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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문화의 발상지 삼양동 ... 한라산 정기가 서린 오름과 평지가 어울린 곳

 

이곳은 기황후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기황후는 고려의 공여(貢女)로 몽고에 갔다가 원나라 순황제의 제2왕후가 된 이다. 그녀가 아들을 얻기 위해 고심할 때 한 승려가, ‘동해 바다 북두의 명맥이 비친 3첩7봉 아래 사찰을 짓고 탑을 세워 기원하라’라는 계시를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황후가 짓게 한 절이 원당사이다. 그녀는 원당봉에 절과 탑을 세워 부처의 공덕으로 아들을 낳아달라고 빌었고, 그 뜻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원당봉 정상 아래의 굼부리에도 절집이 들어서 있다. 그 절집을 둘러싼 능선을 타고, 산책하는 것도 별미이다. 나무들 사이사이로 한라영봉과 오름 군락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장생의 생약이 있으렸다. 원당봉에는 진시황제가 보낸 사자들이 불로초를 찾으러 들렸었다는 전설도 있다. 3첩7봉이 있는 곳에 불로초가 자란 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하산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선사유적지로 향했다. 제주의 조상들이 살았음직하게 복원된 움막집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바로 그 곁에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한 전시관도 있다. 삼양동 곳곳의 지형을 살펴보면, 아주 오래전 탐라선인들이 왜 이곳에 삶의 둥지를 틀었었는지 하는 의구심이 꽤나 풀린다.

 

해안가가 내륙 안으로 발달되어 태풍으로부터 안전할 수도, 바다에서 고기를 쉽게 잡아 끼니를 해결할 수도, 바닷가에서 솟는 용천수로 식수도 해결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제주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곳, 한라산 정기가 서린 오름과 평지가 어울린 이곳, 이곳이 바로 제주역사문화의 발상지였다.

 

오솔길을 한참 오르다보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밭 가운데에 보이는 나무그늘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한 여름의 정적을 벌레 소리가 깨우곤 했다. 한차례의 바람에도 내 몸이 기쁨으로 떨렸다. 이 맛과 멋스러움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나선 이유인가 보다.(2007)

 

추신: 삼양동 유적지는 1996년 토지구획을 정리하다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면서 주목을 받은 곳으로, 지금은 이곳에 선사유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약 3만 평 정도의 이곳에 기원전 300년 무렵 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한다. 확인된 집 자리만 무려 236기가 있었던 이곳 삼양동도 기원후 100년경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다.

 

불에 탄 흔적도 전염병이 창궐한 흔적도 없이,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폐허가 된 것이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혹시 탐라국 건국의 핵심세력인 용담동 세력에 의해 밀려난 건 아닐까. 용담동 사람들에게 밀린 삼양동 사람들이 동쪽 종달리로 쫓겨 간 것은 아닐까. 최근 종달리에서 삼양동의 것과 유사한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제주역사기행’의 저자인 이영권은 고인돌 비교에서 이를 뒷받침 한다.

 

당시 권력자의 무덤인 고인돌이, 그동안 파괴된 숫자로도 용담동이 훨씬 많았겠지만, 현존하는 것으로도 삼양동에는 4기, 용담동에서는 9기가 남아 있으며, 크기에서도 용담동 권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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