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패신저스(Passengers) (3)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만큼 큰 고통이나 두려움은 없으며, 외로움은 또한 사람을 병들게 한다. 겁 없이 설치던 흉악범도 독방에 한달 가까이 처박아 두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영화 ‘패신저스’는 외로움에 관한 보고서다. 주인공 프레스턴은 없는 게 없는 초호화 우주선을 독점했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시들시들 병들어간다.

 

 

‘아발론(Avalon)’호를 타고 120년간 동면 우주여행길에 오른 프레스턴은 5000명의 승객 중에서 30년 만에 혼자 깨어난다. 아발론이라는 이름 자체가 ‘잠’과 깊은 인연이 있다. 영국의 전설 속 아서왕이 최후의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피신해 잠들었다는 섬이 바로 아발론섬이다. 아서왕은 그 섬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깊은 잠에 빠졌을 뿐, 영국에 또 다른 큰 변고가 생기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영국을 구할 것이라고 한다.

 

우주선이 위험에 빠지는 큰 변고가 일어나 우주선과 승객들을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프레스턴은 3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다. 영국을 구해야 할 일이 생긴 게 아님에도 아발론섬에서 괜히 깨어난 아서왕 꼴이다. 사람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사고를 치게 마련이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은 ‘작가가 너무 외로움에 사무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쓴다’고 키득댄다. 아무 할 일 없이 외로움에 사무친 프레스턴은 살인에 버금가는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1년 남짓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120년을 잠들어 있어야 하는 오로라를 깨운 것이다.

 

최첨단 럭셔리 호텔 같은 거대한 우주선에서 아무런 할 일 없이 ‘달랑’ 혼자 지내는 프레스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다. 식당 메뉴, 침실 등 모든 것이 초호화 우주선답게 훌륭하다. 칵테일 라운지에는 안드로이드 바텐더가 있고 원하는 술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심신을 단련할 체육시설과 환상적인 수영장에 무료한 시간을 보낼 오락실이 갖춰져 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누구 하나 거치적거리는 사람이 없다. 모든 게 나만을 위한 것이다. 점보제트기나 호화 유람선 한척을 전세 내서 홀로 여행을 떠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몸단장하고 면도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옷을 갖춰 입지 않아도 된다. 프레스턴은 원시인처럼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온 우주선을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대자유’를 만끽한다.

 

 

지구의 가족, 친지, 친구를 모두 버리고 혼자 외계 행성으로 120년이나 걸리는 단독 이주에 나섰다면 아마도 선천적으로 ‘외로움’ 따위를 두려워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프레스턴은 사실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쳐 지구를 영원히 떠나기로 작정한 인물인 듯하다. 모든 것이 갖춰진 초호화 우주선을 독점하게 됐다면 평소 꿈꿨던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프레스턴은 즐겁지 못하고 시들시들 병들어간다.

 

호화로운 우주선에서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 별빛 영롱한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일이다. 그러나 프레스턴은 우주 유영을 경험하다 눈물을 쏟는다. 외로움에 사무친 눈물이다. 그리고 우주선으로 돌아와 마침내 평소에 ‘찜’해 뒀던 동면기 속의 ‘여자 사람’ 오로라를 강제로 깨워놓고 도망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흡사 살인을 저지르고 공포에 질려 현장에서 도망쳐 달아나는 살인범의 모습 같다.

 

‘에덴의 낙원’에서 외로움에 시들시들해진 아담의 모습이 딱해서 하느님이 이브를 보내주셨다는데, 사람 빼곤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진 또 다른 에덴동산 아발론호에서 유일한 ‘남자 사람’인 프레스턴은 이브를 강제로 깨운다. 에덴이 혼자 살아야 하는 아담에게 낙원이 아니었듯, 초호화 우주선 아발론호 역시 홀로 깨어난 프레스턴에게는 못 견딜 곳이었나 보다.

 

창세기가 아담과 이브가 짝을 이뤄 궁극적으로 행복했는지를 말해주지 않듯, 영화는 프레스턴이 오로라를 만나 끝까지 행복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아담도 이브를 얻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프레스턴도 오로라를 얻어 외로움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혼자든 누군가와 같이 있든 상관없이 외로움이란 ‘인간의 자기중심성’ 때문에 생겨난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외로움으로부터 탈출할 길은 없나 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짝을 찾을 일은 아닌 듯하다. 안톤 체호프도 한마디 거든다.

 

“외로움이 두렵다면 절대 결혼하지 말라.” 매스컴을 통해 ‘고독사’ 이야기가 부쩍 많이 전해지는 요즘이다. 고독은 인간의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가정을 꾸려도, 군중 속에 파묻혀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3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