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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해녀, 그 영원한 유산을 향한 몸부림 ... 해녀의 꿈 빼앗는 바다 오염

 

사실 보목바다는 비교적 오염이 많은 편이다. 서귀포시 동쪽을 담당하는 동부하수처리장이 마을 동편에 들어서 있다. 이곳의 바다는 더 이상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는 오폐수지대다.

 

게다가 제법 규모가 큰 양식장이 세 개나 있다. 양식장의 사료 찌꺼기와 항생제 등이 섞인 배출수가 연안바다를 오염시키는 주역이다. 400여개가 넘는 양식장들이 제주섬 전체를 둘러서서 오염물을 바다로 내보내는 실황을 상상해 보라.

 

실제로 그 하류에 서식하는 소라들을 관찰해 보면, 미끈거리는 오물들을 온통 뒤집어쓰고 숨조차 쉬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 때로는 껍데기에 뾰족뾰족 솟은 살들이 다 닳아서 대머리처럼 매끈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대머리 소라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기형들이다.미역이나 청각에도 끈적거리는 오물들이 달라붙어서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보말들은 전신에 오물덩어리인 혹들을 붙이고 있어서 식용은커녕 만지기도 끔찍하다.

 

설상가상으로 마을 중심을 흐르는 하천에서 흘러들어온 민물이 간간이 소라를 폐사시키기도 한다. 이곳은 수경이 아롱거려서 물질하기도 불편하고, 물이 차가워서 소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어장의 사각지대다.

 

어디 그뿐인가. 포구를 중심으로 해서 성창이나 갯바위가 있는 곳들은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깡통과 플라스틱 용기로 뒤덮여 있다. 예전에는 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해녀들이 즐겁게 작업하던 옥토다. 이따금 태풍이나 폭풍이 불어쳐서 바다를 뒤집어 놓으면 이것들이 해변 가득 올라와서 쓰레기더미를 이룬다.

 

어디선가 밀려드는 정체불명의 생활쓰레기와 스티로폼, 건축 폐자재, 찢어진 그물 등은 바다가 총체적으로 오염되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물이다. 아, 우리의 바다는 그 드넓은 품에 쓰레기들을 한량없이 끌어안고서 ‘청정바다’의 민낯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청소부가 되었다.

 

 

이처럼 복합적인 오염물질로 인해 감태나 톳, 몸, 미역, 청각 등의 해조류가 풍성하게 덮여 있어야 할 바위에는 석회조류가 허옇게 달라붙어 있다. 보말과 소라, 오분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산돌들이 이제는 만지면 푸석거리며 먼지를 일으키는 죽은돌이 되어버렸다.

 

해조류와 패류를 가리지 않고 바다자원을 씨가 마르게 고갈시키는 백화현상은 바다사막의 원조이다. 육지의 사막화 못지않게 바다의 사막지대도 점점 그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그만큼 해녀들이 물질할 바당밭과 숨비질 해서 잡아 올릴 물건이 줄어든단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녀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사실 해녀 물질의 절정기는 한국 전쟁이 종결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로 이어진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만124명이던 해녀가 1957년에는 2만7553명으로 급증하였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물질로 생계를 지탱하려는 해녀들이 늘어나고, 육지부로 출가물질을 나갔던 해녀들이 귀향해 들어온 탓이 아닌가 싶다.

 

한경면 고산리에 사는 고춘금 할머니는 강원도 삼척에서 미역물질을 하다가 6.25를 만났다. 큰 길을 피해 해안가를 빙빙 돌면서 포항을 지나 부산으로 오는데, 제주해녀가 살지 않는 곳이 없더란다. 배가 고프면 해녀들이 사는 집에 들러서 먹을 것을 얻어 먹으면서 부산까지 내려오는데 두 달이 걸렸다.

 

비양도에 사는 김순선 할머니도 강원도에 물질을 갔다가 전쟁이 터졌다는 소리에 21일간을 걸어서 겨우 삼척을 빠져나왔다. 그다음에는 그럭저럭 차를 얻어 타기도 하면서 두 석 달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전은자씨가 집필한 ‘제주해녀의 출가노동’을 보면, 1895년부터 해녀들이 경상남도로 첫 출가 물질을 떠난다. 1880년대 초부터 일본의 잠수기 어선들이 제주연안으로 들어와 전복을 한꺼번에 200관씩이나 남획해버려 어장이 황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된 탓이다.

 

다행히 출가 해녀들의 물질이 활발해지면서 경상도·다도해·강원도·함경도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와 오사카, 중국 칭따오와 다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로까지 활동범위가 확대되었다. 이중에서도 특히 일본행 출가가 많아서, 1903년 미야케지마를 시작으로 이에켄이 해녀물질의 중심을 이루었다.

 

애초에는 이에켄 해녀들이 조선으로 출가했으나 제주 해녀에 비해 일의 능률이 떨어져서 오히려 제주 해녀들을 모집해 가기에 이르렀다. 일본 해녀의 조선 침탈이 오히려 제주 해녀를 일본으로 출가케 한 계기가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18세기 초 약 900명이던 해녀가 20세기 초·중반에 이르러서는 1만30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피폐된 삶이 오히려 해녀의 수를 증가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1932년 일본으로 출가한 제주 해녀는 1600명에 달하고, 육지부로 물질을 나간 해녀의 수는 3478명에 이른다. 이는 제주도 전체 해녀 인구의 57%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러한 출가해녀의 수는 1962년도에도 4090명을 기록해 어느 정도 그 상승기조가 이어졌다.

