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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회] 절 오백 당 오백에서 제주선인들의 삶을 엿보다

 

조선시대 제주는 무속신앙과 불교가 성행하였던 사회였다. 당굿은 오랜 기간 동안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선인들의 제천행사이며 마을축제였다.

 

음력 정월에는 마을 수호신에게 인사를 드리는 신과세제, 음력 2월에는 영등신을 모시는 영등제, 한여름에는 우마의 번성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백중제(마불림제), 9월과 10월에는 1년 농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만국대제,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비는 칠성제, 바다 수호신에게 비는 용왕제, 산신제, 풀무고사제 등 다양한 형태의 굿과 제의가 행해졌다.

 

조선후기 유교정책이 펼쳐지면서 19세기 전후하여 유교식 제사인 포제가 남성중심으로 행해지고, 이때부터 마을제가 여성중심의 당굿과 남성중심의 포제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일부지역에서는 남녀가 함께 어우러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와흘리이다. 오늘날까지 와흘 본향당에서는 포제를 따로 지내지 않고 당굿으로 마을제를 지내고 있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350여 곳에서 굿이 행해지고 있으며, 1만8000여 신이 제주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데, 신들의 70% 정도가 여성신이다. 고려시대의 절인 수정사·법화사·원당사와 같은 큰 사찰들은, 조선중기 불교사찰로 존속되었지만 그 모습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사원은 없다.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이 제주에서만 행해진 것은 아닌데, 육지에 비해 불교사찰에 대한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섬지역에서는 무속신앙의 뿌리가 육지보다 깊고 불교 역시 무속화와 세속화의 현상과 어우러진 데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불교는 애초 무속신앙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퍼져갔다. 국가종교로서 장려되었던 고려의 불교가 어느 정도 자기의 모습을 가지고 발전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억불정책이 실시되면서 불교는 무속신앙과 서로 영향을 끼치며 유지되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의 제주 불교는 뿌리가 깊었던 무속신앙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여겨진다.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는 한라산신제를 국가제사로 건의하여 제의로 치렀다. 그는 제주의 신당과 불교사찰을 130여 곳이나 파괴했음에도, 제주 토속신앙의 상징인 한라산신제를 유교국가의 제사로 모신 이유가 궁금하다.

 

토속신앙의 뿌리가 깊었던 제주사회를 끌어 안지 않고서는 제주선인들을 다스릴 수 없다는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제주에서 실시된 국가제사로는 사직대제, 석전제, 성황 발고제, 여제, 독대, 풍운뇌우제, 한라산신제 등 7종류이다.

 

이러한 국가제사는 19세기에 정립되어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 그중 한라산신제, 성황발고제, 여제, 그리고 풍운뇌우제가 제주의 토속신앙인 국가제사로 모셔졌다.

 

성황발고제란 제주민의 수호신인 성황신에게 지냈던 제사로, 제주민의 신앙대상인 뱀신을 성황신으로 모 셔 지내는 제사이다.

 

여제(厲祭)란 돌아가 쉴 곳이 없는 귀신인 여귀를 달래는 제사이다. 성황신이 여귀를 불러 모으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 사흘 후 제사를 지냈다.

 

풍운뇌우제는 바람, 구름, 비의 신들에게 올리는 제사로 탐라국시대부터 존재하였다 전한다.(탑동 주변 바닷가 동네를 산책하던 중 풍운뇌우제 표지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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