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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태의 [퓨전제주무림(武林)(5)] '어린이무림날엔 난개발 현장서 수련하자'

 

*송악산 편 주요 등장인물=반야검-안나낭자-치타낭자(엄마무림인), H자객(전 서귀포시맹주), 영웅검(제주환경운동연합방 사무처장), 근민노사(전 제주맹주), 재호거사(중앙무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장두(狀頭)), 희룡공(제주맹주), 성진-성철검자(언론무림인),

 

바람이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서 있던 이름 모를 풀들이 힘에 겹다며 온몸을 흔들어 댔다. 바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윙윙 소리를 냈다. 아이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아찔했다.

 

곳곳에 붕괴위험 팻말이 보였다. 팻말 밑으론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줄줄이 이어졌다. 어린이집무림 수련생으로 보였다.

 

한 무리의 엄마검객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 손엔 도시락을 들고, 등엔 아이를 업은 안나낭자가 외쳤다.

 

“애들아 조심해. 송악산 부서지잖아!”

 

안나낭자 등에 업힌 아기가 아기띠에 묶인 채 칭얼댔다. 돌을 갓 넘긴 것 같았다. 심통이 난 표정으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쳐다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안나낭자가 방심한 틈을 타 손을 내밀더니 산책로 바위를 한 조각 떼 내고는 움켜지었다.

 

‘파삭’

 

자갈과 모래가 섞인 눈물이 아이 손 밑으로 흘러 내렸다. 소나무가 비명을 질렀다. 민망하게 드러낸 뿌리로 바위를 붙잡고 있던 소나무였다.

 

무림 2019년 5월 5일이었다. ‘탐라국을 지키는 엄마검객’ 회합 자리였다. ‘어린이무림날엔 난개발 현장서 수련하자’라고 쓰인 깃발이 송악산 앞 바다에서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 거렸다.

 

8명의 아이들이 송악산 둘레길 수련을 마친 후였다. 송악산 초입 잔디광장에 돗자리를 편 엄마검객들이 캔 맥주 하나 없는 도시락을 꺼냈다.

 

“저기 음주수련 금지 플래카드 보이지. 1차 위반 시 5만금, 2차 위반이면 벌금 10만금이야.”

 

반야심경(般若心經) 무공이 주특기인 반야검이 말했다. 어린이비급서읽히기무공과 친환경유기농무공, 공동육아무공까지 수련하며 두각을 나타낸 엄마검객 리더였다.

 

“그러게요. 분화구가 무너지고 있다고 하네요. 객기 부린 음주수련인 탓인 것 같아요. 같은 무공인인 저도 미안해요.”

 

안나낭자가 답했다. 급하게 페미니즘무공을 수련하다 주화입마를 입고 머리카락 한쪽 귀퉁이에 새치가 생긴 안나낭자였다. 새치가 겨울왕국 안나공주와 흡사하다 해서 호(號)를 ‘안나’라고 지었다고 했다.

 

장쾌한 풍경이 그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웅장한 산방산과 송악산이 서로 손을 잡고 바다를 얼싸 안고 있었다. 조각 같은 형제섬은 다정히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별다방(Starbucks)이 장악했네.”

 

반야검이 말에 엄마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별다방으로 향했다. 치타낭자가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컵을 등 뒤로 슬며시 숨겼다. 송악산 입구 중앙에 둥지를 튼 별다방에만 수련생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기 미국무림지존비무 후보로 거론되는 하워드슐츠객과 신세계그룹방이 세운 요새 핫 하다는 다방이다. 몇 안 되는 다른 가게는 텅텅 빈 채 적막감만 감돌았다.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은 아이들이 다시 공중부양놀이를 시작했다. 안나낭자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소리쳤다.

 

“제발 좀 조심해서 수련해! 여기까지 부서지면 너희들 수련할 곳이 사라지잖아.”

 

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반야검이 반야심경을 읊기 시작했다. 엄마검객들이 눈을 감았다. 270자. 반야계 여러 경전의 정수를 뽑아내 응축한 경전이었다. 한 자라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빠바바 밤~’

 

반야검의 독송이 베토벤의 ‘운명’ 교황곡처럼 송악산을 울리고 있었다. 독송을 마친 반야검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19년 전 일이야. 수많은 제주무림인이 여기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지. 어둠속에서 황금이 오고 갔던 의혹도 있었어.”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 =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산업경제학과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 조아농장(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닭을 키우며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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