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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회] 목민관 기건 목사의 선행 ... 한센병 시설 구질막, 매장풍습의 기원

 

여러 선정비에 이름이 적힌 목사는 고을사람들에게 덕을 베푼 목민관으로 오래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조천읍 봉수동에 1개 밖에 없는 기건 목사는 언관이자 문관으로 특별한 선정으로 제주 선인들에게 칭송되었다. 한편으론 임금과 신하의 격의 없는 의사 소통 과정에서 우리는 세종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을 것이기에 여 기 소개한다.

 

기건은 1443년 12월에서 1445년 12월까지 2년간 제주목사로 재직했다. 세종대왕이 언관인 기건을 제주목사로 제수하자 여러 신하들이 반대상소를 올렸다.

 

좌정언(左正言) 윤면이 아뢰기를, ‘집의(執義) 기건으로 제주목사를 삼았사온데, 언관을 외직에 보하는 것은 전례가 없사옵니다. 청하옵건대 고쳐 제소하소서(이하 청고제하소서로 줄임)’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후일의 폐해를 염려하여 그러는 것이니, 이후로는 내가 마땅히 잘 생각하겠다.’ 하였다.

 

바로 다음 날에도 장령(掌令, 사헌부의 정사품) 조자가 아뢰기를, ‘무릇 언관은 반드시 과실이 있어야 외임에 보직하거나 좌천하는 것이온데, 기건은 과오가 없었는데도 제주목사가 되었사오니, 이제부터 이것을 전례로 삼아 언관을 외임에 보직시키는 일이 많을 것이오니, 청고제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옳다. 그러나 언관이라도 만약 사람과 그릇이 상당하면 외임에 제수하는 것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조자가 다시 아뢰기를, ‘제주에는 반드시 무재(武才)와 이재(吏才)가 겸한 자라야 그 임무를 감당 하올 것이온데, 기건은 이재만 있고 무략(武略)은 없사오니 사람과 그릇이 상당하다고 이를 수 없습니다.

 

청고제하시고, 또 이제부터는 대간으로서 죄과가 없으면 외임에 보직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기건은 이미 제수하였으니 어찌 고쳐 제수하겠느냐. 언관을 외임에 임용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장차 생각하겠다.’ 라고 하였다.

 

기건은 세종의 기대 이상으로 제주에서 선정을 베푼 듯하다. 더욱이 제주에는 당시 문둥병인 나병이 창궐하여 죽어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기건 목사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피해를 조기에 최소화하기도 했다.

 

기건 목사가 아뢰기를, ‘본주와 정의·대정에 나병이 유행하여, 병에 걸린 자가 있으면 전염되는 것을 우려하여 바닷가의 사람 없는 곳에 두므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벼랑에서 떨어져 생명을 끊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신이 중들로 하여금 뼈를 거두어 묻게 하고, 세 고을에 각각 병을 치료하는 장소를 설치하고, 병자를 모아서 의복·식량·약물을 주고, 또 목욕하는 기구를 만들어서 의생과 중들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는데, 현재 나병 환자 69인 중에서 45인이 나았고, 10인은 아직 낫지 않았으며, 14인은 죽었습니다.

 

세 고을의 중은 본래 군역이 있사온데, 고을마다 중 한 사람의 군역을 면제하여 의생과 더불어 치료에 종사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께서 그렇게 시행하게 하였다.

 

위의 기록은 15세기 당시의 제주 사회상을 엿보게 한다. 1445년 당시 제주섬 안에는 대풍라, 즉 한센병이 창궐하여 한센병 환자 69명 중 14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센병이 유행하자 기건 목사는 세종 임금에게 주청해 한센병 전문입원시설인 구질막(救疾幕)을 세웠다. 제주 산야에 지천으로 나는 고삼이란 식물의 뿌리를 달여 물을 마시게 하고, 상처 부위에 바르도록 하고, 남녀를 구별해 수용하고, 의복·양식·약품 등을 공급하는 등 체계적인 진료와 관리에 들어갔다.

 

 

제주시 도두동 해안도로에 구질막 동산 또는 병막이 모루라 불리는 곳에 구질막 표지석이 있다. 이곳은 나병환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여 치료받기도 했던 구질막 진료소가 있었던 곳이다.

 

기건은 관찰사와 대사헌을 역임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명성이 자자하였다. 청렴하고 결백하여 절개를 지키는 것이 정(貞)이고, 백성에게 모범되게 하여 복종시키는 것이 무(武)이라 하는데, 그의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기건 목사가 제주에 재직할 당시에는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는 풍습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70세 이전에 죽으면 바닷가나 개천 등지에 두었고, 70세까지 산 사람은 신선이 될 사람이라 여겨, 70세가 되는 날 아들이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어버이를 한라산으로 모셔갔다. 한라산 정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어버이를 앉혀두면 신선 이 되어 올라간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이방이 기건 목사에게 아뢰었다. ‘내일은 제 아버님이 신선이 되는 날이어서 일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신선이 되는 날이라니? 이방으로부터 자세한 내력을 들은 목사는 ‘옥황상제에게 편지 한 장 써 보낼 터이니 아버님께 전달하여 주도록 부탁하네.’ 하고는 지필묵으로 쓴 밀봉된 편지를 이방에게 주었다.

 

이튿날 이방은 부친을 모시고 한라산으로 올라가 작별했다. 이방이 등청하자 목사는 옥황상제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는지를 물었다. 분부대로 했다고 하자, ‘다시 한라산으로 올라가 보게. 아버지가 신선이 되어 잘 오르셨는지?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보겠네.’ 이방은 목사를 모시고 한라산으로 올라갔다.

 

이럴 수가! 신선이 된다고 믿고 아버지를 앉혀 둔 자리엔 커다란 뱀이 죽어 있었다. 목사가 배를 가르도록 한 뱀 배 속에는 이방의 아버지 시체가 들어있었다. ‘이방, 내 옥황상제에게 보낸 편지는 독약이었네. 신선이 된다고 해서 이곳에 두고 간 노인들은 모두 뱀이 잡아먹었던 것이네. 이래도 신선이 되어 올라간다는 말을 믿겠는가?’ 원통하고 분한 이방은 그제야 자기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온 섬에 퍼지고, 이후 70세가 넘은 노인을 한라산에 버리는 풍속이 없어졌고 또한 70세 이전에 죽은 시체도 매장하는 법이 생겼다고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기건 목사가 성에 올라 주변을 살폈더니 골짜기마다 뼈다귀들이 보였다. 당시 제주에는 사람이 죽으면 여러 골짜기에 버렸다 한다. 목사는 뼈들을 잘 거두어 예를 갖춰 매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나무 관속에 시신을 모시고 땅에 묻도록 했다. 기건 목사는 영혼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면서도 무당은 터부시 하였다. 절 오백 당 오백으로 무당들이 건재했던 당시, 기건 목사는 당과 절들을 모두 부수거나 불태웠다.

 

제주에서의 매장 풍습은 기건 목사의 치적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의 장례관습인 조장에서 보듯, 이전 제주선인들은 시체들을 산과 들에 버렸다고 전한다. 이 설화는 유교적 발상에서 지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장례문화의 변화를 무속신앙과 대립해서 유 교적 입장에서 설화화 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무속신앙과 유교문화의 갈등에서 또 다른 제주적인 통합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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