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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제주민요에 나타난 제주여성 ... 삶의 고달픔 민요로 달래

 

제주도(濟州島)야 말로 참으로 민요(民謠)의 나라이다 고랫노래라고 하야 방애찌흘 때에 부르는 노래도 잇고 바다 우에 배를 띄워 노코 저허가며 노에 맞추와서 부르는 뱃노래도 잇스며 들에서 김을 맬 때에 그 힘들고 괴로움을 조곰이라도 더러 볼가 하야 이 고랑에서 멕이고 저 고랑에서 밧는 엄부가(嚴父歌)도 잇다(조선일보, 1938.06.07).

 

이어도 호라 이어도 호라
이어 이어 이어도 호라
이어 홈민 나 눈물 난다
어어 말난 말아근 가라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어 이어 이어도 호라
강남(江南)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라 혼다
(이어도 노래)

 

이 섬의 노래가운데서 가장 대표되고 특징을 나타내는 것은 ‘이어도’의 노래가 첫재일 것이다. 이와 가티 이어도가 늘 부터 다니니 그러면 이 이어도라는 것은 무엇일가? 이것은 한 전설(傳說)의 섬이니 이허도(離虛島)라고 까지 쓰는 사람이 잇서서 본도(本島)와 지나(支那)와의 사이에 위치를 둔 섬이지마는 본도에서는 퍽 먼 곳에 잇스므로 보이지도 안코 또 일즉 한사람도 가본 일이라고는 업는 그런 신비스럽고 허무(虛無)한 전설의 섬으로 알아오는 이가 만타 그리하야 이 도녀(島女)들은 그가 사랑하는 남편이 지나(支那)에 공물(貢物)을 싯고 한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후에 한번도 그 배가 다시 돌아온 일은 업섭다고 하니 이 여자(女子)들이 얼마나 이 이허도(離虛島)가 원망스러웟스랴(조선일보, 1938. 06. 07).

 

검질 짓국 굴 너른 바테
압멍에야 들어를 오라
뒷멍에야 나아를 오라
(검질매는 노래)

 

방아귀낭 시왕댄갓난
심어서난 설운말한다.
지을방이 다지여가도
불을 노래 수만일너라
(방아 찧는 노래)

 

제주도에서는 주로 여자가 일하고 여자에 의해 민요가 불리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들이 언제 어떤 일을 할 때 노래를 불으느냐면 그것은 주로 집안의 일, 즉 멧돌, 절구를 찧는다던가 말총으로 망건(網巾), 탕건(宕巾) 등을 짜는 이른바 힘이 든다든가 그렇잖으면 심심해서 일할 때 하는 노래이다. 이 밖에 야외에 나가 농업을 한다든지 바다에서 전복을 딸 때도 물론, 불으지만 농가(農歌)란 것은 육지부와 마찬가지로 별로 그 수가 많지 않고 해녀의 노래로 바닷속에서 작업하면서 불을 수도 없으므로, 있어도 난바다에 나갈 때까지 배를 저으면서 노래하는 정도의 것이다[조윤제(趙潤濟), 1942.07].

 

다리송당(松堂) 큰아기덜은
되방이짓기로 다 나간다.
함덕(咸德)근방 큰아기덜은
신짝부비기로 다 나간다.
조천(朝天)근방 큰아기덜은
망건(網巾)틀기로 다 나간다.
신촌(新村)근방 큰아기덜은
양태(凉太)틀기로 다 나간다.
별도(別刀)근방 큰아기덜은
탕건(宕巾)틀기로 다 나간다.
도두(道頭)근방 큰아기덜은
모자(帽子)틀기로 다 나간다.
고내(高內), 애월(涯月) 큰아기덜은
기름장사로 다 나간다.
대정(大靜)근방 큰아기덜은
자리짜기로 다 나간다.
김녕(金寧), 갈막 큰아기덜은
태악장사로 다 나간다.
어등, 무주 큰아기덜은
푸나무장사로 다 나간다.
종달(終達)근방 큰아기덜은
소곰장사로 다 나간다.
정의산(旌義山)압 큰아기덜은
질삼틀기로 다 나간다.

