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57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교수가 본 제주도 사람들

 

제주를 소개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들의 장점으로 풍부한 기개와 강고한 의지, 근면 질박(質朴)을 말하는 반면 시기심이 많고 사람을 의심하며 성질이 율한(慄恨)하다는 단점을 든다.

 

전자는 이 섬의 역사로 보아 원명(元明)에 속하였든 관계로 몽고의 대륙적 기개와 근면 질박한 생활의 유풍(遺風)이라 하면 후자는 도국(島國)의 일반적 근성, 즉 배타적 근성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망망한 대해의 험악한 파도와 싸우며 거기서 생활재료를 구하는 그들, 그리고 혜택없는 풍토에서 그 생활을 도(圖)하는 그들로서 모험적 기개와 강고한 의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나 이러한 가운데서 그들의 생활이 근면하고 질박할 것도 필연이리라.

 

그들의 성격이나 풍속은 외래적 수입인 것이기 보다는 그 자연적 생활조건에서 생긴 바가 크리라 믿는다. 더욱이 그들의 사회적 생활관계가 간단하니 만큼 그 자연적 조건에 영향됨이 현저하다.

 

그들의 성격이 ‘표한(慓悍)’하다는 것도 이러한 그들의 생활환경의 험조(險粗)한 것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원시적 공동체적 자연생활을 영위한 역사가 오래이다.

 

이러한 그들에 있어서는 외래자에 의한 그들 생활의 파괴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공포이며 위협일 것이니 이러한 것에 대한 자위적 공방은 원시적 생활에 젖은 사람일수록 가장 소박하고 순수한 상태로 출현되나 그것이야 말로 ‘표한’이라는 형용에 해당하리라.

 

일반적으로 배타적 근성이 도국(島國) 근성으로 불러진다 하더라도 이는 도국인 자신이 그 안온한 자연생활의 위협을 배제하려는 데서 나오는 근성일 것이다. 원시적인 자연적 공동적 생활을 하여온 그들로서 어찌 이런 시기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근대적 조류에 의한 그들의 자연생활의 분열과정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그들의 순정을 더럽히는 불순한 시민적 성격의 침윤(浸潤)이리라. 이것은 우월감을 가진 외래자에 대한 자위적 방어적 감정으로 제주인 누구나 외인에 대해 가지는 것으로 솔직하게 폭로되는 까닭인가 한다.

 

일반적으로 외인에 대하는 감정적 폭발로 출현될 때 자신의 태도를 반성할 줄 모르는 외래자로서는 그것을 제주인의 특성으로 보기 쉬울 것이다 내가 그 시기심의 내용을 물었을 때 저들은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이 일반적으로 강하다”고 보족(補足)하였으니 이 말이야 말로 이상과 같은 이해를 보장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요컨대 그들은 누구나 외인에게 대하야 적어도 한번은 일률적으로 의심하고 경원하는 용의를 가지는 까닭이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을 제주인의 특성이라고 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동일한 조건 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동아일보, 1937. 09. 05).

 

나는 제주도민들이 가지는 시기적 감정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는 오히려 우리들 시민의 일반적 성격임을 알고 있다. 그럼으로 그것은 결코 그들의 특성이 아니고 도리어 그들이 가지는 특성을 엄폐(掩蔽)하는 것이라는 것을 고조(高調)하고 싶다.

 

나는 수일간 이곳에 체재하는 동안 체험으로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벌써 상실하여 버린 지 오랜 ‘순진성’이며 ‘감격성’이다. 사실 그들은 외래자를 경원하고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그 의식적 자위적 감정들인 까닭으로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고 외래자의 태도 여하에 의하여서는 퍽도 벗기 쉬운 외피(外皮)인 것이다.

 

우리 일행이 처음으로 제주에 하륙(下陸)하여 여관에 들어갔을 때다. 약 바른 사람에 의하여 청결한 방이 차지되고 나니 남은 방이라고는 급히 준비한 관계인지 야릇한 악취(惡臭)가 난다.

 

이러한 때에 주인에게 다른 좋은 방이 없느냐는 것을 묻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겠거늘 주인이나 일 보는 사람들은 한결 가치 그 ‘사의(邪意)’없는 외래자의 말을 매우 마땅치 못하게 여기는 태도로써 마치 그 태도가 “무슨 잔소리가 이리 심하냐”는 듯하였다.

