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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40년 경영학 교수 조헌치씨의 '인생 2막' 그리고 '헌치 카페'

 

"입에 들어가는 걸 엉망으로 만들면 쓰나. 한 잔을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어야지"

 

커피 원액을 내리는 손이 익숙하다. 고희(古稀)를 앞둔 나이가 무색하다. 도전을 잊지 않는 자, 아직도 청춘이다. '황혼의 바리스타' 조헌치(67)씨. 올해로 정식 입도 3년차다. 

 

그는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구좌읍 송당리 길목에서 잠시 쉴 곳을 찾는 올레꾼들을 맞이하며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바로 그의 이름을 딴 '헌치 카페'에서.

 

광주에서 자란 그는 근 40년 가까이 '경영학과 교수'라는 명패를 달고 있었다. 남부대 대학원장이 그의 은퇴 전 최종 직함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논문과 16권에 달하는 저서를 펴내면서 밤을 지새길 수십년. 그의 곁엔 언제나 술과 커피가 있었다. 

 

술은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 동반자요, 커피는 긴긴 날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고생하다 은퇴하면 목포나 여수에서 횟집을 열까 했지"

 

그는 회를 곁들인 소주가 그렇게 달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원래 '교수님'이 아닌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이름을 내건 가게를 갖고 싶었다. "당신, 이제 65세다"라며 떠밀리듯 하는 은퇴가 아닌, 스스로 떠나고 싶은 날에 떠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는 좌우명 탓일까. 섣불리 사업에 뛰어들지 못했다. 대신, 전남 광주 남부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서 창업 연구에 몰두했다. 먼 날을 살아가야할 학생들에게 지식과 인생론을 전파하며 꾸준히 뒷날을 계획했다.

 

"이제 80세는 웬 말, 100세 인생입니다. 직장에서 은퇴해도 40년이나 더 살아야 합니다. 그 긴 시간을 등산이나 여행만 다니면서 보낼 겁니까?"

 

전국 곳곳에 강연을 다니면서 단 하루라도 '인생 창업'을 머릿속에서 지운 적이 없었다.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는 해답을 제주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는 사회생활의 터전이었던 광주는 무조건 떠나고 싶었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이들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인생의 고즈넉한 후반기를 사회생활의 연장선처럼 보내기 싫었다. 

 

하지만 몇 십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툭하면 동틀녁까지 이어졌던 술자리에 위장과 간 등이 약해져 있었다. 술은 즐기는 것이지 쉬는 것과는 달랐다. 이제 정말 쉬고 싶었다. 그렇다면, 인생의 또다른 친구였던 커피는 어떨까. 그는 찬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회는 정년퇴임이었다. 2017년 8월 말 마침내 해방이다. 그는 은퇴 3년 전부터 스스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우선 제대로 커피를 만들 줄 알아야 했다. 이름을 건 카페인데, 적어도 맛은 보장해야할 것 아닌가. 그는 예순을 갓 넘긴 해 학원에 등록해 수개월 준비한 끝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만 따면 '바리스타'인가? 아니다. 손님에게 커피를 내놓을 때야 비로소 바리스타다. 

 

 

그는 바리스타로서 새롭게 출발할 보금자리를 물색하던 중 제주도가 눈에 들어왔다. 교수생활을 근 40년 가까이 해오면서 각종 회의가 열릴 때마다 셀 수도 없이 제주를 방문했다. 정착민과 방문객이 공존하는 섬. 웅장한 한라산과 368개의 오름이 환상적인 섬.

 

특히 신들의 고향이라는 송당에 마음이 갔다. 제주도 본향신의 원조라고 전해지는 송당 본향당이 이곳에 있었다. 본향신이란 마을의 토지와 마을사람들의 출생·사망 등을 관장하는 마을 수호신을 말한다. 제주 곳곳의 본향당에는 송당 본향신의 자손들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주의 출발인 이곳에서 2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게 어떨까. 

 

결심이 서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퇴직을 1년 앞두고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오석심공예명장관'을 겸한 '헌치 카페'를 세웠다.

 

'오석심공예명장관'은 그의 아내이자 제1호 종이공예 명장인 오석심 박사를 위한 헌사였다. 오석심 박사가 남편인 조헌치 교수를 정성껏 보필하면서도 40여년간 종이 공예만을 연구, 개발해 하나하나 쌓아간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공예명장님 작품을 전시해 뒀는데 커피도 그 값을 해야지"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또 아내인 오석심 박사의 작품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수없이 익혀온 그 만의 '커피 레시피'를 공개했다.