 

이 노래는 선가(船歌) 즉 어부가이다. 여기에서 큰아기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시집가기 전까지의 여자를 말한다. 송당 되방이짓기, 함덕 신짝부비기, 조천 망건틀기, 신촌 양태틀기, 별도 탕건틀기, 도두 모자틀기, 고내, 애월 기름장사, 대정 자리짜기, 김녕, 갈막 태악장사, 어등, 무주 푸나무장사, 종달 소금장사, 정의 질삼틀기 등 마을마다 지역특성에 맡는 가내수공업이나 부업활동에 이 큰아기들이 종사해 소득을 올렸다고 보아진다.

 

나동침아 도라가라
서울놈의 술잔돌듯
어서 속(速)히 도라가라
이 양태(凉太)로 큰 밧사곡
늙은 부모 공양(供養)하곡
어린 동생(同生) 공부(工夫)하곡
일가방상(一家房床) 고족(顧族)하곡
이웃사촌(四寸) 부조(扶助)허게
[양태가(凉太歌)]

 

나 망건아 나 망건아
한간에는 옷믿은 망건
한간에는 밥믿은 망건
정의(旌義)좁쌀 나믿은 망건
함덕(咸德)집석 나믿은 망건
일천(一千)시름 다믿은 망건
[망건가(網巾歌)]

 

이렇게 벌어드린 돈으로 부모 공양하고 동생 공부시키고 일가친척이나 이웃사촌들과 나눠 쓰겠다는 것이다.

 

총각차라 물에 들게
양식(糧食)싸라 섬에 가게.
명지바당 씰바람 불라
갈치바당 갈바람 불라.
전복조흔 엉덩개로
메역조흔 여곳으로
내몸으로 배를 삼고
욕심(慾心)으로 사공(沙工)을 사망
설음설음 저서나가라
어린 자식 버려두고
늙은 부모 버려두고
돈일러라 돈일러라
원(願)진 것이 돈일러라
한푼 두푼 메운돈을
가부(家夫)님의 갑자골로.
[해녀가(海女歌)]

 

 

이 노래는 해녀가이다. 바당밭에 가서 전복,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하여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집도 사고, 밭도 사고 자식들 공부시켰는데 서방님은 이 귀한 돈을 갑자골로 퍼 날랐다는 아쉬움이 배여난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루 또 며느리는 며느리대루 말못할 속설운 사정을 하소하는 인정(人情)의 노래도 잇으며 또 밤이며 나즈로 보고지고 기다려지는 사상(思想)의 연가(戀歌)도 가지가지가 잇다(조선일보, 1936.06.08).

 

제주여성들은 신세를 한탄하거나 삶의 고달픔을 노래로 표현했다.

 

저 산골로 흘르는 물은
낭긔섭새 다 썩은 물이여
세월에서 흘르는 물은
고운정 미운정 다 썩은 물이여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궁녜 신녜 발씻인 물이여
집집의서 흘르는 물은
개도새기 발씻인 물이여
정녜에서 흘르는 물은
오장 간장 다 썩은 물이여

 


살젱하여도 살지 못하는 몸
혼저 죽엉 혼으로 가져
살젱하여도 어느 누게 살려나 주리
혼저 죽엉 저 싀상 가도
어느 누게 구덕해 눅졍
저 쉬상 문을 두드려 주라

 


독은 울믄 날이나 샌다
정녜 울멍 어느 날 새리
설룬 어멍 날 날 적의
놈은 울어도 정녜도 울랴

 

어린 신부(新婦) 역시 시집살이 고달픔을 노래로 표현했다. 비단옷 입으며 은가락지 끼고 가죽신 신던 귀한 집 처녀가 낮선 곳에 시집와 비단 대신 삼베옷 입고 시집식구들 구박에 눈치보며 서러운 신세한탄을 한다.

