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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시선] 수긍할 수 있는 개인사의 변화와 사회적 관계망 파괴인 변절

 

기미년 3.1독립운동 100년이다. 그리고 100년 전 그해 4월 11일은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정부가 그 시작을 알렸다. 임시정부수립일이다.

 

임시정부는 고국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서는 신호탄이었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어, 머리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을 모아 중국, 만주,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촉발되는 지점이 있다. 오랜 기간 마음 속에 자리잡힌 의문이다. 3.1 만세운동의 함성을 이끌거나 초창기 독립운동에 참여했건만 돌아선 이들의 의식구조다. 민족의 배신자들의 생각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수화된다고 한다. 보수라고 하면 진보와 대별되는 말이면서 고리타분하다고 보이지만 나는 그것을 포용력이나 이해심이라고 달리 말하고 싶다. 모나지 않으면서 둥글고, 물불 안 가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이라도 조심하고, 내 주장을 강조하기 보다는 들을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사상이나 주의에 심취한다. 다른 생각을 듣지 않거나 무시하기도 했고, 내 한 몸 안 아끼고 정의의 대열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여러 생각을 들어보려고 한다. 또 훌륭한 의견에는 네 편, 내 편을 떠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횟수가 많아졌다. 이제는 불의에 몸 바쳐 싸우거나 올바른 일이라도 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올인'하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30대 이전에 맑스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고, 그 이후에도 맑스주의자라면 두뇌가 없다고 할까?

 

그런 변화가 후배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이 변하고, 나이가 들면서 보이는 세상 또한 다양해지는 건 무릇 이치다. 인간의 성장은 자연히 포용력과 이해심이 넓어지는 것이리라. 

 

직장을 갖게 되고 가족을 이루며 살게 된 것도 그렇게 변화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배우자와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내가 불효했던 부모님이 한없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쉽게 세상에 이 한 몸 던지기는 쉽지 않다.

 

사람의 변화는 증명되거나 이론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보편화된 삶의 궤적이다. 문제는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그 개인이 사회에 미칠 영향이다. 주변과 여러 갈래로 연결되어 있거나 사회의 지도 위치에 있게 되면 개인의 생각이나 변화도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게 변화는 인간 개인에게서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르나 변절은 사회적 관계에서 벌어지기에 그만큼 심각하다. 그래서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현재를 살아가면서 그 당시 주역들의 궤적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항상 역사는 현재에 투영되고 미래의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3.1 기미독립선언서에 참여했거나 당시 민족대표라고 지칭되던 사람 중에 변절자들은 천도교의 최린(후에 해방될 때까지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선봉대가 됨), 기독교 출신의 박희도와 정춘수, 이화여대를 창설한 김활란, 문학계의 거목 최남선과 이광수 등 수없이 많다.

 

일제 말기로 갈수록 탄압은 심해지고 변절자들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그들은 일제의 보호와 배려 속에 호의호식했고, 지조를 잃지 않고 조국 광복을 바라며 몸과 마음을 받친 선배들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 

 

훗날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별의별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변화는 계절을 지내는 자연사와 같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변절은 역사의식의 빈곤, 철학의 부재,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고 본다. 

 

민족 반역자들은 언제 제대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던가? 용서와 화해는 진정한 뉘우침과 응당한 죄값을 치르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의 시간이 너무 흘렀기에 포용하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 또한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3.1 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해에 내 스스로는 변화하고 있는지 변절을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그러면서 역사에 겸손해지고, 사람에 공손해지고자 한다. 

 

조국 광복을 이끈 선배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래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그 선배들의 발자취다.

 

임정수립 100년인 11일-. 그 결기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조국광복의 그 날까지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의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았던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엿하게 세계 10위권 국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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