’라며 혀를 찼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4·3희생자 유족이라는 말도 못 꺼냈다"는 그는 "언제나 경찰의 감시를 받아왔다"고 마음 아파했다.

 

그는 2004년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젠 고인이 된 김경률 감독의 첫 4·3 장편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이다. 가슴에 맺힌 설움을 풀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조연으로나마 나선 것이다. “희생자의 아들이다 보니 누구보다 유족들의 삶과 희생자들의 힘들었던 상황을 재연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영화를 통해 4·3을 국내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국회에서 시사회를 열고 제주시내 코리아 극장에서 3번 상영을 했죠. 당시 많은 유족들이 찾아 이후 4.3 문제에 대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아직도 희생자로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수두룩하다“며 희생자 유족 추가신고가 빠른 시일 안에 이뤄지는 것이 소원이다. 게다가 지금도 다 발굴되지 않은 제주공항 내 학살터의 유해는 지금도 가슴에 맺힌 숙제다. ”60여년 세월이 지났는데 그렇게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 시신마저 햇빛을 볼 수 없다니 말이 됩니까?“ 그의 가슴은 그렇게 멍들어 있다.

 

이를 지켜보는 에릭 야마모토 교수의 마음이 착잡하다.
그는 "4·3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상처를 크게 느꼈다"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일정부분 진상규명이 이뤄진 부분은 다행이지만 지금의 정부가 이전의 정부에 비해 4·3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며 유감의 뜻을 보였다. 그는 ”4·3도 사실 미국정부와 연관이 돼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미국 정부 역시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하루 전인 29일 제주대에서 강연을 마친 야마모토 교수는 “여름에 다시 제주를 찾고 4·3에 대해 더 이해하려 한다"며 "10월 말 하와이에서도 4·3관련 포럼을 갖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날 몇 해 전 숨진 진아영 할머니가 홀로 살던 거처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토벌대의 총에 맞아 얼굴이 뭉개진 채 수십년을 살다 간 그 할머니의 얘기에 두 사람은 그저 묵묵히 손을 맞잡을 뿐이었다.

 

이제 그의 연구주제는 하와이에서 4·3으로 옮겨가고 있다.

 

고창훈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4·3유족들은 물론 제주도민 역시 반가운 우군을 만난 셈이 된다”며 "조만간 아픈 4.3의 과거와 현실은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 논의로도 확대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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