 

어찌 그뿐이랴. 그 집에 고용되어 잇는 젊은 여인 한사람이 의기 등등 하게 마루에 올라서며 “적은 여성이 당돌하게 여러분 앞에서 한마디 합니다”하고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우리는 어이없어 잠시 동안 그 말을 들었더니 요컨대 제주에는 육지와 달라 나무가 없어 온돌에 말똥을 때는 관계이니 여행 온 자 이만한 것쯤은 참아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의미의 말이다.

 

 

다음날 우리는 시장에 갔다. 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아무 것이나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 농촌부녀들은 우리의 묻는 말에 대답하려고 안했다. 제주에서 쓰고 있다는 수병(水甁)을 가르치며 그 용도와 가격을 물었더니 그는 대답은 물론 본체도 않는다. 마치 사지도 않을 것들이 무슨 “히야까시”냐 하는 태도였다.

 

할 수 없이 걸음을 옮겨 계란파는 부녀 곁으로 갔다. 한 개의 값을 물었을 때, 그는 “사꾸과?”하는 소리를 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무슨 책망을 들은 듯 가만히 서있노라니 곁에 섰든 노파가 그것을 친절히 통역하여 준다. 그는 육지에 다녀 온 듯한 노파였다. “사겠느냐?”는 말이다. 우리는 사겠다고 하는 동시에 이제야 그들의 태도를 알았던 지라.

 

모든 것을 알려고 온 일행이니 달리 생각 말고 이야기하여 달라고 하였더니 그제야 그들은 웃음으로 대하여 준다. 다시 “사겟느냐”는 말을 제주말로 하여 달라고 하였더니 그는 서 숨김없는 사투리로 “사꾸과 햇줍지기”하며 흔연히 아무런 의아없이 우리와 같이 웃어댄다.

 

 

그날 오후 해녀작업을 구경하려고 해녀를 방문하였더니 그들은 재삼 재사 촬영 말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내의(來意)를 간곡히 말하였으나 그들은 들은 체 만체하고 왜 그대들은 나체를 사진에 넣어 점두(店頭)에 돌리냐고 문책할 뿐이다. 우리는 다시 견학의 뜻과 결코 촬영 안 하겠다는 것을 말하고 부두에 갔다.

 

산지항 부두에서 배를 빌려가지고 나아가려는 찰나, 노소 해녀 수십명이 한편에 “다왕”을 끼고 한손에 칼을 들고 열을 지어 방파제로 바다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장쾌한 광경이 보이자 일행은 한결같이 그들의 장쾌한 행진에 가슴이 뛰었든 듯하다.

 

이 장쾌한 광경을 영원히 기억에 남기겠다는 순진한 충동을 누가 아니 가졌으랴! 무의식중에 그 원경이나마 카메라에 넣으려는 듯이 두 학생이 손사진기를 들고 뛰어 나섰다. 그것을 멀리서 눈치 첸 그들은 순식간에 방파제 저편으로 그림자를 감춘다. 그제야 우리는 두 사람을 불러 드렸다.

 

한참 나갔을 때다. 그들 해녀가 손짓하여 우리를 부른다. 우리는 그래도 그들이 우리의 내의(來意)를 양해하고 즐겨, 이 배에 올라 바다에 나아가 작업을 보여주려는가 보다 하며 그들 가까이 갔다.

 

그러나 그들은 분연히 칼 든 팔을 물으며 노호(怒號)하지 않는가! 왜 그대들은 우리의 작업을 방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당장에 배에 올라 우리를 찌를 듯하였다. 그때 나는 망원경을 들고 이것을 가지고 본 것이지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니 안심하고 작업하라고 간곡히 말하였다.

 

그들은 근면한 노동과 소박한 생활로써 푼푼히 모아 고토(故土)의 가족을 생각하리니 남에게 폐 끼칠 필요도 없고 그 이기적인 남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그들의 순박하고 우직한 그러나 사의(邪意)없는 행동이 몰인정 몰의리로 보여 질 것도 사실인 동시에 다른 편으로 그들의 순정은 그만치 반발적으로 “나도 한번”하는 생각으로 물불을 모르고 이기적 코스로 질주할 것도 사실일 것이니 양자의 현상이 서로서로 교착되어 흐르는 것이 일반적 필지(必至)의 사실이 아닐까?

 

우리는 제주사회를 그것이 존립하는 그대로 봄으로써 우리의 시민적 상식이 여하(如何)히 편협되며 천박한 것 인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비록 순박하나마 너무나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이 순박하고 순진한 채로 유족(裕足)하고 윤택한 문화적 생활로 향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제주가 이상향(理想鄕)으로서의 제주이리라(동아일보, 1937. 09. 07).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