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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회] 명월리 유적 국민가수 '백난아 기념비'

 

한수풀의 발상지인 명월리는 금악•옹포•상명•동명까지를 포함한 넓은 마을이었다. 명월마을은 산세가 좋아 문인학자가 많이 배출된다는 청풍명월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탐라에 5도 15현, 고려 숙종 때인 1105년 탐라가 군으로, 1153년에 군이 현으로 격하되었으며, 1300년에 현촌이 설치되었다. 명월현의 출현은 1153년경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조인 1416년(태종 16년) 제주 3읍을 개편할 당시에는 본읍에 속한 귀덕현과 함께 명월현이 되고, 1437년(세종 19년)경에 명월방호소가 설치되었다. 1608년에는 현촌 제를 폐하고 방리가 설치되자 명월은 우면 소재지가 되고, 1877년에는 신우면, 구우면으로 분할되면서 구우면의 소재지가 되었다.

 

사무소는 풍헌시대에는 풍헌자택을, 면장제 시행으로 명월성내의 사환곡창 일부를 사용하였으며, 1928년 옹포리에 설치되었던 면사무소는 1936년 한림으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명월리 주요유적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한림읍의 대표적 행사로 뜨고 있는 백난아 가요제에 갔었다. 근무하는 학교 학생도 참여하여 열창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제주에서 열리는 전국 유일의 가요제인 만큼 점차 전국적으로 알려지리라 예견될 정도로 지역민의 관심과 지원이 뜨겁다.

 

한림읍 명월리 오남보의 3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백난아(예명)는 어려서부터 청진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을 부른 백년설(경북 성주 출신)의 양녀로 들어가 가수생활 할 때, 백난아의 고향을 함경북도 청진이라고 쓴 것이 함경도 출신인 것처럼 알려졌었다.

 

'아리랑낭낭•갈매기쌍쌍•직녀성•망향초’ 등을 불러 유명해진 백난아의 대표곡인 ‘찔레꽃’은, 작곡가 김교성•작사가 김형일과 함께 1941년 만주공연에서 독립군들을 비밀리에 만나고 돌아온 후, 명월대에서 개사된 것이라고도 전한다.

 

고향의 정서가 담긴 가사 때문에 독립군들은 틈이 나면 고향이 있는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자주 불렀을 것이다. 찔레꽃은 발표 당시에는 반응이 미미했으나,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중의 노래로 승화되어 더욱 애창되었다.

 

백난아의 찔레꽃은 2006년 갤럽조사 결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요 100선에서 53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불리는 노래이다. 1986년 백난아는 가수 현인과 함께 제주도를 찾아와 한림문화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2007년 한림읍이 옛 명월초등학교 교문 앞에 국민가수 백난아 기념비를 세웠다. 그 옆에는 또 하나의 명물인 찔레꽃 노래방도 설치되었으나 지금은 고장 중이다. 비 뒷면에는 백난아의 본명을 오금숙이라고 새겼는데, 실제 이름은 오귀숙이라 한다. 다음은 백난아의 대표곡인 찔레꽃의 가사이다.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동무야.
2.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 삼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3.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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