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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人터뷰] 부상일 "4.3증언집이 시작 ... 40대 거듭 실패, 소중한 경험"

 

1990년 여름이었다. 처음 맞은 대학가 방학.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 대신 서울에 머물렀다. 그게 삶의 방향을 바꿔버렸다.

 

제21대 총선에 도전장을 낸 미래통합당 제주을 선거구 부상일 예비후보(48).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처음 4.3을 만났다. 방학 때 고향에 가지 않고 친구 하숙집에서 지낼 때였다. 그 시절 들른 책방에서 ‘이제야 말햄수다2’라는 책을 접했다. 제주도 사투리라 눈이 끌렸다. 4.3증언집이었다.

 

깜짝 놀랐다. 그런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후 제주에 내려와 4.3연구소를 찾아갔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거들었다. "나에게 4.3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아가 4.3으로부터 그의 정치가 시작됐다.

 

그는 법대 시절인 1997년부터 4.3특별법 초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96년 4.3 48주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법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4.3의 완전한 해결은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제주출신 변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4.3특별법 초안을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대부분 거절하더라구요. 그 때만 해도 4.3을 입에 올리는 것은 꺼리는 일이었죠. 결국은 제가 초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자료를 보며 준비한 4.3특별법 초안이었다. 그 때의 경험은 그에게 미래를 설계하는데 정치가 가장 큰 파급효과를 낸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문턱에 서기까지 그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제주 구좌읍 평대리에서 태어나 제주제일중과 제일고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자연과학대 해양학과로 진학, 분석화학을 전공했다.

 

그곳에서 화학을 공부하며 대학교수를 꿈꿨다. 하지만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당시 만난 법대 도서관 관장의 말이 그를 법대로 이끌었다. “법대에는 자연과학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교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그는 법대로 향했고,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7년의 검사생활, 2007년 잠깐의 대학교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검사직도 내려놓고, 교수직도 내려놓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정치를 해야 한다는 갈망 때문이었다.

 

공직에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2007년 12월 제주대 법정대 법학과 교수로 임용이 됐지만 고민은 여전했다. 정치활동과 교수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변호사 생활을 하는 것,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 2008년 총선 출마부터 시작해 2012년 총선, 2016년 총선까지 내리 3번 도전했다. 한번은 정치신예로서의 한계였고, 또 한번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빌미가 돼 공천이 취소됐고, 또 한번은 출구조사에서도 앞서며 승리가 점쳐졌지만 반전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난 실패의 경험들에 대해 “소중하다”고 말했다.

 

“30대 후반까지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40대 들어 실패의 경험이 쌓였다. 아픈 경험이지만 저는 그것을 극복하고 계속 도전했다. 그것이 저에게는 큰 자양분이 됐다.”

 

그 자양분 속에서 그는 공감능력을 키웠다고 말한다. 오히려 일찌감치 총선에서 승리했으면 자만에 빠졌을지 모른단다. 

 

실패의 경험이 만들어낸 지금의 부상일. 그는 “도민분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통해 부상일이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고싶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그의 마음가짐이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자연과학도가 법으로 전공을 바꿨다.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화학을 공부하면서도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마침 법대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당시 법대 도서관 관장님이 ‘자연과학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법대교수가 돼야 다양한 법학전문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교수가 꿈이라면 법학을 공부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그래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법대를 갔고 사법시험을 보고 운 좋게 합격했다."

 

▷사법고시 합격 후 검사 생활이 그리 오랜 것 같지 않은데...

 

"7년 정도 했다. 만 7년을 채워 2007년 10월30일자로 사직했다. 그리고 2007년 12월에 제주대 법정대 법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생활을 하다가 정치활동과 교수 생활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조국이라는 분은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폴리페서라는 말이 있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거기다 수업결손 우려도 많았다. 선택을 해야한다고 판단해서 저는 법대 교수를 내려놓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2009년 가을로 기억한다."

 

 

▷정치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가?

 

"1996년 4.3 48주기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법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것은 안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처음 제시했다.

 

공교롭게도 1997년부터 제가 법대를 다녔는데, 법대 학생이 뭘 알겠나. 그래서 제주출신 변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4.3특별법 초안을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대부분 거절했다. 그 때만 해도 4.3을 입에 올리는 것이 꺼리는 일이었다. 결국은 이야기 한 당사자인 제가 초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만 1년 가까이 유엔 자료를 찾아가면서 법안 초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1998년도에  4.3진상규명 명예회복 추진 범국민위원회에서 발표를 한다.

 

그 일을 하면서 국회의원과 일도 함께 하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설계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고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2007년 잠깐 대통령 캠프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인연이 2008년도 총선출마까지 이어졌다. 그 때 현실정치에 뛰어들게 됐다."

 

▷결국 4.3이 정치 시작의 계기가 된 것인데, 그럼 4.3에 대한 관심 언제 생겼나?

