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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의 그리스 신화이야기(42)] 신화란 삶의 원형질 ... 지금도 반복중이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프리아모스는 신전으로 피신하였다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인 헤카베와 공주 카산드라는 그리스로 붙잡혀 갔는데 특히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노예가 되었다. 공주 폴릭세나는 아킬레우스가 생전에 사랑하였기 때문에 산 채로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매장 당했다.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되었다. 안드로마케와 네오프톨레모스 사이에는 페르가모스라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사람은 나중에 페르가몬의 시조가 된다.

 

 

이 사진은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도자기의 그림이다. 전쟁의 시발점이 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전쟁 초기에 메넬라오스와 헥토르가 전투를 벌였고, 메넬라오스가 헥토르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메넬라오스가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살아남았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아프로디테의 약속으로 맺어진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은 파리스가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을 맞고 죽는 바람에 끝이 났다.

 

아니 파리스가 죽기 전부터 헬레네의 마음은 파리스를 떠나갔다. 사랑은 거품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파리스가 죽고 트로이가 멸망하자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재회를 하였고 스파르타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전쟁의 주역인 아가멤논은 어떻게 됐을까? 트로이를 성공적으로 점령한 후 아가멤논은 미케네로 돌아왔다. 그리고 승리의 축하연을 마치고 만취가 되었다. 만취가 된 아가멤논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이다. 둘은 아가멤논을 죽였다.

 

 

왼쪽 사진은 잠든 아가멤논을 노리는 두 남녀를 묘사한 그림이다. 오른쪽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인 후 방에서 나온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십여 년간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남편을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왜 죽였을까? 그리고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다름 남자를 정부로 두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인 이유는 원한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원래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에게는 레다라는 아름답고 정숙한 부인이 있었다.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레다와 교접을 하여 알이 두 개 태어났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 자매가 그녀의 딸들이다.

 

탄탈로스의 가계도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성장하여 결혼을 하였는데 아가멤논의 사촌이자 티에스테스의 아들인 탄탈로스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가 스파르타로 쳐들어갔다. 아가멤논은 탄탈로스와 그의 자식을 죽였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입장에서는 아가멤논이 남편과 아들을 죽인 원수인 셈이다.

 

게다가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강제로 결혼을 하였다. 둘 사이에는 이피게네이아, 오레스테스, 엘렉트라가 태어났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출정을 하기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하였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아 출정할 수가 없었다.

 

아가멤논이 그 원인을 알아보지 과거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성한 숲에서 사슴을 사냥한 적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신이 바람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여신의 노여움을 푸는 해결책으로써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 태어난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또 한 번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남편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된 것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는 누구인가. 그는 티에스테스의 아들이자 외손자이다.

 

티에스테스에게 원래 있던 아들들을 아트레우스가 죽이자 티에스테스는 복수할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신탁을 물었다. 신탁은 티에스테스가 딸 펠로피아와 잠자리를 같이 하여 아이를 얻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아이기스토스이다.

 

결국 아이기스토스는 티에스테스의 아들이자 외손자가 된 셈이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손에서 성장하였지만 생부의 복수를 위해 아트레우스를 죽였다. 다시 아가멤논이 아트레우스의 복수를 위해 티에스테스와 아이기스토스를 쫓아낸 것이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자 아이기스토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접근을 하였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가멤논이 전쟁에서 돌아오자 둘은 합심하여 공동의 원수 아가멤논을 살해한 것이다. 정말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정당한 행동을 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 태어난 또 다른 자식은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아가멤논을 죽이자 딸 엘렉트라는 미케네 근처의 산골에 잠적해 버렸다. 오레스테스는 포키스 지방에 있는 친척 집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오레스테스는 성장하면서 부친을 죽인 모친 클리타임네스트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였다. 그래서 델포이에 있는 신전에 가서 신탁을 물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클리타임네스트라에 대한 복수였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천륜을 저버리고 모친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게 된다. 왼쪽 사진에서 가운데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오레스테스이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클리타임네스트라이다. 그리고 오레스테스 뒤쪽에 있는 여인은 엘렉트라이다.

 

오른쪽 사진은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부부간의 살인은 인륜의 문제이고 자식이 모친을 죽이는 것은 천륜의 문제이다.

 

 

이 사진의 가장 왼쪽에 있는 붉은 튜닉을 걸치고 가슴에 칼이 꽂혀 있는 여인이 클리타임네스트라이다. 앞쪽에 귀를 막고 겁에 질린 모습을 한 남자가 오레스테스이다. 오레스테스를 쫓는 세 명의 여신이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 3자매이다. 모친을 살해한 오레스테스는 천륜을 저버렸다. 그러나 복수의 세 여신이 나타나서는 오레스테스를 괴롭혔다.

 

여신들의 추적을 피해 아무리 도망 다녀도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아테나 여신이 오레스테스에게 재판을 받게 해 주었고, 재판을 받은 장소가 아레이오스 파고스이다.

 

 

사진은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레이오스 파고스이다.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것이 더 큰 죄인가 자식이 모친을 죽인 것이 더 큰 죄인가. 신들은 많은 논쟁을 하였다. 아테나 여신은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오레스테스는 면죄부를 받고서는 미케네의 왕이 되었다. 부친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로써 모친을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는 결말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가멤논을 포함하는 탄탈로스가의 비극은 트로이 전쟁과 맞물려 이렇게 전개되었다.

 

트로이가 함락되면서 트로이의 한 장군이 다리를 못 쓰는 노인 한 명을 들쳐 업고는 트로이를 탈출한다. 장군의 이름은 아이네이아스이고 노인은 그의 부친 앙키세스이다. 아이네이아스는 북아프리카를 거쳐 로마에 정착하였다.

 

그의 후손이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이다. 로마는 나중에 그리스를 멸망시킨다. 물론 로물루스가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로마의 작가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트로이의 멸망이 로마의 건국과 연관된다는, 역사는 돌고 돈다는 시각이 매우 재미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기나긴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며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머지 모든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은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이다.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일까? 대개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어쩔 수 없었던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벌어졌던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한 약속,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의 각축전 혹은 그 이전에 황금사과가 결혼식장에 나타난 사건 혹은 그 이전에 펠레우스가 테티스와 결혼하고자 했던 노력 등등 그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만들어 낸 것일까?

 

사랑이 보이는 현실이라면 사랑의 보이지 않는 모습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은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사랑의 모습은 너무나 많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것이 정말 황금사과 때문일까? 아니면 감히 세 여신을 함부로 심판한 파리스의 오만함의 결과일까?

 

 

트로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아킬레우스가 하는 말이다. “만약 내 이야기가 기록된다면 나는 짧고 굵게 살았다고 써주길 바란다.”

 

마지막 슬라이드이다. 신화란 삶의 원형질(prototype)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신화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끝>

 

*** 지금까지 김승철의 '그리스 신화이야기'를 사랑해주신 애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승철은? =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고를 졸업했다. 고교졸업 후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와 서울대병원에서 영상의학을 전공했다. 단국대와 성균관대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현재 속초에서 서울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부터 줄곧 서양사와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두다가 요즘은 규명되지 않은 고대와 중세사 간 역사의 간극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는 전공서적인 『소아방사선 진단학』(대한교과서)이 있고 의학 논문을 여러 편 썼다. 헬레니즘사를 다룬 <지중해 삼국지>란 인문학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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