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 현장에서] 시늉말고 진정성 있는 정치 하라

 

‘병 주고 약 준다’라는 표현이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해를 입힌 뒤에 달래거나 감싸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다른 사람을 못 살게 굴거나 어려움에 빠뜨리고 나서 마치 선심을 쓰는 척 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역에서 보면 이러한 일들이 허다하다. 특히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지역에서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15년 전 전북 부안의 방폐장(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문제나 제주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문제가 그렇다.

 

국책사업이 아닌 제주도정의 사업들도 그런 사례가 많은데, 최근에는 성산읍을 중심으로 한 제2공항 건설 문제를 들 수 있다. 하나같이 지역 선정과 방침을 먼저 정해놓고 주민들에게 보상이나 혜택을 주면서 달래려고 하는 뒤바뀐 순서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병 주고 약 주는’ 정책 행위들이다.

 

하지만 며칠 전 그보다 더 기분 나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본회의 마지막 날인 8월 2일 김태석 의장은 제363회 임시회에서 “강정 주민을 포함한 도민 여러분께 갈등의 시작이 되게 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하면서 과거 2009년 12월 17일 제주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을 의결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듯한 발언을 실은 신문 기사를 읽었다.

 

마침 강정평화대행진의 의료지원을 마치고 돌아와 의약품을 정리하던 나는 화가 치밀었다. 왜 아직까지 마을 사람들이 서로 갈라져서 반목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면서 뙤약볕 아래 행진을 해야 하는지 제주도정이나 도의회 의원들은 정녕 모르는 것인가?

 

사람을 병들게 해놓고서 미안하다는 말로 대충 때우면 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평화로운 강정이라는 마을에 느닷없이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들이닥쳐서는 마을 사람 일부를 앞세워서 안건을 통과시켜버린 만행을 모를 리 없잖은가? 더욱이 도민들을 보살피고 문제가 있으면 앞장서서 도민의 뜻을 받들려고 하는 게 도의회이거늘 당시 도의회조차도 관련 안건을 통과시켜 버렸잖은가?

 

그렇다면 미안하다고 하기 전에 올해 10월 경 이루어질 국제관함식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정상이라고 본다. 병 주고 약 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후벼 파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의원 대다수가 강정 개최 반대 촉구 결의안에 서명했다고 해서 가슴이 뿌듯하고 신뢰감이 솟았다. 하지만 결의안은 본회의 상정도 안된 채 숨어버렸고, 도의회 의장의 사과 발언으로 강정 문제를 매듭짓고 말았다. 이게 진정 사과인지 묻고 싶다. 아니면 면피용으로 생색만 낸 것 아닌지..... 정말 사과를 하는 것이라면 도의원들이 서명한 국제관함식 강정 개최 반대안을 의결하고 중앙정부에 떳떳이 공표해야 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용서를 비는 자세에 걸맞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도의회와 의장의 행동들을 보면 도민들을 아우르고 강정 주민들을 다독거리며 위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은 못 줄 망정 병들어 누운 강정 주민들을 홧병으로 쓰러지게 하는 행위다. 도의회는 자존심도 없는가? 결기있게 반대 결의를 했으면 청와대 관계자가 아닌 세종대왕이 와도 자신들의 신념을 표현해야 했고, 도의장은 그것을 받아들여 사과와 함께 의결에 협조를 해야 옳았다.

 

좋은 의사는 신체의 질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도 어루만져준다. 우리 도의회는 강정의 상처에 무엇을 했는가? 강정 해군기지를 막아내기라도 했나? 아니면 찢어진 마을을 합쳐주기라도 했나? 그도 아니면 힘들어 누운 마을 사람들에게 군함제로 또 상처를 내는 것을 막기라도 했나?

 

오스트리아의 신학자 이반 일리치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라는 저서를 통해 건강문제에 대해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병원은 병을 고치기 보다 더 많은 질병을 양산하는 모순 덩어리다"라고 지적하였다.

 

도민들이 기댈 곳으로 믿는 도의회가 갈등을 치유하고 도민들을 행복하게 이끄는 곳이 되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병을 만드는 현대 의료의 모순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강정 해군기지가 다 완성된 마당에 마을 통합만이라도 원하는 민심을 외면하고, 자꾸 상처만 깊게 하는 짓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2018년 도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만들어준 의미를 청와대와 민주당 도의원들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 도민을 위하는 척 시늉만 하지 말고 진정성을 보이기 바란다. 우리는 결기 있고, 진정성 있는 그런 정치를 원한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