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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의 그리스 신화이야기(41)] 네크로필리아 ... '이미 지나갔다'+'좋아한다'

트로이의 왕자이나 명장인 헥토르가 사망했는데도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점령하지 못하였다. 그리스가 트로이를 공격했다는 소식에 트로이를 돕기 위해 주변 나라에서 지원군이 왔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유명한 이야기만 한다.

 

 

헥토르의 사후 아마존이란 지역에서 펜테실레이아라는 여왕이 트로이를 돕기 위해 왔다. 아마존에서 “아”는 없다는 뜻이고 ‘마조“는 유방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마존이란 말은 유방이 없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아마존의 위치는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콜키스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여자들만 사는 나라인데 여자들이 확을 쏘기 위해 불편한 오른쪽 유방을 잘라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남미 대륙에 갔을 때 강가에서 활을 쏘는 여인들을 보고 그 강을 아마존이라 붙인 것이 현재 브라질에 있는 아마존 강이다.

 

펜테실레이아는 아마존의 여왕이었다. 그녀는 무공이 뛰어나서 남자 못지않았다. 그녀가 갑옷과 투구로 무장을 하고 싸우면 남자로 오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아킬레우스가 결전을 벌였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펜테실레이아라 할지라도 아킬레우스의 무공을 따를 수는 없었다. 펜테실레이아는 아킬레우스의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 아킬레우스는 상대방이 남자인줄 알고 싸웠다. 워낙 상대방의 무공이 뛰어나자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의 투구를 벗겼다. 그러자 죽은 사람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자를 죽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른쪽 사진은 죽은 펜테실레이아를 안고 하늘을 원망하는 아킬레우스를 묘사한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신에게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면 죽이지 않았을 것이고, 펜테실레이아는 죽었어도 너무나 아름답다고 탄식하였다.

 

이 장면을 보던 부하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은 자를 사랑하는 변태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아킬레우스는 홧김에 그 부하를 죽이고 말았다.

 

이 일화에서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라는 말이 나온다. 네크로는 죽었다, 썩었다. 이미 지나갔다라는 뜻이다. 필리아는 좋아한다는 뜻이다. 즉 아킬레우스가 이미 죽은 여인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도 현재보다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여인보다는 과거의 여인을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 등의 사고 방식을 네크로필리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를 구하려다가 파리스가 쏜 화살을 맞고 죽는 장면이 나온다. 아킬레우스가 화살을 맞은 부위는 발뒤꿈치이다. 신화에서도 파리스가 쏜 화살이 아킬레우스의 뒤꿈치에 맞았고 아킬레우스는 사망한다. 그림에서 파리스 뒤에 있는 여신은 아프로디테일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사망하자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명장이자 아킬레우스의 사촌인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아이아스의 부친 텔라몬과 아킬레우스의 부친 펠레우스는 형제이다.

 

그들은 배다른 동생인 포코스를 죽였기 때문에 부친 아이아코스에 의해 쫓겨난 적이 있다. 아이아스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도니스가 환생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아킬레우스가 입고 있던 갑옷과 투구는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탐을 내었다.

 

최종적으로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둘 중의 한 사람이 아킬레우스의 유품을 가지기로 되어 있었다.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아이아스를 제치고 방패와 갑옷을 차지하게 되자 분개한 아이아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분개한 아이아스는 그리스 장군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막사로 갔는데 이 때 아테나 여신이 아이아스를 제지하기 위해 미치게 만들었다.

 

미친 아이아스는 양떼를 보고는 양떼가 그리스 장군들인 것으로 착각하고 양떼를 몰살시켰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한 행동을 알게 된 아이아스는 수치심에 자살하고 말았다.

 

그리스군은 아무리 노력해도 트로이 성을 점령하지 못하자 신탁을 물었다. 신탁에는 트로이를 점령하기 위해 몇 가지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나왔다.

 

첫째는 렘노스 섬에 남겨진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둘째는 죽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토레모스를 전투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트로이 성안에 있는 아테나 여신상 즉 팔라디온을 훔쳐와야 한다고 하였다.

