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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과 폭우에 무너진 히틀러의 꿈반기성의 날씨이야기(28) 날씨가 히틀러를 도왔다면 세계 역사는?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  wxbahn@kweath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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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1  11: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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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군은 10주 이내에 모스크바를 점령한다는 계획 하에 전면 공격을 단행한다. 초기 국경지역 전투에서 독일군은 소련군 100만명을 사살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좋기만 했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며칠 동안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전쟁이 벌어진 1941년 겨울은 예년보다 빨리 찾아와 유달리 추웠다. 게다가 석 달 이내에 전쟁을 마무리하려 했던 독일군은 겨울을 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비로 인해 진창길이 돼버리자 히틀러의 명령에 독일군은 젖 멎던 힘까지 다 내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한다. 그러나 독일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를 25km 눈앞에 두고 탈진하고 만다.

‘소련은 동장군과 진흙장군이라는 영원한 동맹군이 있다.’ 침공군에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소련의 날씨와 지형이었다. 먼저 독특한 소련의 기상과 지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볼가(Volag)강을 비롯한 4개의 큰 강이 모스크바의 천연적인 방어선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대부분 지형이 구릉과 황야지대, 늪지와 소택지 그리고 대삼림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기계화 기동을 중시하는 독일군에게 상당히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륙성 기후대에 속하는 모스크바의 경우 겨울에는 -30℃ 이하, 여름에는 30℃ 이상을 기록하는 극심한 기온변화를 보인다.

봄에는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진흙탕 천지로 변하고 여름에는 땅이 잠시 마른다. 하지만 가을에는 비가 내리면서 다시 진창으로 변한다. 겨울에는 살인적 추위가 기다리고 있으며 오후 3시면 해가 질 정도로 낮 시간이 짧아 작전에 크게 제한을 받는다.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해 가던 독일군이 첫 번째로 만난 것은 가을비였다. 특히 이때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10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한 달 간 도로와 들판은 진흙탕이 됐다. 모든 전차 및 장갑차, 기계화부대가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닥친 재난은 혹독한 추위였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땅이 말라 진창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독일군이 모스크바 서쪽 25km까지 진출한 것은 12월 3일. 이때 -30℃를 밑도는 살인적인 한파가 몰아닥친 것이다.

기상관측 기록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12월 3일 오전 7시 기온은 -7.2℃, 7일에는 무려 -28.9℃까지 떨어졌다. 한편 독일 야전군 진영에서 관측한 기온은 5일 -35℃, 6일 -38℃였다.

12월에 이어 1월에도 추위는 계속됐는데 유럽과 러시아에서는 200년만에 가장 추웠던 달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 소련의 저항을 분쇄하려던 히틀러의 전략으로 독일군에게는 방한복이 지급되지 않았다.

평년보다 훨씬 추웠던 10, 11월에 이어 혹한이 몰아닥친 12월과 1월의 날씨는 독일군에게는 천재지변이었던 셈. 동상과 질병으로 독일군은 수없이 죽어나갔다.

통계적으로 모스크바는 연중 280cm의 눈이 내리며 150일간 눈이 쌓여 있다. 하지만 이 해 겨울은 다른 해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리는 바람에 독일군의 고통은 훨씬 심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동상자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동액을 넣지 못한 트럭과 전차가 멈춰 고철덩어리로 변했다. 날씨는 더욱 나빠져 대낮에도 수미터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가 끼었고 오후 3시만 되면 깜깜해져 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때를 기다려왔던 소련군은 드디어 12월 6일 주코프 장군 지휘하에 100개 사단으로 총반격을 시작, 독일군을 후퇴에 이르게 한다.

한편 1941년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북부·중부·남부집단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를 공격하고, 남부집단군은 우크라이나 지역의 키예프와 흑해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독일군의 총공격으로 그해 9월 16일 키예프가 함락됐다. 이후 10월 하순에 독일군은 흑해에 위치한 크림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제 남은 곳은 소련 흑해함대의 본거지인 세바스토폴 항과 크림반도 동쪽에 위치한 케르치뿐이었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은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기에 소련의 저항은 필사적이었다. 소련 공군은 나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폭격을 감행했고, 소련 파르티잔(유격전을 수행하는 비정규군 요원의 별칭)의 기습으로 독일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12월 초 모스크바 지역에서 소련군의 대반격이 시작되면서 소련군은 남쪽인 흑해에서도 공세로 전환했다. 북쪽인 모스크바는 혹한과 눈이 내리는 날씨였지만 남쪽에 위치한 크림반도에는 연일 폭우가 쏟아졌다.

크림반도는 11월부터 우기로 접어들면서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계속되는 폭우로 병참선이 완전히 차단되면서 케르치를 공격하던 독일군은 후퇴를 결정했다.

   
▲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결국 독일의 소련 1차 침공은 날씨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다. 모스크바 방면의 중부집단군은 겨울의 ‘맹추위’로, 크림반도를 공격하던 남부집단군은 ‘폭우’로 말이다.

히틀러는 “내가 미리 이런 날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았더라면”하고 후회하면서 소련 1차 침공 패배의 책임을 물어 많은 장성을 해임하거나 파면했다. 그리고 이후 육군 총사령관 자리를 자신이 겸임했다.

만일 날씨가 히틀러를 도왔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이나 세계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것이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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