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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추자면 민요(楸子面民擾)와 어부단(漁夫團) ... 권익향상과 주권.실리추구

 

1926년 5월 14일 오후 4시, 추자면(楸子面)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급히 목포와 제주경찰서 무장경관 삼십여 명이 출동해 현장에서 이십일 명을 검거하고 바로 경비선에 태워 추자도 떠나 목포로 이송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추자면이란 곳은 대해중의 외로운 섬으로써 지역이 협착하고 토질이 척박하야 도민은 남녀노소를 믈론하고 고기잡이를 하야 그날그날의 호구를 하여 가는대 만약 어업이 잘못되면 류리 걸식하는 참상을 이룬다(동아일보, 1926년 5월 25일).

 

1917년 당시 추자면장 원용배(元容培)와 해남사람 윤재호(尹在浩) 등 몇몇이 추자어민의 이익과 편리도모를 목적으로 추자어업조합을 조직했다. 1920년 이들은 추자어민의 이익과 편리도모와 별개로, 고기잡이 어구(漁具)를 사 들인다 칭탁(稱託)하야 추자어업조합의 명의로 식산은행(殖産銀行)제주지점에서 8000원을 차입(借入)하였다.

 

이 차입한 8000원 거액을 원용배와 윤재호 등이 공모하여 목포에서 횡령 소비하고 버리고 난 뒤 또 다시 식산은행에서 4000원을 차입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입한 돈으로 소금을 매입하고 보통 시세의 배나 되는 가격으로 조합원에게 판매하였기 때문에 추자도민들이 추자어업조합에 대한 불평이 참으로 컸다.

 

조합에는 조합댱 리사 서긔 등을 두어 하는 것 업시 어민의 리익을 롱단할 뿐 아니라 이를 빙자하야 별별 횡폭한 행동이 만하얏스며 어물도 공동판매를 함으로 보통 시세보다 저렴하게 팔닐 때가 만타고 한다. 이와 가치 조합이 조직된 이후로는 조합원에게 일만 이천원이란 부채가 생기고 근래에 와서는 해조(海藻)까지 공동판매를 함으로 만약 이것을 실시하게 되면 해조를 목포 등지로 가지고 가서 대금 외에 얼마든지 대용할 수 잇는 길까지 막히게 되어 어업조합에 더한 도민의 불평과 비난은 참으로 컷섯다고 한다(동아일보, 1926년 5월 25일).

 

1926년 5월 11일, 어업조합장 김상진(金相鎭)과 이사 황석희(黃錫熙) 등이 추자면 묵리(黙里)에 사는 어떤 노파의 집에 가서 뜰 앞에 널려 있던 물가사리(天草)를 저울로 달았다. 이에 노파가 그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김상진은 그 노파의 빰을 때리고 욕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본 동네 청년 윤원동(尹元同) 등 몇 사람이 모여 들어 그 행동을 책망하였는데, 도리어 김상진은 마을사람들을 주재소에 고발하고 윤원종을 불러다 설유(說諭)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주민들은 극도로 흥분하여 하도(下島) 예초리(禮草里)에 남녀 주민 칠백여명이 집결하여 어업조합에 대한 여러 가지 불평을 토론하고 김상진을 공격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세가 자못 흉흉해지자 추자도주재소에서 순사가 출동하야 해산을 명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음으로 순사들은 발검(拔劍)까지 하며 위협하였다.

 

이 날 극도로 흥분된 추자도민들은 즉시 상도(上島) 대서리(大西里)에 있는 어업조합사무소로 몰려가 ‘공동판매를 폐지하라’, ‘조합장을 잡아내라’며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형세가 자못 위급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장 김상진은 뒷문으로 도망가 버렸고 조합 사무실의 문은 굳게 닫쳤다.

 

이를 보고 격분한 조합원들에게 주재소에서 총을 가져온 경관들이 총으로 위협하자 화가 난 군중들은 사무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책상을 부수며 그날 밤은 거기에서 세우고 다음날 오후 두시 해산하였다. 김상진은 다음날 오전 두시 남들이 잠자는 틈을 타 어선으로 목포로 도망가 그 곳 경찰서에 이 사건을 고발하였던 것이다.

 

목포경찰서에서는 즉시 무장경관 이십 명이 경비선을 타고 십육일 오전 아홉시 추자에 도착하여 곧 하도로 건너가 주동자 이십일 명을 검속하고 바로 경비선에 태워 추자도를 떠났다.

