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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39) 술 마신 다음날 열정이 솟구치는 이유는?

 

술 마신 다음 날 오전. 알코올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다.조금 두근거리며 정체와 방향을 모를 약간의 ‘열정’을 느낀다.

 

오늘 아침 내가 그렇다. 억제제인 알코올이 몸에서 빠지며 일시적 반동(rebound)으로 약간 두근거리는 것인데, 이때 뇌는 ‘내가 뭔가를 열망하고 사랑하고 있나봐.’ 이런 ‘열정’을. 물론 더 심하면 열정이 아니라 왠지 모를 불안으로 느끼겠지만 말이다. 애당초 열정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보다 생리적 반응이 앞서고, 어떤 감정은 앞서 발생한 생리적 반응에 맞춰서 형성되는 것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우세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들어본 적 없다고?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닙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한 거죠.”

 

들어봤을 거다. 이론 과학자들은 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당신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닙니다. 울기 때문에 (뇌가) 슬프다고 느끼는 거죠.” <James-Lange 이론>이다.

 

말이 나온 김에 졸문 [당신은 울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를 붙인다.

 

“영화를 보다 너무 슬퍼서 울음이 나왔어” 혹은 “무서워서 머리털이 다 곤두서더라.” 흔히 하는 말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껴서 우리 몸은 이에 대응하는 생리적 변화를 일으켰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프다고 느낀다.” 혹은 “우린 무서워서 머리털이 서는 것이 아니라 머리털이 섰기 때문에 무섭다고 느낀다.”고 말한다면?

 

 

그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지금 개그 하냐고 말이다. 비록 드라마틱한 표현을 썼지만 실제 1884년 미국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William James와 덴마크 심리학자 Carl Lange는 우리는 어떤 감정(감정경험) 때문에 몸의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생리적 변화에 반응하여 감정을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19세기 말이라고 해도 철학자, 심리학자들인데 설마 남들 웃기려고 이런 주장을 했을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실제 지금도 ‘스트레스를 푸는 명상법’에 사용되는 많은 테크닉들이 ‘감정의 경험은 몸의 생리적 변화에 따른 것이다.’는 <James-Lange 이론>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

 

자, 당신은 스트레스로 화가 치미는 상황이다. 이제 옷을 모두 벗는다. 시원하게 흐르는 차가운 물이 당신 몸을 식힌다. 냉수 한잔 시원하게 마신 후 긴장된 근육을 전체적으로 이완한다, 요가에서 행하는 스트레칭 그리고 호흡도 천천히 깊게... 사실 나는 스트레스를 푸는 명상법과 테크닉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고 상상해 보자. 화가 가라앉는다. 왜 가라앉았을까? James와 Lange 말대로 우리는 ‘몸의 생리적 변화에 반응’(시원한 몸과 내장, 이완된 근육, 깊고 느린 호흡에 반응)하여 ‘감정을 경험’하는 (화가 가라앉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또 어떤가. 1편인지 2편인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영화 <공공의 적>을 보면 검사 강철중은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행복 강사의 지시를 따라 한다. “입 꼬리를 충분히 올리며~ 자, 스마일~” 이거 왜 이러는 걸까? 일부러라도 자꾸 웃는 표정을 지으면 행복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건 처음 들어보는 말도 아닐 것이다. TV에 지금은 돌아가신 황수관 박사같은 분들이 나와서 “억지라라도 웃으세요. 그러면 우리 몸에서 엔돌핀이 나와 행복해집니다. 자, 스마일~” <James-Lange 이론>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식이겠다. 예를 들어 어떤 정보가 눈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 뇌는 즉각 우리 몸에 신호를 보내어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즉, 심장이 벌떡 거리고 근육이 긴장이 되며 땀이 나고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감각 시스템은 이 ‘생리적 변화’를 뇌에 보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경험한다. “후, 무서워” 결국 감정에 기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몸의 어떤 생리적 변화에 대한 신호이다. 결국, 생리적 변화가 먼저다!

 

하지만 <James-Lange 이론>에 대한 비판과 반론도 많아 지금도 생리적 변화가 감정 경험의 원인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당장, 몸의 생리적 상태와 감정 경험과 확실한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장이 뛰고 땀이 나고 소화가 억제되는 건 ‘공포’뿐만 아니라 ‘분노’와 같은 다른 감정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심지어 몸이 아파 열이 날 때처럼 감정과는 관련이 없는 상태에서도 일어난다. 생각해 보라. 집채만 한 호랑이를 만나서 심장이 뛰고 소화가 억제되며 땀이 나는데 “음. 이 치미는 분노감이란.” 얼마나 황당한 노릇이겠는가?

 

하지만 공포나 분노, 혹은 열과 같은 감정과 무관한 상태에서의 생리적 변화가 완전히 같지 않고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미묘한 차이가 감정경험을 다르게 할 것이라는 재반론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James-Lange 이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감정경험은 감정표현(생리적 변화)과는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동물 실험과 광범위한 신경절단 환자 관찰을 통해 1927년 미국 생리학자 Cannon부터 나중에 Philip Bard가 다듬은 이론은 ‘생리적 변화’에 대한 신호 전달을 차단했어도 감정경험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 Cannon-Bard 이론>이라고 불리는 이 주장은 어떤 정보를 대뇌(Cerebrum)가 받으면 시상(Thalamus)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거나 혹은 대뇌 경유하지 않고 직접 시상으로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감정은 이 때 결정된다는 것이다. 신호를 받은 시상(Thalamus)이 적절한 패턴으로 활성화된다. 결국 감정경험이란 시상(thalamus)이 적절하게 활성화되는 패턴이다!

 

하지만, 이 이론에 대한 반론과 비판도 만만치는 않다. 당장 <James-Lange 이론>을 뒷받침하는 예들(화를 푸는 근육 이완법, 웃으면 행복해져요 등 의도적인 신체 변화를 통한 감정경험 유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공포와 분노는 둘 다 시상(Thalamus)이 관장하는 똑같은 교감신경계와 연관이 있지만 생리적 반응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척수 손상을 가진 어른에 대한 한 연구에서 감각 상실의 정도와 감정 경험 감소와 관계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 결과는 감정 경험은 감정 표현에 의존한다고 말한 <James-Lange 이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가? <James-Lange 이론>에 따르면 당신은 울기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고 말한다. 만약 울지 않도록 한다면(슬픔의 생리적 표현을 없앨 수 있다면) 슬픔도 역시 사라진다고 말한다. <Cannon-Bard 이론>은 슬픔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울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튼 그 상황에 맞게 당신의 시상(thalamus)이 적절한 반응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얼핏 생리적 변화나 표현 이전에 감정경험이 먼저이고 당연히 감정경험이 생리적 표현을 유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논쟁이 아직도 여전하고 오히려 감정은 ‘흉내 내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감정에 대한 최근의 이론들을 보면 <James-Lange 이론>에 더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당신은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프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적 진실'에 가깝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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