 

지역별로는 경남 1356명, 경북 1584명, 전남 232명, 강원 787명, 기타 131명 등으로, 서해안을 제외한 한반도 일대에 골고루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울릉도에서 6∼8시간이나 배를 타고 독도에까지 들어가서 물질을 했을까. 바람이 센 날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워낙 물건이 많아서 20여명이 들어가 막사를 짓고 한 달씩 공동물질을 하였다.

 

봄에는 미역과 우미, 여름에는 구살, 겨울에는 소라와 전복을 채취했다. 협재리 홍순옥 할머니는 현재 독도 이장인 김성도씨 부부와 독도물질을 함께했던 동료다. 일제시대부터 제주해녀들이 경비대를 도와서 독도를 실효지배 한 사실은 기억과 함께 사진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실증이다.

 

그런데 이듬해인 1963년도부터 갑자기 그 수가 2215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더니, 10년 뒤인 1973년에는 867명으로 축소되었다. 해녀들의 출가물질이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에 불과해진 것이다.

 

반면에 제주도 전체의 해녀 수는 1967년에도 2만3979명으로, 1950년대의 전성기를 그런대로 유지해 가는 형세다. 하지만 1975년 들어서 1만1316명으로 급감하더니, 1985년 7649명, 1995년 5886명, 2005년 5545명, 2015년 4377명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해녀수가 갑자기 줄어든 것은 이때부터 제주도에 감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소득이 증가된 탓도 있지만, 해녀 물질이 과거처럼 딸에게 승계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누군가 해녀를 자원해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어촌계의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점도 해녀가 감소된 주요 원인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해녀 수의 감소와 더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고령화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해녀들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30~39세 10명(0.2%), 40~49세 53명(1.2%), 50~59세 563명(12.9%), 60~69세 1411명(32.2%), 70~79세 1853명(42.4%), 80세 이상 487명(11.1%) 등으로 60세 이상 비율이 86%를 이룬다. 이중에서 70대 이상이 53%이니, 제주해녀의 절반 이상이 현역에서 이미 은퇴할 나이인 셈이다.

 

이와 같은 고령화 현상은 각종 사고로 이어져서 해마다 바다에서 조업 중에 사망하는 해녀수가 증가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10년간 제주해녀의 조업 중 사망자수는 총 72명에 이른다. 1년에 7명 이상이 바다에서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물질이란 게 워낙에 칠성판을 등에 지고 명정포를 머리에 이고서 목숨을 내놓아 하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1000명 중에 3∼4명이 죽어가는 사망률은 세계 최고의 산재사고율이 아닌가. 더욱이 한 해에 11명이 사망했던 2011년부터 최근 5년간은 사망자수가 45명으로 증가해, 연간 안전사고가 9명에 이른다.

 

이들의 80%가 70세 이상의 고령해녀인 점에서 사고의 원인은 대부분 심장마비로 인한 익사로 판명된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고된 작업을 견디지 못해 실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녀들의 조업 중 사망사고는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견된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도에는 그 숫자가 11명으로 급격히 늘어나더니, 2016년 들어서도 다양한 예방조치가 무색하도록 9월 현재 7명이나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예고된 고령화의 비극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해녀의 통계수치가 소멸단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제주경제의 한 축을 이뤄온 해녀들의 해산물 채취 소득은, 2015년을 기준해서 1인당 연평균 약 715만원으로 집계된다. 이는 우리나라 일반 어촌가구의 연평균 어업 소득 1223만원의 58%에 불과한 수준이다. 물론 해녀 가운데 어획량이 비교적 많은 상군 해녀는 1120만원으로, 어가의 평균소득에 근접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중군은 722만원, 하군은 303만원이니, 1년 소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민망한 금액이다. 중군의 경우 월평균 소득이 60만 원가량에 불과하니, 열흘간 감귤을 따고서 받는 일당에도 못 미치는 액수가 아닌가.
이는 1980년대 제주도 어획물 전체 수출액의 60∼70%를 차지했던 해녀들의 경제 성적표와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물질소득이 현저하게 줄어든 점 또한 현직 해녀들의 숫자를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간주된다.

 

과거에는 ‘다시 태어나도 바당밭으로 가서 물질을 해야지, 그것이 농사짓는 거보다 나아’라며 장담하던 해녀들이 요즘은 마늘밭이나 감귤밭으로 나가서 일당벌이를 택하는 실정이다.

 

제주에선 바다가 직장인데, ‘요즘은 바다가 오염돼서 물건이 안 나는 게 걱정’이라는 해녀 할망들의 염려를 바다는 알까? 물질은 인생의 전부라며, ‘바다가 살아나야 우리도 사는 건데...’라는 할망의 기원을 저 바다는 듣고 있을까?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며, ‘바다에 물건이 많아지면 장래가 있는 거고, 물건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해녀 할망들의 공론을 무심한 저 바다는 알아들을까?

 

그러고 보면 오래된 나의 해녀 꿈이 물거품으로 사라진 것도 해녀들의 욕심 탓이 아니라 오염된 바다, 아니 바다를 오염시킨 인간들의 또 다른 욕망 때문인 게 분명하다.

 

‘청정’ 그 자체가 이름인 제주 바다를 ‘오염’으로 물들이는 생활하수, 양식장, 낚시터, 오폐수, 쓰레기 들이 모두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놀아보려는 욕구충족의 산물’임에랴. 이들이야말로 천 년을 넘게 이어 온 해녀들의 물질 역사를 단절시킬 뿐 아니라 새로 해녀가 되고픈 이들의 간절한 꿈마저 깨트려버리는 파괴자들이 아닌가.

 

이들 오염원이 하루 빨리 제거되어서 해녀들의 바당밭이 청정하게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제주해녀는 문헌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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