 

'헌치 카페' 커피의 핵심만을 담아놓은 비법서에는 메뉴 하나하나마다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쓰이는 기구와 원두 분쇄 크기, 원두와 물 등의 비율, 추출에 걸리는 시간까지. 혹시 나이가 들어 깜빡 잊을까봐 자세히 써뒀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커피 머신의 작동법과 구조가 궁금해 머신을 직접 분해해 보기도 했다.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라는 좌우명은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조헌치 컴퓨터 일기'에서도 드러난다. 경영과 창업 연구만 30여년. 언제나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조교와 부인이 든든히 보필했기에 이제껏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몰랐노라고 그는 쑥스럽게 고백했다.

 

'PC자판 알기'부터 '메일 읽기와 보내기', '한글 작성 후 쪽 번호 만들기' ... 

 

컴퓨터를 접하는 누가 보더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그는 이제 혼자서도 비행기표도 예매할 수 있고, 유튜브 동영상도 업로드 할 줄 안다고 만족스레 웃었다.

 

"나를 '경영학과 조헌치 교수님'이라고만 아는 사람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랄거야"

 

그는 제주에서의 생활을 '행복'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했다. 

 

첫 시작은 걸음마부터라고 했던가. 제주에서의 새출발은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였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썩 즐거웠다. 아내인 오석심 박사는 그가 입도한 이후에도 쭉 종이공예 명장으로서 뭍에서 나래를 펼치고 있다. 덕택에 그는 밥 짓기부터 빨래, 청소는 물론 손님맞이와 가게 뒷정리도 오로지 혼자서 해내고 있다.

 

현재 그의 생활은 교수직에 있을 때와 다르다. 느림의 미학이다. 그의 집은 카페 2층,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맞닿아 있다.

 

 

오전 7시까지는 꼭 일어나 밥을 앉힌 후 집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나면 딱 알맞게 밥이 완성된다. 소소하게 상을 차려 아침을 먹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1층 '헌치 카페'로 내려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는 "손님이 딱 오전에 2팀, 오후에 2팀 씩만 왔으면 좋겠어"라고 농담삼아 말했다.  '헌치 카페'는 비자림로와 용눈이오름, 아부오름 등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목적지로 가기 전 휴게소를 발견한 것처럼 자연스레 발길을 멈춘다. 초입부에 이끼가 푸릇하게 낀 돌하르방과 '오석심공예명장관'이라는 표지판이 있어서다.

 

'헌치 카페'를 찾는 것은 관광객 뿐만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알던 지인, 제자, 후배 등 길고 긴 삶에서 알게 된 이들도 수시로 방문한다.

 

그는 이게 제주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제주에 여행온 김에 조헌치 선생님 뵈러 왔어요" "조헌치 선생님 뵈는 김에 제주 한바퀴 둘러보려고요" 라고 찾아온 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사람이 좋다는 그는 빈거료시무상식(貧居鬧市無相識), 부주심산유원친(富住深山有遠親)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번씩 되새긴다고 한다.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장터에 살아도 얼굴 아는 이가 없고, 부유하게 살면 깊은 산골에 살아도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는 명심보감의 글귀다.

 

 

그는 '가난'과 '부유'의 기준을 재산의 유무가 아니라 '존재 가치'의 유무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존재 가치란 무엇인가. 바로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카페에서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커피를 만드는 지금, 손수 식사를 준비하고 사는 공간을 가꾸는 지금,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과 담소를 나누며 미소짓는 지금. "이 커피, 참 맛있다!"는 한 마디가 뿌듯하다. 그는 스스로 가꾼 일상에서 커피 원액을 내리듯 한 방울 한 방울 행복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제 그에겐 또 다른 꿈이 익어가고 있다. 한 해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만 1500만명. 관광객들은 명소뿐만 아니라 들른 식당 등에서도 '제주'라는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그렇다면, '헌치 카페'에 들른 손님들이 돌아가서도 '제주'와 '헌치 카페'를 같이 떠올렸으면 좋겠다. 수많은 제주의 얼굴 중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술을 엮은 '커피콩 술'을 만들어낸 데 이어 '커피 와인' 생산을 연구하고 있다. "제주도에 갔더니 이런 곳도 있더라"라는 말이 듣고 싶다. 

 

그렇게 그는 제주에 살고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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