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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교육 우민화 정책과 미군정의 문맹퇴치 교육정책

 

일제 강점기에서는 전남 학무행정에서 시학(장학사) 1명이 제주교육행정을 담당하였다. 미군정은 1946년 8월 제주도를 도제(道制)로 개편하여 교육행정도 격상시켰다.

 

초등학교 설립을 위해 도지사의 인가를 쉽게 받게하여, 마을의 향사나 공회당 또는 읍면사무소의 창고나 부속건물 등을 이용하여 개교하게 하였다. 제주에 대한 일제의 도제(島制)와 미군정의 도제(道制)에서 보듯, 36년의 일제 강점기에서는 중등학교가 2학교인 반면, 미군정기 3년 사이에 무려 12개의 중학교가 개교하였다.

 

일제가 식민지교육으로 우민화 정책을 편 반면, 미군정기의 교육은 문맹퇴치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성인교육을 위한 공민학교는, 대부분 초등학교에 부설되거나 부락의 향사·공회당·읍면사무소의 창고나 부속건물 등을 이용하여 설립되었다.

 

제주주정공장공민학교처럼 사원교육을 위해 회사에 설치된 공민학교도 있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도 공민학교는 계속 증설되었으며, 1950년대 초까지 초등학교 수와 대등할 정도로 공민학교가 세워졌다. 1950년대 중반부터 초등학교 의무교육 확대와 문맹률 감소에 따라 공민학교는 점차 줄어들어 1960년대에는 극히 일부의 학교만 유지 되었다.

 

미군정시 정규 중학교로 처음부터 설립된 경우는 제주고등여학교(제주여중 전신)가 유일하다. 이외의 중학교들은 사설 강습소 형태의 학교인 중학원의 과정을 거치거나 흡수하여 설치되었다.

 

정치·사회적인 혼란에다 경제적으로 흉년까지 겹친 상황 속에서 제주선인들은 정규학교보다는 설립인가가 용이한 중학원이라도 먼저 설치하여, 자녀교육에 나서려 하였다.

 

1-3년제로 향사나 읍면사무소의 창고 등을 임시교사로 하여 개설된 제주도 14개교의 중학원은, 정부수립 이후 정규 중학교로 승격되거나 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중학교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학교로는 연평중(현 우도중), 표선중, 안덕중, 신창중, 추자중, 함덕중, 남원중 등이다.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 온 피난민 수는 1951년 5월에는 14만 8794명에 이르러, 제주도민의 절반을 넘어섰다. 피난민을 수용한 초등학교로는 분교장 형태의 20교, 피난 중등학교로는 분교장 형태로 오현고등학교가 설립인가를 받아 운영되다가 서울수복 등으로 1955년 2월 폐교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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