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조선시대 제주목과 대정현을 잇던 평화로운 마을 ... 지친 나그네의 쉼터

 

쾌청한 아침을 맞은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야영수련회에 나섰다. 영지는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리조트이고, 음식은 식당에서 해결하였다. 예전의 캠프 화이어 행사는 강당의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전문가가 진행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학교라고 변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야영지에서의 밤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마력을 지닌 모양이다.

 

밤하늘의 별을 세며 놀던 옛 정취에도 빠져들게 한다. 학생들도 이밤 무슨 정취에 빠질까. 그들도 자연을 만나면 감정의 골이 높아질 것이다. 야영지에서의 밤은 그렇게 익어간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기상한 나는 혼자서 주변산책에 나선다. 리조트 주변에 계곡이 있어 산책하기에는 적격이다. 어쩌다 생을 마감한 까마귀가 보여 적당한 곳에 묻어주고 계곡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원동마을 안내글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산책을 나섰다 예기치 못한 행운을 얻은 것이다.

 

폐동이 된 원동마을의 비극을 여러 번 들었는데, 오늘 그 현장에 내가 간 것이다. 애월읍 소길리에 소재한 원동(院洞)마을! 지금은 사라진 마을이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름이다. 20가구가 채 안된 원동마을은, 조선시대에 제주목과 대정현을 잇는 중간지점으로 지친 나그네가 잠시 쉬어가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인근마을인 애월읍 하가리와 상가리에서 주민들을 학살한 제9연대 군인들이 이곳 주민 60여 명을 죽이고는 시신 위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였다.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고, 부모와 고향도 잃은 채 고아로 지내야 했다. 이들 중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한 재일교포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영 혼들의 넋을 달래는 무혼굿을 1990년 이곳에서 행했다는 사연을 담은 글을 읽는 내내, 눈시울은 붉어져만 갔다.

 

바로 지척에서 승용차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아하, 바로 이곳이 평화로 중간지점이었구나. 계곡 주변에 들어찬 팽나무 군락 뒤편엔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계곡을 건넜다. 옛날 마을 중심지였을 넓은 공터가 나타났고, 그 너머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일고 있었다. 이곳에는 그 옛날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객청이 있었을 게다.

 

원동마을에 대한 상념에 젖다보니 영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2010)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