 

이를 본 추자도민들은 어선을 타고 경비선을 추격하였으나 경비선에서는 군중을 향하야 폼푸질(?)을 하고 경비선에 뛰어오르려는 사람을 곤봉으로 때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일부 경관들은 계속 추자도에 머물르며 추자도민을 모아놓고 ‘공동판매를 반대하는 자’는 엄중히 처벌한다는 위협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번 사건의 발생된 것은 어업조합에 대한 불평뿐만 아니라 전긔 김상진이가 불원에 면댱(面長)으로 취직하고 저 암중비약을 하야 제주도사가 전 면댱에게 사직을 강권한일도 큰 원인이라는바 경관의 진압으로 일시 침정한 듯하나 흥분한 도민은 어대까지든지 어업조합이며 김상진 배척에 로력하리라 한다더라(동아일보, 1926년 5월 25일).

 

‘제주도 추자민요사건(楸子民擾事件)’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1926년 7월 20일 오전 10시,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 형사법정에서 김종만(金鍾萬) 징역 1년, 김학련(金學連), 김후배(金厚培) 각 8개월, 황명채(黃明彩) 외 삼명 집행유예 2년을 언도 받았다.

 

이로부터 4개월이 흐른 1926년 11월 18일 추자어부 육십여 명이 추자 하도공립보통학교 대강당에 모여 ‘추자어부단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이번에는 ‘문맹(文盲)을 속치(速治)하자’, ‘사기배(詐欺裵)에 속히지 말고 빨니지 말자’ 는 굳은 다짐을 하며 여러 가지 사항을 토의 결정한 후 ‘추자어부단 만세 삼창’과 ‘세계 노동자 만세 삼창’을 하고 폐회했다.

 

◆ 강령(綱領)

 

아등(我等)은 아등(我等)의 실제이익(實際利益)을 위하야 투쟁함

 

◆ 결의사항

 

1. 어민운동(漁民運動)

 

가. 운동의 근본방침 ; 착취(搾取) 압복(壓伏) 박해(迫害)의 연결(連結)이 우리들의 애사(哀史)엿다. 차(此)에 제(際)하야 아등(我等)은 어민(漁民)으로 하야금 계급(階級)을 인식(認識)케 하며 단결(團結)로써 우리의 무기(武器)를 삼게할 것

 

나. 교양(敎養)에 관한 건

 

다. 선전(宣傳)에 관한 건

 

라. 조직(組織)에 관한 건 ; 본단(本團)에서 제주노동연맹(濟州勞働聯盟)을 발기(發起)하도록 제주면 우의단체(友誼團體)에 권고문(勸告文)을 발송(發送)하야 제주노동연맹(濟州勞働聯盟)을 조직케 하고 그가 전남노동연맹(全南勞働聯盟)에 가맹케 할 것

 

2. 사회운동 각 부문에 관한 건

 

가. 노동운동

 

나. 농민운동

 

다. 청년운동

 

라. 소년운동

 

3. 당면문제

 

가. 해어공동판매(海漁共同販賣)에 관한 건 ; 도민대회(島民大會)를 개(開)하야 도민의 의견을 종합한 후 건의안(建議案)을 작성하야 추자어업조합(楸子漁業組合)에 제출하되 약(若) 불응하는 시(時) 민중과 합력(合力)하야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

 

나. 염신구전(鹽辛口錢)에 에 관한 건 략(略)

 

다. 추자어업조합(楸子漁業組合)의 식산은행대금(殖産銀行債金)에 관한 건

 

라. 어선계약(漁船契約)에 관한 건 : 식(食)을 위하야서는 명(命)을 앗기지 아니 하야 풍우한설(風雨寒雪)을 무릅쓰고 치난 물결과 싸워서 잡어온 고기를 엇지 일분(一分)이라도 해(害)하고 매(買)할까 이에 우리는 공동판매(共同販賣)를 위시하야 시세여하(時勢如何)를 불구하고 계약선(契約船)인 마투하(マルハ)회사에만 매(賣)하라는 어업조합(漁業組合)의 단호한 처치(處置)에 반항하는 동시 위원 사인을 선정하야 어업조합에 항의할 것

 

마. 어민생활상황조사(漁民生活狀況調査)에 관한 건

 

하. 탕쿠에 관한 건

 

사. 삼월 민중소란시기 희생자 위로에 관한 건

 

아. 선주 선원에 관한 건(동아일보, 1926년 11월 29일).

 

‘추자어업조합’의 아픈 기억을 학습효과로 여기고 새롭게 조직한 추자어부단의 다양한 당면문제 중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삼월 민중소란시기 희생자 위로에 관한 건”이라 하겠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고 이를 승화시켜 새로운 자기 발전의 토대로 삼는 지혜로 이해된다.

 

이렇듯 제주해녀항일운동보다 6년 전에 발생했던 1926년 ‘추자면 민요(民擾)’와 같은 해 발족된 ‘추자어부단(漁夫團)’에 관한 기억이나 역사적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생적 학습에 기반한 추자도민과 추자도 어부들의 권익향상과 주권, 실리추구를 위한 투쟁 노력은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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