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박재욱의 지금은 자치시대(3)

# 70년대 영국 보수당의 한 모임에서 14세의 어린 학생이 “철의 여인”으로 유명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마가렛 대처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대처 총리는 어리지만 다부진 이 소년 연사를 지켜보며 만면에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연설장 분위기는 여느 행사와 별반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소년은 바로 현재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내에서 대외 문제를 총괄 책임지고 있는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이다.

 

# 지난해 7월 22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30㎞ 떨어진 우토야섬에서 지금도 충격적인 끔찍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69명의 어린 영혼들이 한 정치적 광신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당시 우토야섬에서는 19세 이하 560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집권 노동당의 정치캠프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사건 전날에는 외무장관이 방문했고, 다음 날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총리의 연설도 예정되어 있었다.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노르웨이에서는 청소년 정치캠프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총리를 비롯한 정부요인들이 직접 참석해 청소년들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럽 등 정치 선진국에서는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당 입문과 정치교육이 일반화돼 있다.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비전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와 제도화가 이루어져 있다. 이들 국가에서 어린 시절 정치교육과 정치적 체험을 거쳐 20대에 정치 현장에 뛰어 드는 젊은 정치인들은 부지기수다.

 

과거 “제3의 길”을 제창함으로써 보수와 진보 간 대타협을 통한 새로운 영국 정치의 미래를 열었다고 평가받았던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도 29세에 총리직에 취임하였다. 영국 노동당 최연소 당수, 20세기 영국의 최연소 총리, 영국 노동당 역사상 최초의 3기 연속 집권, 80%를 넘는 압도적 지지율을 차치하더라도 블레어 총리의 대통합 노선의 구상과 정치적 포용력을 가능하게 했던 원천은 어린 시절 정치적 학습과 체험을 통해 꿈꾸어왔던 정치적 비전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과거 부시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딕 체니는 최근 자신의 회고록에서 2003년 이라크 참전 결정을 앞두고 영국 하원의 다수 반대 세력을 설득, 포용했던 그의 정치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주 사실상 마무리 된 19대 총선 지역구 후보의 평균 연령은 53.5세다. 여당인 새누리당이나 야당인 민주통합당 모두 일부 비례대표 후보를 제외하고는 20대 후보는 전무하고 30대도 가뭄에 콩 나듯이 공천후보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부산 사상에서 지역 출신인 27세의 손수조 후보가 새누리당 공천을 얻어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그녀의 상대는 차기 야당의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문재인 후보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새누리당이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대권주자 김빼기 작전”으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젊은 여성을 공천했다는 식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분명 이러한 정치공학적 계산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을 일면 수긍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드는 생각은 왜 우리 사회는 젊은 20대나 30대가 당당히 정치적 유망주로서 성장할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국정을 담당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연륜과 경륜이 필요하며, 정치적 경험 역시 필요하다는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20대의 정치 참여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후보자가 20대의 현실적 고민, 예컨대 청년실업, 비정규직 등에 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했는가 반문하며 비판적 공세를 펴기도 한다. 이런 비판 속에서도 민주통합당 역시 비례대표 후보군에 20대 정치신인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끝이 없겠지만, 어쨌든 지역구 후보든 비례대표 후보든 젊은 20대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국 정치발전을 위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 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선거결과 2040세대가 현실 정치의 모순과 부조리함에 대항해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구가 표로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대의제 정치제도 하에서 이들의 요구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인이 반드시 20대나 30대야만 하느냐는 비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최근 거세게 몰아친 안철수 현상에서 집약되어 나타나듯이 이들 세대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면 분명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이들의 요구와 의사를 대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볼 때 이들 20대나 30대가 스스로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할 이유 또한 궁색하다.

 

20, 30대 정치인 등장과 관련된 우려를 불식하고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제도적․정책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적 장치를 고려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우선, 학교차원에서의 조기 정치교육의 필요성이다. 현재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제시하는 정치교육이나 정치학 교육은 너무 원론적이며, 실제 정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다른 사회과학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현실을 배제한 정치교육은 그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거의 없다. 특정 정당의 지지나 참여보다는 현실 정치의 기능과 역할, 문제점 등에 대해 당파와 관계없이 접근할 수 있는 교재나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둘째, 정당 내 청소년 정치아카데미나 정치캠프의 필요성이다. 각 당의 정강이나 정책에 공감과 지지성향을 지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율적인 정치모임을 지원하고, 모임의 자치적 운영을 보장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독일 정당들의 경우 이들 정치모임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나 관여를 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정당과는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되, 모의국회 등과 같은 제한적인 행사를 통해 정책 수립이나 의회 운영에 관해 조언하고 지도하는 차원에 머무른다. 즉, 과거 나치정권의 청소년 유겐트와 같이 정당의 동원조직으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셋째,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정치교육에 대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독일은 연방차원에서 정치교육원(센터)을 설립하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각 정당의 공약이나 정책평가 등을 수시로 교육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정치교육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청소년들은 스스로 정치적 안목과 식견을 형성하면서 반대 진영나 반대당과의 소통법을 자연스레 체득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정치적 선동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진정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이번 총선과정을 지켜보면서 여야 막론하고 각 정당이 정치권력을 얻기 위한 표모으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에서 한번 쯤 곱씹어 보아야 할 말이다.

 

☞박재욱은?=부산출생.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동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신라대 기획처장을 역임하고, 현재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지방정치학회 회장, 21세기 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또 한국정책과학학회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