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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회] 조선의 15대 왕 광해 임금 ...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내줬던 불운한 군주

 

한때 나는 TV 연속극인 ‘왕의 여자’에 빠져든 적이 있다. 여기에서 왕은 광해군이고, 여자는 개똥이라는 무수리로 훗날 광해군 애첩인 김상궁이다. 왕의 여자에 흠뻑 빠진 것은 사극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광해군이 우리 마을 포구를 통해 제주에 유배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광해군(光海君) 대신에 광해 임금이라 적는다. 조선의 15대 왕인 광해 임금은 인조반정에 의해 허망하게 정권을 내주어야 했던 불운한 군주이지만 매우 영특한 임금이었다.

 

비운의 임금으로 제주에서 그 생을 마감한 광해 임금은, 아버지 선조(宣祖)와 어머니 공빈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1575년에 태어났다. 1608년에 임금에 올라서 1623년까지 15년간 조선을 다스렸다. 이름은 이혼, 본관은 전주이며, 비(妃)는 판윤 유자신의 딸이다.

 

세자 책봉 문제로 그의 형인 임해군과 갈등을 빚었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국난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피난지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라도와 경상도로 내려가 군사들을 독려했고, 국가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1606년(선조 39년) 계비 인목왕후에게서 영창대군이 탄생했다. 어린 영창대군을 후사로 삼을 것을 주장하는 소북파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의 사이에 붕쟁이 확대되었다.

 

1608년 병이 위독한 선조가 광해에게 선위(禪位)하는 교서를 내렸다. 그것을 소북파의 유영경이 감추었다가 대북파의 정인홍 등에 의해 밝혀졌다. 광해군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임해군을 강화도 교동도에 유배 보내고 유영경에게 사약을 내렸다.

 

그는 당쟁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이원익을 등용하고 초당파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려 했으나 광해군의 앞날은 순탄하지 않았다.

 

1613년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대북파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영창대군을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그리고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위리안치 했다가 이듬해 죽게 했고, 1618년에 는 이이첨 등의 폐모론에 따라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서인들의 집단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김류.이귀.김자점 등 서인들이 주도했던 인조반정에 의해 1623년 3월 폐위당한 뒤 광해군으로 강등되었다. 서인들은 광해군의 조카인 종(倧)을 옹립해 인조의 시대를 열고는, 광해를 비롯한 직계가족을 모두 강화로 유배하였다.

 

그해 5월 강화부윤 이중로의 장계가 올라왔다. ‘이달 21일 삼경에, 폐동궁이 담 안으로부터 흙을 파고 70척 정도의 구멍을 뚫어 도망가는 것을 잡았습니다.’ 이에 강화도의 관계자들이 붙잡혀와 국문을 받았고, 세자가 붙잡히는 것을 지켜본 폐빈 박씨는 목매어 자살 했고, 금부도사 이유향을 보내어 폐세자에게 죽음을 내리니 스스 로 목을 매었다. 폐세자가 죽자 폐비 유씨도 그해 충격으로 48세 나이로 죽었다. 다음은 강화로 유배되어 가는 배 속에서 폐세자가 지었다는 시이다.

 

티끌 속의 뒤범벅이 미친 물결 같구나 / 걱정한들 무엇 하리, 마음 스스로 평안하다 / 26년은 참으로 한바탕 꿈이라 / 백운(白雲) 사이로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리.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유배지를 태안으로 옮겼다가 다시 강화도로 옮겼다. 1636년 강화도의 교동도로 옮겼다가, 1637년 6월 6일 ‘어등포’를 통하여 제주도로 오게 되었다. 다음은 광해 임금이 강화에서 제주도로 이배되는 배 위에서 지은 시이다.

 

한 더위에 소나기 성 위로 지나가니 / 후덥지근한 장기가 백 척이나 높구나 / 푸른 바다 성난 파도에 어둠이 깃드는데 / 푸른 산 근심 어린 모습으로 가을을 전송하네 / 돌아가고픈 마음 늘 왕손초(王孫 草)에 맺혀 있고 / 나그네 꿈 자주 제자주(帝子州)에 놀라네 / 연기 낀 파도 위 외로운 배에 누웠구나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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