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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기념일 고사를 지내며 축제로 승화 ... 온고지신의 생활화를 꿈꾼다

 

우연의 일치인지 특별한 만남인지 모를 또 하나의 색다른 축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등할망이 지나가는 시각에 학교에서는 개교기념일을 축원하는 고사(告祀)를 지내기 때문이다.

 

텅 빈 학교에서 축문을 손질하고 있었다. 교정에 나서니 바람이 더욱 거센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 정도 강풍이면 뭍을 오가는 도항선도 운행을 멈출 것이다. 낮의 흥겨운 거리축제에서 만난 날씨가 밤이 되어 이렇게 변화하다니. 이 소리는 어쩜 영등할망이 우도를 떠나는 기별일지도 모른다.

 

목욕재계(沐浴齋戒) 후 학교의 ‘안뜰 갤러리’로 갔더니, 앞서 온 교직원들이 병풍 앞에 상을 차리고 음식을 진설하고 있었다. 바람만이 기별을 전하듯 지나가는 심야 교정. 초헌관인 학교장이 개교기념일에 부치는 축문을 읽어 내려가는 소리만이 우도교육가족의 바람과 함께 바람속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천지대왕님과 저승과 이승을 관장하는 대별왕님과 소별왕님, 제주도와 우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시고 영험한 기운을 불어넣으시는 설문대할망과 이제 제주를 떠나시는 영등할망, 그리고 우도초·중학교와 병설유치원을 살피시는 토지신과 건축물 정령들이시여!

 

큰 꿈을 갖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저희 학동들의 의지와 희망을 더욱 고취시켜 주옵시고, 그들이 안전하게 등하교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인성과 창의성이 넘치는 학생 중심의 학교문화가 더욱 다져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들에게 더 큰 사랑으로 다가 갈 수 있게 모성애(모다들엉 집단지성)를 발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덕성과 지성의 선물을 내려주옵소서. 또한 학부모와 주민들과 어울려 빚어내는 교육공동체의 언행들이, 아름다운 화음을 이뤄낼 수 있도록 살펴주옵소서.

 

우리 아이들이 우도와 제주를 사랑하고 세계를 누비며 그들의 꿈과 끼를 발현할 수 있도록, 그들이 새벽을 깨우고 눈을 밟아 길을 내려는 의지로 학교생활을 더욱 알차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옵소서.

 

교정 도처에서 서로 어울려 웃음꽃과 질문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자기주도적 학습의욕을 불태울 수 있도록, 100세 건강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교내외에서의 다양한 체험활동이 안전하게 이루어져 그들의 관심과 지식이 넓고 깊어져서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그들과 교직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사제동행이 일상화되어 영원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앙양될 수 있도록 교육의 길을 밝혀주옵소서.

 

이제 우도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저 어둠이 다시 찬란한 빛이 되어 우리 주위를 밝혀주듯, 우리 아이들도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어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어른들로 자라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그러기 위해 저들에게 미래핵심역량인 문제해결력과 자기주도적 학습 그리고 타인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길 거듭 간청 드리옵니다. 삼가 영험한 기운을 주시는 정령님들이시여 영원불멸하시옵소서!

 

차례가 끝날 즈음에도 유리창 두드리는 바람소리는 여전히 깊은 밤을 깨우고 있었다. 차례를 마친 일행 몇은 세찬 바람을 맞으며 교정 도처에 막걸리와 소주를 음복주로 드렸다.

 

신경이 마비될 정도로 양손이 어름손이 되었다. 엄동설한의 추위가 다시 엄습했다는 생각보다 영등할망이 우도를 지나가는 길에 우리학교를 들려주심에 반가운 맘이 일렁였다.

 

축제로 승화된 음복과 덕담을 나누며 다시 온고지신의 생활화를 꿈꾼다. 옛 것을 찾아내고 계승 발전하는 것도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고 도리이리라.(2016)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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