 

"1990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방학 때 제주에 내려가지 않고 친구 하숙집에서 얼마간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책방에 가서 책을 보는데 ‘이제야 말햄수다2’라는 책이 있었다. 제주도 사투리라 관심을 가지고 꺼내보니 4.3 증언집이었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런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읽어본적도, 들어본적도 없었다. 그게 4.3을 만난 시작이었다."

 

▷18대 총선부터 선거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다.

 

"그런 경험이 저에게는 소중하다. 저는 30대 후반까지는 성공경험이 이어졌다. 그런데 40대 들면서 실패의 경험이 쌓였다. 굉장히 아픈 경험인데, 저는 그것을 계속 극복하고 도전을 했다. 그래서 실패의 경험이 주는, 성공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게 저에게는 큰 자양분이 됐다고 본다.

 

또 그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키워졌다. 역지사지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그리고 측은지심도 자리잡게 된 것 같다. 측은지심은 정치인이 가져야할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에 바로 당선이 됐으면 그 부분이 저에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경험이 저에게 쌓여 있어 도민들분들 만났을 때 부상일이 성숙해 있구나 하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번 선거에 임하고 있다."

 

 

▷제주의 가장 큰 쟁점은 뭐라고 보나?

 

"저는 제2공항 관련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제가 생각할 때 많은 분들이 이걸 공항을 하나 더 만들고 덜 만들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안 본다. 제2공항을 만드는 것은 제주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제주의 미래를 설계할 때는 5년 뒤, 10년 뒤, 30년 뒤, 50년 뒤를 생각하면서 과연 제주에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제2공항을 만들겠다고 한 건 제주도민의 염원이었다. 그 염원이 10년 넘게 지속되다가 원희룡 지사가 민선 6기 시작 때 결론을 낸 것이다. 결론을 낼 때도  신공항 안과 기존 공항 확장안, 제2공항 안 등 3개의 안을 두고 1년 넘게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지금의 결론이다. 반대 하는 분들의 의견이 당시에 싸그리 무시되거나 반영되지 않은게 아니다. 받아들이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고민을 많이 하더라도 결론을 내리면 그것을 실행한다. 제2공항은 많은 고민을 해서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그것은 아니다."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은?

 

"제2공항 문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 당사자가 추진과 반대를 이야기하는데에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두 당사자 사이에 분쟁이 있을 때 해결하는 기준이 있다. 우리가 정책을 결정하면 그 정책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하지 않는 한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 추진하는 쪽의 입장만 반영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우려하는 것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들어있다.

 

지금 단계는 취소보다는 더 와 있다. 제2공항을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제2공항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제2공항 현장 사람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보상도 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제주도청의 이전을 말하게 됐다. 제주도청을 이전하는 문제는, 1년 뒤에, 2년 뒤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10년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하고 지금까지 낙후된 제주동부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10년 뒤 도청을 이전하는 것을 전제로 지금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저는 이 주제를 가지고 상대방 예비후보들이 저를 공격해주기를 바란다. 그럼 저는 이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을 물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공론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4.3특별법에 대한 생각은?

 

"4.3특별법 전면 개정안은 중요한 법으로 통과가 필요하다. 그런데 2월 임시국회 처리는 물건너갔다.  그럼 지금까지 민주당은 뭘 했는가? 4.3특별법 개정안이 2017년 12월에 발의됐다. 오영훈 의원 대표발의인데, 2018년부터 2019년 뭘했는지 보면 소위원회 한 번 열렸다. 그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행안위 위원장은 여당이다. 대표발의한 사람은 뭐하고 있는가? 그게 문제다. 민주당은 최고위원회까지 제주에서 열면서 4.3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번 국회가 구성되고 제가 당선이 되면 제 이름으로 개선안을 낼 것이다. 상대당, 민주당까지 아울러서 개선안을 낼 것이다. 4.3특별법은 여야 합의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법이고 개정도 그렇게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법률가로서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공직 경험, 변호사, 대학교수의 경험이 다 있다. 법률가의 기본은 분쟁을 해결하는 능력이다. 분쟁해결 능력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저 만큼 훈련을 받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저는 제가 살아왔던 삶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하는 경험을 가지고 정치인으로 성장해왔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된 저의 강점이다.

 

저는 당선이 되면 미래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과 제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30~40대의 위기감, 제 친구들과 바로 밑에 후배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감에 공감하고 있다. 당선이 되면 무엇인가 할 수 있는게 생긴다. 3~40대의 위기감 극복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세밀하게 준비하고 싶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부상일은?

 

학력
제주광양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서울대 자연과학대 해양학과 졸업
서울대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업

 

경력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1999)
제31기 사법연수원 수료 (2002)
청주・제주・의정부지검 검사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중앙선대위클린정치위원회 (2007.10~2007.12)
제주대 법정대학 조교수 (2007)
한나라당 제주도당 위원장 (2009)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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