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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선인들의 당굿 ... 제천행사이며 마을축제

 

고향선인들은 주변을 에워싼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기 위해, 자연신·조상신·토지신·해신 등 많은 신들에게 끊임없이 정성을 드리며 옹골차게 삶을 이어왔다. 마을 설촌 당시부터 선인들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과 포제단을 마련하여 신성한 장소인 성소로 여기며 제의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생산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어 왔다.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에 의해 당이 파괴되고 심방들의 활동도 위축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고향선인들의 뿌리 깊은 마을제가 미신행위이자 허례허식으로 매도되기도 했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선인들은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승되어 온 마을공동체 신앙으로서의 당과 포제를 주민생활 속에 깊숙하게 뿌리내리며 그 명맥을 유지시켜 왔다.

 

당굿은 오랜 기간 동안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선인들의 제천행사이며 마을축제였다. 제주의 불교는 애초 무속신앙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국가종교로서 장려되었던 고려의 불교가, 조선시대에서는 억불정책의 시행으로 무속신앙과 서로 영향을 끼치며 유지·전승되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의 제주불교는 뿌리가 깊었던 무속신앙 속으로 스며들었으며, 제주선인의 토속신앙 행위는 조선시대 유교정책 속에 포용되어 유지전승 되었다고 여겨진다.

 

2016년 12월 고향마을 이장으로부터 표지석에 새길 마을 할망당과 포제단 유래에 대한 부탁을 받았다. 다음은 고향마을의 할망당과 포제단에 얽히고 설킨 내용들이다.

 

고향의 할망당(웃당과 알당)에 관한 설화

 

우리 마을에는 본향당과 해신당이 있고, 폐당 된 ‘쉐당과 오분작 할망당’이 있었다. 본향당은 바닷가 위쪽에 있어 웃당이라 하고, 해신당인 남당은 아래 바닷가에 있어 알당이라 한다.

 

1932년에 지은 당집은 돌담을 둘러 인근의 민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신인 나주목사와 여신인 궁전요왕대부인 부부신이 본향당에 상주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산, 물고(物故), 호적을 관장하며 수호해 준다.

 

웃당에 갈 때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기하며, 제물로는 건어, 삶은 계란 떡 등이며 돼지를 올리지 않고 닭을 올린다. 웃당의 특이한 점은 타 지역 신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여덟 폭의 무신도가 걸려 있고, 당집 내부의 구조가 전통적인 사당처럼 목재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우리 마을 무신도는 보존가치가 높아 지금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기증되었고, 그 복사본이 마을 본향당인 웃당에 게시되고 있다.

 

알당과 더불어, 어민과 해녀들은 음력 3월 3일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요왕제를 마을 동쪽 바닷가인 ‘흰돌코지(더벵이 물)’에서 행한다. 바다 용왕에게 정성을 드리는 요왕제를 행할 때에는 심방을 모시고 해녀 모두가 각각 제물을 올려 크게 치렀는데 요즘은 간소화되어 잠수회가 준비하여 행하고 있다.

 

제의를 지낸 다음에는 제물을 백지에 사서 바다를 향해 던지는 지드림을 행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맞닥뜨리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생산활동에서의 무사안전과 풍어를 비는 정성스러운 마음들이 이러한 제의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점이 매우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이다.

 

 

우리 마을 바닷가 이름을 사농물이라 한다. 이곳 인근에는 어업 수호신을 모시는 남당이라 부르는 알당이 있다. 당에는 남당하르방과 남당할망 부부신을, 곁에는 큰도안전과 큰도부인이란 부부신과 중의대사를 모셨다.

 

중의대사 본풀이에 의하면, 중의대사는 강원도 철산 출신의 승려였는데, 한라산의 영기를 구하러 조천읍 북촌리인 ‘뒷개’에 와 백일을 지나니 배가 몹시 고파, 이 마을 김첨지의 환갑잔치에서 돼지고기 국수를 얻어먹었다. 돼지고기 국물을 먹었으니 다시 절간으로 들어갈 수 없어 행원 마을로 들어왔다.

 

산육신(産育神)인 문씨고냥할망과 같이 살던 중의대사는 어민들의 모심을 받고 싶어, 남당으로 가서 남당하르방에게 같이 좌정시켜 줄 것을 청하였으나 ‘돼지고기를 먹어 부정하니 나와 좀 떨어져 좌정하여 어선과 해녀들과 어장을 확보해 살라.’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지시에 따라 남당 한 모퉁이에 좌정하고 어장을 수호하며 제의를 받게 되었다.

 

정기적인 굿은 1월의 요왕제와 10월의 대제가 있다. 이들 굿 중 특이한 것은 대제 때에 ‘중놀이’를 하는 점이다. 중놀이 내용은 수심방이 중의대사를 청하는 ‘신청궤제차’를 춤과 노래로 요란하게 하면, 소무(小巫)가 중의 차림새를 하고 몹시 시장하여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뒹굴며 겨우 당까지 돌아온다.

 

그리하여 수심방과 대화하며 배고픈 중의대사임을 밝히고 돼지고기 국수를 먹는 장면, 남당 하르방으로부터 돼지고기를 먹어 부정하니 따로 좌정하여 어업을 관장하여 얻어먹으라는 지시를 받는 장면 등을 연출하면, 주민들이 떡을 중의대사의 자루에 넣어 시주하는 모습 등을 전개한다.

 

이처럼 신을 청하면 중의대사가 직접 나타나 신화의 내용을 극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이 당굿의 특색이다. 중의대사는 돼지고기를 먹은 적이 있기에 제물로 돼지고기도 올린다. 이러한 무격신앙을 재현했던 제주의 큰심방인 이중춘씨는 우리 마을 출신이다. 큰심방인 이중춘 삼춘이 돌아가신 후 이러한 무격행위도 시들해져 가는 추세이다.

 

어려서부터 무당삼춘의 굿 행위를 보면서 자란 나는, 무격신앙으로서의 할망당 또한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 여겨 나의 집에도 이를 조성하였는데 그 사연을 적어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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