 

산도 설고 강도 선 곳듸
누게 모레 이곳듸 와시니
느네 오라방 엇이믄
나든 무사 이곳듸 오리
청지에집 열다섯 칸을
구경허레 난 와시냐
비단치매 입단 허리에
삼베치매 입단 몸에
미녕저고리 웬말이냐
은가락지 찌단 손에
골갱이가 무신말고
가죽신 신단 발에
초신이 무신말고
가심썩은 물이나 뒈영
솟아나근 눈물이 됀다
정네눈물은 여의주러라
떨어진 곳듸 복생기라

 


시어멍은 전복넋이
나를 보믄 언주젱 혼다
시아방은 소라의 넋이
나를 보믄 세돌각 혼다
시누이는 송사리의 넋이
나를 보면 도망을 간다
서방님은 물꾸럭넋이
나를 보민 안구정혼다

 

한편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노래도 있다. “만에 호나 나부모 보겅/어디 앚앙 울어니 호겅/삼도소도 거리에 앚앙/어멍 불르멍 울엄잰 호라”(새야! 저 세상에게 가서 만의 하나 우리 부모 보게 되면, 우리 딸이 어디 앉아 울고 있더냐고 우리 부모 묻거든, 길거리에서 앉아 엄마 부르며 울고 있더라고 말해다오). 예나 지금이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르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저 생이야 저싀상 생이야
저 생이야 저싀상 생이야
만에 호나 나부모 보겅
어디 앚앙 울어니 호겅
삼도소도 거리에 앚앙
어멍 불르멍 울엄잰 호라

 


설룬어멍 무덤욮의
당배치는 어랑어랑
호미어졍 캐젠해도
눈물제완 못캐여라

 

이러한 고달픈 삶속에서 남녀의 연분을 표현한 노래도 있다. 이 노래에서 님에 대한 가슴 먹먹한 그리움을 은유와 비유를 통해 조심스레 나타내고 있다.

 

소나이광 밤나무 가진
펭관 좋으믄 살질 웃나
원님의 은덕도 싫다
판관님의 우세도 싫다

 


함박눈이 퍼붓는 말에
낭지게에 부림패 걸엉
섭낭지양 오는님 봅다

 


밤의 가곡 밤의 간 손님
어느 곳듸 누겐 중 알리
무바깟듸 청버드낭에
이름 셍명 써뒁 가라

 


임이 오려고 설심이든가
내가 가려고 설심이든가
좁은 질목에 고운님 만낭
뒈돌아사도 남 못살앙

 


질주멩천 곤룡포 장시
독이 운댕 질행을 말라
한밤중의 우는 독은 독이 아닌 인독의 소리
밤이 새경 떠나나지라

 


돌과 같이 밝은 님아
누룩과 같이 쎄기지나 맙서

 

예전 제주에는 축첩제도가 있었다. 지금의 법적, 도덕적 잣대로 당시 상황을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본처는 본처대로 아픔이 있고, 첩은 첩대로 사연이 많았다는 것이다.

 

것보리를 거죽차 먹은뎔
시왓이사 혼집의 살랴
물이 엇엉 궂인 물 먹은덜
시왕광 고든질로 가랴

 

질도 다시 새로나 빼믄
시왓질은 또로나 빼라

 

전처 소박 시첩혼 놈아
소나이광 돌진 밤 새라
대천바당 돌진 밤 새라

 

첩과는 한집에서 살기도 싫고, 심지어 같은 길을 가기도 싫다고 본처는 하소연 한다. 본의 아니게 후처로 들어온 첩(妾) 역시 또 다른 아픔이 있었다. 누구는 오고 싶어 왔나...

 

신 엇임도 하도나 설롼
갓쓰물에 여든님 드난
두 번 싀번 물 덜은 밥을
씹어 도랜 앙업이더라

 

호강 호젠 놈의 첩 드난
어디 간간 놀아졈시니
지네 어멍광 오름엣 돌은
둥글어 댕기당도 살을매 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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