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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의 그리스 신화이야기(22)]'부은 발'이라는 오이디푸스 왕의 불행

카드모스가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 벌어진 불행은 카드모스 후손의 이름을 따서 라브다코스가의 전설이라고도 한다.카드모스의 막내아들은 폴리도로스이다. 폴리도로스는 펜테우스가 죽은 다음에 카드메이아의 왕이 되었다. 폴리도로스의 뒤를 이은 사람은 그의 아들 라브다코스이다.

 

폴리도로스는 닉테우스의 딸 닉데이스와 결혼하여 라브다코스를 낳았다. 닉테우스의 동생은 리코스이다.닉테우스는 원래 에우보이아 사람인데 그 나라의 왕을 죽이는 바람에 카드메이아로 피신을 왔다. 카드메이아의 왕인 펜테우스와 닉테우스는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펜테우스는 살인자였지만 닉테우스를 받아주었다.

 

펜테우스의 소개로 폴리도로스와 닉데이스가 결혼을 한 것이다. 폴리도로스는 라브다코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였다. 라브다코스가 왕위를 물려받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외조부인 닉테우스가 카드메이아의 섭정이 되었다.

 

라브다코스 역시 전쟁 중에 사망하여 그의 아들 라이오스가 카드메이아의 왕이 되었다. 닉테우스가 돌보아줄 사람이 없던 라이오스를 쫓아내 버리고는 스스로 카드메이아의 왕이 되었다. 라이오스는 다른 나라고 피신하였다.

 

한편 닉테우스의 딸 중에는 닉데이스 말고도 안티오페라는 딸이 있었는데 안티오페의 성적 취향은 추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람보다는 사티로스라는 반인반수의 괴물을 좋아하는 것 등이었다.

 

지도는 카드메이아(=테베)와 키타이론 산을 표시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사티로스로 변한 제우스와 안티오페를 표현한 그림이다. 사티로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염소인 괴물을 뜻한다.

 

안티오페를 유혹하기 위해 제우스가 사티로스로 변한 것이다. 사티로스로 변한 제우스와 사랑을 나눈 안티오페는 임신을 하였다. 안티오페는 임신 사실을 부친 닉테우스가 알까봐 키타이론 산으로 도망갔다.

 

키타이론 산에는 에포페우스라는 왕이 있었다. 에포페우스는 임신한 안티오페를 좋아하게 되었다. 둘이 사랑을 하게 되자 닉테우스는 안티오페의 임신이 제우스가 아닌 에포페우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닉테우스는 에포페우스를 찾아가서 결투를 신청하였는데 에포페우스가 닉테우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닉테우스는 죽기 직전에 동생 리코스를 불러 복수를 부탁하였다. 리코스는 에포페우스를 살해하고 안티오페롤 붙잡았다. 임신한 안티오페는 리코스에게 끌려 다니면서 온갖 조롱을 받았다.

 

안티오페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 에포페우스와 닉테우스 모두가 죽어버렸다. 리코스 입장에서는 형 닉테우스 대신에 카드메이아의 왕이 될 수 있었다. 리코스는 안티오페를 괄시하였다. 리코스는 안티오페가 자식을 낳으면 걔네가 왕위를 노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와중에 안티오페가 암피온과 제토스라는 쌍둥이를 낳았다. 아니나 다를까 쌍둥이가 성장하자 리코스를 몰아내고 카드메이아의 공동 왕이 되었다. 암피온은 니오베라는 여인과 결혼하였고, 제토스는 테베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다. 이후 카드메이아라는 명칭은 제토스의 부인인 테베의 이름을 따서 테베라고 불리게 되었다.

 

암피온과 니오베는 결혼을 하여 아들과 딸 각각 7명씩을 낳았다. 이 슬라이드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니오베의 자식들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한 슬라이드이다. 워낙 자식들이 많고 잘 키우는 바람에 니오베는 오만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레토보다 훌륭하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레토가 누구인가. 그녀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낳은 여신이다. 니오베는 레토가 딸랑 두 명의 자식을 낳은 것 밖에 더 한 일이 무어냐고 비난하고 자신이야말로 다산의 상징이자 자식을 잘 키운 여인이라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레토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도 모친 레토의 고충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에서 화살을 쏘아 니오베의 자식 14명을 모두 죽였다. 그러자 슬픔에 지친 니오베는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암피온과 제토스가 결국 자식을 남기지 못하자 코린토스에 피신해 있던 라이오스가 테베로 복귀를 하여 테베의 왕이 되었다. 원래 테베(=카드메이아)는 카드모스가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카드모스의 후손이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라이오스에게는 말 못할 치명적인 죄가 있었다. 코린토스에 망명해 있는 동안 그 곳의 왕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를 동성애적으로 구애한 것이다. 이에 수치심을 느낀 크리시포스가 자살을 하였고 펠롭스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라이오스에게 저주를 내렸다. 때마침 테베의 왕위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라이오스는 테베로 돌아가서 왕이 되어 저주를 잠시 피하는 듯하였다.

