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제주, 제주인] 제주시티발레단 김길리 단장, 발레리나 유학의 종착역 고향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다진 청준 ... "고향서 새로운 개척"

 

새로운 길을 가고 싶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그런 길.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무용,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발레다. 

 

'발레'에 발을 내딛으며 고향 제주도를 떠났고, 외국에까지 갔다. 하지만 결국 돌아올 곳은 제주였다. 삶을 일굴 곳은 결국 고향이었다. 

 

이제는 이 제주에서 발레의 길을 닦고자 한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이 길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는 흔적을 남기려 한다. 그렇게 발레가 제주에 널리 퍼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주시티발레단 단장 김길리(39)씨.

 

김 단장은 제주시 일도2동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일대가 어린 김 단장과 친구들의 놀이터였다. 학교가 끝날 무렵이면 그와 친구들은 산지천이 가로지르는 그 일대를 뛰어다녔다. 

 

하지만 주말은 달랐다. 그에게 주말은 무용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말이면 늘 한국무용을 하던 이모를 만나 무용연습을 하곤 했다.  

 

“이모님은 항장 저를 붙잡고 무용을 가르치려 했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모님을 따라 연습실에 가곤 했죠. 이모님이 항상 무용을 가르치려 해서, 자연스럽게 그때부터 무용을 해야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그렇게 이모를 따라 어깨너머로 배우던 무용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한국무용이 배움의 시작이었다. 이모의 영향이었다. 

 

중학교로 넘어가자 새로운 문이 열렸다.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배우는 한국무용 이외에 부수적으로 현대무용을 배우게 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한국무용은 ‘전공’, 현대무용은 ‘부전공’이 된 셈이다. 

 

그 '부전공'이 전공을 앞지르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흥미도 한국무용에서 현대무용으로 넘어갔다. 고교 시절엔 전문적으로 현대무용을 가르치는 강사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그를 가르쳤다. 그리 풍족한 집안살림은 아니었지만 부모는 묵묵히 그의 후원자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발레에 시선을 두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발레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다른 분야보다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더군다나 제주도에 발레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어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느낌이었죠.”

 

 

남들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선택했던 발레, 그는 고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제주에서 발레를 배우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제주는 발레의 불모지였다. 여기에 더해 부산으로 항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부산 발레의 1세대로 알려진 김정순 교수에게서 발레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 단장은 그렇게 신라대(당시 부산여대)로 진학,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 말리는 나날이었다. 그 시간이 빛을 발했다. 김 교수는 그를 눈여겨봤다. 그에게 러시아 유학을 권하고 추천서를 써주기까지 했다. 

 

“유학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러시아를 염두에 뒀습니다. 러시아는 발레로 시작해서 발레로 끝난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는 러시아의 페름으로 향했다. 2001년, 대학을 막 졸업한 23살 무렵이었다. 페름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14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다. '발레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가 선택한 학교는 ‘페름 국립대’였다. 

 

러시아에선 2년6개월 동안 살았다.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언어문제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발레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즐거움이 그런 감정들을 앞섰다. 

 

러시아 유학생활을 끝내고 그는 다시 서울에 거처했다. 발레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점차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을 느꼈다. 계속된 타지 생활, 알게 모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 결국 몸에 병이 생기고 말았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휴식이 필요했다.

 

아픔 속에서 그리워지는 것은 고향, 부모님의 품이었다.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몸이 안 좋아 공부를 접을 수 밖에 없었어요. 부모님 옆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김 단장은 그렇게 제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레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열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제주에 발레를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열정이었다. 

 

김 단장은 “무식한게 용감한 거죠”라고 말했다. “사실 발레는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도 분명히 있어요.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러시아에 다녀온 이후에 제주에 와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결국에는 발레의 불모지와도 같은 곳에 한국발레협회 제주지회도 만들 수 있었어요.”

 

한국발레협회 제주지회는 그가 귀향하고 난 뒤인 2014년에 만들어졌다. 현재 지회장은 김 단장이다. 

 

“한국발레협회 회장이 도움을 주셔서 제주에서 한국발레협회 제주지회를 창립할 수 있었어요. 사실 발레는 세계공통어에요. 무용이라는 분야를 넘어서는 소통의 도구죠. 어느 나라를 가도 발레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김 단장은 발레를 통해 제주가 문화예술의 섬으로서 세계와 소통하고, 세계로 나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제주시티발레단도 제주에서의 발레 보편화를 위한 움직임이었다. 더욱 다양하고 활발한 공연을 위한 발판, 제주에 발레를 더욱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의 시작이었다. 제주시티발레단은 지난해 7월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의 창단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제주에서는 아직까지 발레라는 장르를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발레는 극장예술이에요.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한계점은 분명히 존재하죠. 이런 한계점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더욱 많은 공연으로 다가가려 했습니다.”

 

그렇게 '발레와 함께 하는 탐라나들이', ‘라트라비아타’ 제주공연,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등의 공연에 참여했다. 

 

오는 22일에도 국내・외 정상급 무용수들이 모이는 국제 발레공연을 준비중이다. 오는 22일 오후 7시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발레 스타 갈라쇼’다. 

 

제주시티발레단 및 서울발레시어터 등 국내 발레단과 함께 체코프라하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들, 도쿄시티발레단 등이 참여하는 화려한 라인업의 발레 공연이다. 

 

이 공연을 위해 김 단장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삐 움직인다. 아침에 제주시 집에서 나와 공연 준비를 하다보면 어느새 밤 11시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눈을 붙이고, 다시 눈을 뜨면 공연 준비다. 

 

하지만 공연 준비 이야기를 하는 김 단장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생기가 넘쳐난다. 

 

 

“이번 공연에는 국내에서는 발레리노 김형웅씨와 함께 ‘댄싱9’에서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무용수 이선태씨 등이 참여를 해요. 멋있는 라인업이죠. 이런 분들과 함께 해외 무용수들이 제주도를 찾아 공연을 하는 것이에요. 국제 발레 공연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김 단장의 바람은 이런 공연들을 통해 제주도에서 발레가 더욱 활성화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공연들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제주도에도 도립발레단과 같은 것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제주에서 발레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뭍지방이나 해외로 나가더라도 다시 제주도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김 단장은 “그런 자리들이 만들어졌을 때 도민들 역시 더욱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단장은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터널 속은 어둡지만, 언젠가는 터널의 끝이 나오고 그 끝에는 분명 밝은 빛이 있다. 하루하루가 어둠이지만 언젠간 보람으로 돌아오리라 믿는 것이다.  

 

발레리나의 꿈을 꾸던 스무살 제주의 여성이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돼 그 꿈을 일굴 제주의 미래세대로 시선을 드리우고 있다. 그 시야는 이제 고향 제주, 그의 꿈은 '발레'로 새로이 열릴 '새로운 제주'.

 

그렇기에 그의 24시간은 요즘 턱없이 모자라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