 

필록테테스의 화살에 대해 이야기 해 본다.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은 헤라클레스에게서 받은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 중에서 두 번째 과업이 히드라를 죽이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죽이고는 그 독을 화살촉에 발라서 항상 들고 다녔다.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이 어떻게 해서 필록테테스에게 전해진 것일까. 이 이야기를 하려면 헤라클레스의 네 번째 과업인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잡는 일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상은 헤라클레스가 멧돼지를 잡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다. 헤라클레스가 멧돼지를 쫓던 도중에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 족인 폴로스를 만났다. 폴로스는 헤라클레스를 환대하였다.

 

연회가 깊어지자 폴로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준 포도주 항아리를 내놓았다. 헤라클레스가 항아리를 열자 술 냄새가 세상에 퍼졌다. 그러자 폴로스의 친구들인 다른 켄타우로스들이 몰려들어서 서로 포도주를 마시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연회장은 난장판이 되었고,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 족 50명을 히드라의 독이 묻힌 화살로 죽여 버렸다. 이 때 화를 면한 켄타우로스가 네소스이다.

 

나중에 열두 과업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칼리돈의 왕 오이네우스의 딸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였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강물이 불었다.

 

네소스가 데이아네이라를 업어 강을 건너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헤라클레스가 허락하자 네소스는 데이아네아를 등에 태운 채 납치하려 하였다. 놀란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쏘아 네소스를 맞추었다.

 

네소스의 몸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독이 온몸에 퍼지면서 네소스는 죽어갔다. 네소스는 등에 업힌 데이아네이라에게 자기의 피가 묻은 옷을 받아두라고 하면서 헤라클레스가 바람을 피우게 되면 이 옷을 입히라고 하였다.

 

네소스의 옷을 입으면 헤라클레스의 바람기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의 말을 믿고 헤라클레스 몰래 네소스의 옷을 감추어 두었다. 오른쪽 사진은 데이아네이라를 네소스가 납치하는 장면이다.

 

세월이 지나자 헤라클레스가 이올레라는 여인을 데려오자 데이아네이라는 그녀를 질투하였다. 데이아네이라는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이올레에게 빠진 헤라클레스를 되찾고 싶었다.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의 말을 기억하고는 네소스가 입었던 옷을 헤라클레스에게 입혔다. 헤라클레스가 그 옷을 입자마자 독이 온몸에 퍼져 심한 열이 났다. 또한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벗을 수도 없었다. 네소스의 피에는 네소스의 독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에 묻어 있던 히드라의 독도 있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죽을 것을 예감하였다. 헤라클레스는 오이타 산으로 가서 장작을 쌓은 다음 그 위에 올라갔다. 스스로 몸을 태워 죽으려 한 것이다.왼쪽 사진은 고통에 못 이겨 괴로워하는 헤라클레스를 묘사한 사진이다.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불에 타서 죽으로 하였지만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줄 사람이 없었다.

 

마친 주변에 필록테테스가 지나갔다. 헤라클레스는 필록테테스에게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주면 자신의 활과 화살을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필록테테스는 장작에 불을 붙였다.이렇게 해서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이 필록테테스에게 전해진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 신의 반열에 올라 헤베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필록테테스는 왜 렘노스 섬에 남게 되었을까? 필록테테스는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출정을 할 때 선발대에 끼어 있었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가는 도중에 렘노스 섬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필록테테스가 독사에 발을 물리게 되었고 필록테테스의 발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악취가 너무 심하여 그리스군은 필록테테스를 데리고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필록테테스가 렘노스 섬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필록테테스의 화살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 병사들이 렘노스 섬으로 가서 악취가 나는 필록테테스를 데려왔다. 오른쪽 사진은 독사에 물린 필록테테스를 묘사한 그림이다.

