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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이상훈 '사람을 사람으로' ... 동반자와 사투하며 걸어간 고난의 길

“당신 같은 사람들이 국경 밖에서 후투족을 먹여 살려놓았기 때문에 르완다의 이 지옥 같은 내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100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르완다 내전 직후, 투치족 출신의 군 소령이 한 말이다.

 

황당했다. 자기네 나라의 난민들을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감사하기는커녕 불행을 지속시키는 원흉처럼 말하니 말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의 말도 충격적이다. “너희는 우리 르완다의 불행을 먹고 살아간다. 남의 나라의 비극을 알리고 그렇게 모금된 돈으로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지만 너희들을 위해 사용하는 돈이 더 많은 것 같다. 모금된 전액을 보낸다는 것을 믿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저자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24년간 르완다를 시작으로 우간다, 케냐,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등의 지역에서 구호와 개발, 피해복구 사업을 벌여왔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인간들이 저지른 비극의 희생자들을 ‘사람으로’ 귀히 여기며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책은 그 힘겨웠던 사투의 기록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앞에서 믿음과 사랑, 구원의 희망을 부여잡고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이의 고백이요, 개발협력의 현장 보고서다.

 

어떻게 이기심을 극복할 것인가

 

저자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었던 20대에는 ‘이기심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헌혈을 실천했다. 학생군사교육단(ROTC) 장교로 복무한 군대에서는 자신의 월급을 소대원들을 위해 사용했다. 막사를 고치고, 멋진 체육복을 사서 소대원들에게 줬다.

 

하지만 이기심의 단단한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개발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우간다의 대장장이들을 보고는 개발단체의 한계를 절감하며 시장경제라는 바다와 개발단체라는 조각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1대1 결연사업’이다. 한 사람이 한 아이를 후원하는 이 사업은 호응도도 높고 지속성도 있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딜레마는 돈의 모금처와 사용처가 다르다는 것이다.

 

‘모금은 아동을 팔아서, 사업은 현지 주민의 필요에 의해서’.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이것이 아동후원사업을 하는 단체들의 태생적 한계다. 특정 아이를 위한 후원금이 그 아이에게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시비가 발생한다.

 

학부모들과 합의해 유니폼 살 돈을 적립해서 염소를 한 마리씩 사서 나눠주기로 했다. 그런데 후원하는 분이 아이에게 물어본다. “옷이 너무 낡았는데 내가 보내 준 후원금으로 유니폼 안 사 주더냐?” “작년부터 입었는데 올해는 안 받았어요.”

 

후원자가 발끈한다. “아이에게 갈 염소를 당장 내놔라”, “옷을 사 입히라고 준 돈으로 염소? 염소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느 세월에…”라며 막무가내로 나온다. 후원금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이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구호와 개발의 현장은 다양한 상황과 변수가 존재한다. 1000명의 아동이 다니는 학교에서 후원을 받는 아동이 300명이라고 하면 이 아이들은 따뜻한 점심을 먹지만 나머지 700명은 둘러서서 부러운 듯 쳐다보는 상황이 벌어진다. 가혹한 풍경이다.

 

그래서 저자는 ‘급식을 전원에게 실시하든지 아니면 아예 하지말라’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보내는 후원금보다 바라는 게 더 많은 1대1 결연사업은 이처럼 현실과 원칙, 상황과 윤리, 현재와 미래의 딜레마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길이 있는 곳에 동반자가

 

이 책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에 지원한 저자가 현장에서 맞닥뜨린 절망적 상황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구호를 받으며 의존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 선의(善意)를 배반하는 결과들, 부정부패에 무감각한 직원들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가 배어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 놓은 주택들이 뜯겨져 나가기도 했다. 총책임자가 연루된 집단적 횡령으로 다수의 직원들을 해고해야 했다.

 

고되고 험한 여정의 고통을 저자는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동반자’가 있었다. 르완다 난민촌에서 만난 그의 아내다.

 

 

이 책 곳곳에는 저자와 함께 화해와 희망의 길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들이 등장한다. 참혹한 내전을 통에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났지만 회개와 용서로 진정한 화해를 이룬 타데오와 사라비아나, 열성으로 묘목장을 운영하여 마을의 산사태를 막은 청년 알렉스, 오랜 지혜와 뚝심을 발휘해 식수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낸 삼손 촌장이 대표적이다.

 

동기들의 도움에 힘입어 추진한 프로젝트도 감동을 준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염소 프로젝트’, 탈북 여성의 소망을 들어준 ‘크로싱 프로젝트’다. 이 모두가 저자에게는 어둡고 험한 길을 비춰준 ‘별빛’들이자, 감동과 축복의 순간들이었다.

 

“진정한 도움이 되려면 잊어야 합니다” ... 우리가 걸어야 할 희망의 길

 

“사랑해본 사람은 압니다.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사랑을 받는 사람도 귀한 존재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큼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열매만 맺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나서 얼른 생각을 지워야 한다. 돕고 있다거나 도왔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때 진정한 도움, 사랑이 가능하다. ‘우리가 걸어야 할 희망의 길’이다.

 

저자는 개발단체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과 급히 필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발단체가 나름의 철학과 비전에 따라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지역사회의 가치 실현을 위해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혜자들을 뒤로한 채 기부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에만 매달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개발의 효과는 단기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것은 누구의 공인지도 모를 정도로 푹 묵혀져야 나타나는 것일지 모른다. 그만큼 뚜렷한 철학과 장기적 안목, 꾸준한 투자가 중요하다.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구호와 개발 분야에 인생을 바친 저자가 새로 시작한 일이 있다. 병원 건립이다. 검진조차 받기 힘든 르완다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시설과 장비를 갖추기 위해 의료선교사 부부와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병원을 지은 후에는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르완다 최초의 여성대학을 세우는 것이 꿈이다. 그가 어느 시상식에서 한 말이다.

 

“1885년 처음 조선의 땅을 밟으셨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암담하셨을지도 말입니다. 죽어서도 조선에 묻히고 싶어 하신 선교사님의 사랑의 실천에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

 

연세대를 설립한 언더우드가 한국에서 이룬 역사가 르완다에서도 이뤄질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자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충실하게 따라왔던 저자”(유원식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 “개발NGO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에게 대표적인 롤모델”(조대식 KCOC사무총장),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온전히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박용민 전 주르완다 대사), “언제나 사람들과 협력했고 한결같은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습니다”(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등이다.

 

저자는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신념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것을 강조한다. 어떤 목적과 가치를 위해서도 사람을 도구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서출판 두앤북, 1만4000원.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저자 이상훈(52)은?

 

‘광야’의 시인 이육사의 모교 교남학원(현 대륜고)의 후배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 기아봉사단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 르완다난민촌으로 파견되고, 뜻이 같은 동반자를 만나 ‘구원’의 길을 함께 걷는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르완다, 우간다, 케냐 등 동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구호와 개발사업에 헌신해오고 있으며, 캄보디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르완다 개신교대학(PIASS) 개발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의료선교사 부부와 힘을 모아 병원을 짓고 있다. 유치원부터 르완다 최초의 여성대학까지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2018년 연세대 언더우드기념사업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상’을 받았다. 아울러 <제이누리> 창간 초기부터 필진으로 합류, '아프리카동신'을 연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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