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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를 이용해 승리한 ‘단노우라 전투’반기성의 날씨이야기(30) 육지를 장악한 '미나모토 가문' ... 군사정부 '막부' 설립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  wxbahn@kweath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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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9  08: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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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노우라 전투를 그린 그림

과거 전쟁사를 보면 조류(潮流·밀물과 썰물 때문에 일어나는 바닷물의 흐름)가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친 사례가 많다.

기원전 480년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섬 부근의 강한 조류를 이용해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했다. 베트남의 찬 홍 다오 장군은 몽골과의 전쟁에서 썰물과 조류를 이용해 바익당 강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717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강한 조류를 이용해 이슬람 해군을 격파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조류를 이용해 군사들이 최소한의 힘만을 사용한 한 뒤, 전투에서는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절이 나오기도 하며, 울돌목의 강한 조류를 이용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쾌승을 거둔다.

9세기경 일본은 전형적인 봉건제도가 발전해가는 시대였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하다보니 지방 세력이 강해지면서 영토 쟁탈전이 계속됐다. 힘이 있는 토호(土豪)들은 힘으로 개인 영토를 늘려나갔고 절이나 무사, 농민들은 토호에 대해 충성하고 보호를 받는 체계가 뿌리 내렸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군대간의 적대적 관계는 한층 심화됐다.

당시, 일본에서는 강력한 두 가문이 사사건건 충돌하며 주도권을 잡기 위해 250년 동안 쉬지 않고 전투를 벌여왔다. 이 중 하나가 ‘미나모토 가문’으로 육지를 장악했고, 다른 하나는 ‘다이라 가문’으로 바다를 장악했다. 이 같은 갈등은 결국 1185년에 벌어진 ‘단노우라 전투’에서 끝을 보게 된다.

1184년 2월, 당시 천황을 옹위하고 정권을 잡고 있던 다이라 가문이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미나모토 가문에게 대패한 후 바다로 도망쳐 야시마에 거점을 마련했다. 미나모토 가문은 이 기회에 다이라 가문의 뿌리를 뽑아 화근을 없애기 위해 전 병력을 동원해 야시마를 공격했다.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규슈로 넘어가 다이라 가문의 배후를 차단하려 했지만 우세한 수군을 보유한 다이라 가문의 군사들에 의해 진군할 수가 없었다.

이에 별동대를 편성해 밤중에 본거지인 야시마를 급습했다. 다이라는 천황을 모시고 바다로 다시 도망쳐 시도에서 재정비했으나 그곳도 공격을 받게 되자 결국 시모노세키에 본거지를 마련했다.

별동대의 활약 덕분에 규슈로 건너가 배후를 차단하려다가 막혔던 미나모토의 육군은 병선의 조달에 성공해 규슈로 건너갔다. 육군이 강했던 미나모토군은 다이라 가문의 군대를 격파하고 배후를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다이라군은 시모노세키에 고립되고 말았다.

   
▲ 단노우라 전투를 기념하는 비석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미나모토군은 총공격을 계획했다. 연이은 패배로 고립된 다이라군은 해전에서 마지막 승부를 걸었는데 이것이 바로 ‘단노우라 전투’다. 이는 지난 1185년 4월 25일 나가토 구니 아카마가세키 단노우라(오늘날의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시)에서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당시 미나모토군은 총 840척의 전함으로 편성됐다. 이에 맞서는 다이라군은 500척의 전함으로 맞섰다. 전함 수에서는 열세였지만 수군이 강했던 다이라군은 맞서나왔다.

단노우라 전투가 벌어진 간몬해협은 조류가 강하고 변화도 심하기로 유명하다. 정오쯤 전함들의 대결로 단노우라 전투가 시작됐다. 팽팽했던 전투는 조류를 이용한 다이라군에세 먼저 승리할 기회를 줬다.

다이라군은 밀물의 빠른 조류를 타고서 공격해 들어갔다. 미나모토군은 바다 한가운데까지 밀려났다. 그러나 밀물 조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다이라군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반격을 당했다.

물결이 썰물로 바뀌면서 조류는 미나모토군의 편이 됐다. 다시 간몬해협으로 밀려 후퇴하는 다이라군의 전함으로 육지에 포진해 있던 미나모토군이 벼랑에서 무차별로 화살을 쏴댔다. 바다와 육지에서 무차별로 공격 받으면서 노를 젓던 수부들이 죽었다. 이로써 다이라군은 괴멸상태에 빠졌고 승패는 결정났다. 패배를 깨달은 다이라군의 장수들은 차례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과연 단노우라 전투가 조류 때문에 승패가 갈렸는가에 대해 일본의 많은 역사학자들이 의문을 가졌다. 일본 해군의 구로이타 가쓰미는 간몬해협의 조류를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진 시간대는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조류가 동쪽으로 향한 시간대는 다이라가 우세했고, 서쪽으로 바뀌었을 때는 형세가 역전돼 미나모토가 우세하게 됐다. 미나모토 해군지휘관이 조류의 변화를 잘 이용했다”고 말했다. 단노우라 전투에 대해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그의 연구에 의해 전투의 승패가 조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조류로 결정적인 승리를 얻은 미나모토 가문의 요리토모(1147~1199)는 1192년 가마쿠라에 군사정부 형태인 ‘막부’를 세운다. 그리고 자신은 ‘쇼군’ 직책을 맡아 교토의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봉건제도에 군사적인 성격을 가미해 강력한 중앙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일본은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면서 군사강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전해 내려온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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