 

그리스군은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을 이용하여 파리스를 쏘았다. 파리스는 독화살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왼쪽 그림은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을 맞은 파리스가 헬레네를 찾아간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파리스는 헬레네에게 무언가 구원을 기다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헬레네의 표정은 냉랭해 보인다. 게다가 헬레네의 위쪽에 한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는 헬레네의 파리스에 대한 사랑이 끝나 다른 곳으로 떠나고 있음을 묘사한다.

 

헬레네는 파리스의 운명을 알고 마음을 벌써 정리한 것 같다. 파리스가 죽어간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졌다. 그 소식은 오이노네라는 숲속의 요정에게까지 들렸다. 파리스가 목동이던 시절 파리스와 오이노네는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파리스가 왕자로 복귀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와 결혼을 하자 파리스는 오이노네를 잊어버렸다. 오이노네는 파리스를 사랑하였지만 파리스는 오이노네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파리스가 독화살을 맞고 죽어간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오이오네는 숲속의 요정이기 때문에 파리스의 몸 속에 퍼져 있는 독을 제거할 수 있는 약초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이노네의 파리스에 대한 사랑은 미움으로 바뀐 상태였다. 오이노네는 파리스에게 약초를 알려주지 않고 파리스가 죽어가는 것을 그냥 놔두었다. 그렇게 해서 파리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른쪽 사진은 오이노네를 묘사한 조각 작품이다.

 

오이노네는 파리스를 미워하여 그의 죽음을 방치하였지만 막상 그가 죽자 슬픔에 빠졌다. 이 조각상은 슬픔에 빠진 오이노네를 조각한 것이다. 이것 역시 네크로필리아의 한 측면일까?

 

신탁대로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데려오고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성 안에 있는 아테나 여신상을 훔쳐오고 하였지만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목마를 생각해냈다. 이 목마는 현대에 와서 트로이 유적지에 세워진 목마이다. 그리스인들이 목마를 성 밖에 세워놓고 떠났다.

 

 

트로이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목마를 그리스인들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태워 없애야 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퇴각할 때 기념으로 만들어서 퇴각하는 것이니 승리의 기념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때 트로이인들이 시논이란 그리스 패잔병 하나를 데려왔다. 트로이인들이 시논에게 목마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논은 원래 그리스인들은 전쟁에 졌다고 시인할 때 그 기념으로 목마를 만들어 놓고 퇴각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사실 시논은 실제 패잔병이 아니라 그리스측에서 내보낸 첩자였다. 이 때 트로이의 제사장인 라오콘이란 사람이 시논이 한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목마 안에는 그리스 병사들이 있으니 얼른 불로 태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순간 바다에서 왕뱀이 두 마리 나타났다. 뱀들은 라오콘의 두 아들을 물어 죽이고 라오콘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자 라오콘의 주장이 틀린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왕뱀들은 포세이돈이 보낸 것이었다. 포세이돈은 원래 그리스 편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를 돕고자 왕뱀을 보내 라오콘의 의견을 묵살시킨 것이다. 어쨌든 트로이인들은 목마가 자신들의 승리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왼쪽 그림은 <라오콘 군상>이라는 조각인데 가운데 있는 사람은 라오콘이고 양쪽에 작게 표현된 것은 뱀에 물려 죽는 그의 아들들을 묘사한 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엘 그레코라는 사람이 묘사한 라오콘의 죽음이다.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갔다. 그들은 승리의 축하연을 벌였다. 밤이 깊자 목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내려와 성문을 열었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그리스군이 성안으로 쳐들어 왔고 트로이는 점령되었다. 사진은 트로이 성을 촬영한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철은? =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고를 졸업했다. 고교졸업 후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와 서울대병원에서 영상의학을 전공했다. 단국대와 성균관대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현재 속초에서 서울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부터 줄곧 서양사와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두다가 요즘은 규명되지 않은 고대와 중세사 간 역사의 간극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는 전공서적인 『소아방사선 진단학』(대한교과서)이 있고 의학 논문을 여러 편 썼다. 헬레니즘사를 다룬 <지중해 삼국지>란 인문학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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