 

라이오스는 아름다운 여인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하였다. 과거 카드모스가 왕뱀을 죽였을 때 그의 이빨을 뽑아 대지에 뿌린 적이 있었다. 당시 이빨에서 태어난 병사들을 스파르토이라고 하는데 이오카스테는 이들 스파르토이 중 한 사람의 증손녀였다. 이오카스테는 아름다웠지만 아기가 없었다. 라이오스가 믿는 신탁을 물었다. 라이오스의 아들이 태어나면 라이오스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신탁을 물은 뒤 테베로 돌아온 라이오스는 이오카스테와의 잠자리마저 멀리하였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라이오스는 아내를 임신시켰고 아들이 태어났다. 부부는 신탁을 믿었기 때문에 아들을 키타이론 산으로 데려가서 왕가의 가축을 몰고 다니는 목동을 불렀다.

 

부부는 목동에게 아이를 멀리 데리고 가서 죽여 버리라고 하였다. 목동은 갓난아기의 발목을 뚫어 가죽 끈으로 묶고는 등에 메고 산으로 갔다. 그러나 목동은 차마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옆 나라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건네주었다.

 

코린토스의 목동은 아이를 데리고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에게 갔다. 아이가 없던 폴리보스는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아이의 이름은 부은 발이란 뜻이 오이디푸스로 지어주었다. 오이디푸스는 자라면서 기품과 용기가 있는 훌륭한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오이디푸스의 친구가 그에게 너는 폴리보스 왕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폴리보스 왕에게 확인하였지만 왕과 왕비는 오이디푸스가 친자식이라고 이야기 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될지 몰랐던 오이디푸스는 델포이로 가서 신탁을 물었다. 신탁은 오이디푸스가 부친을 죽이고 모친과 결혼하게 될 운명이라고만 하였다. 놀란 오이디푸스는 부모로부터 멀리 떠나가는 것이 저주를 받는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코린토스를 떠났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오이디푸스는 좁은 길에서 마차 한 대와 마주쳤다. 그런데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오이디푸스에게 모욕을 주었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그 사람을 죽이고는 테베로 갔다.

 

지도는 오이디푸스가 성장한 코린토스와 원래 고향인 테베를 표시한 것이다. 테베 입구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있었다. 왼쪽은 이집트의 대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 사진이고 오른쪽은 도자기에 새겨진 스핑크스이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로 들어가려하자 스핑크스가 그에게 문제를 내어 문제를 맞히어야 테베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스핑크스가 낸 문제는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다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현명한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대답하였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문제를 맞히자 스스로 죽고 말았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로 입성하자 테베의 시민들이 그를 환영하였다. 도시 입구에서 문제를 내면서 맞히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괴물을 오이디푸스가 물리쳤기 때문이다. 마침 테베의 왕이 죽은 직후였기 때문에 테베 시민들은 오이디푸스를 테베의 왕으로 추대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 사망한 왕의 부인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신탁대로 모친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는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 안티고네, 이스메네가 태어났다.
오이디푸스는 현명한 왕이었기 때문에 정치를 잘 하여 나라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테베에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았다.

오이디푸스는 흉년과 전염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델포이로 사신을 보내 재앙의 원인을 알아오게 하였다. 사신의 역할은 이오카스테의 동생인 크레온이 맡았다. 크레온이 델포이 신전에 받아 온 답은 선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내어 국외로 추방하면 질병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편 크레온과 시민들은 눈 먼 예언자인 테레시아스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 그를 오이디푸스 왕에게 추천하였다.

 

왕은 테레시아스를 불러 범인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테레시아스는 범인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오이디푸스가 테레시아스를 범인으로 몰자 흥분한 그는 오이디푸스 왕이 테베로 올 때 죽인 사람이 라이오스 왕이라는 것을 밝혀 버렸다.

 

다른 설에 의하면 다른 이유로 진실이 밝혀졌다는 설이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테베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코린토스에서 테베로 사신이 왔다. 사신은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가 오이디푸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으니 코린토스로 가서 왕위를 물려받으라고 했다. 오이디푸스는 멜로페 왕비가 자신의 친어머니로 믿고 있었다. 그는 생모와 결혼한다는 신탁 때문에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사신은 멜로페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고, 실은 자신이 어린 오이디푸스를 코린토스의 왕에게 데려간 목동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가 폴리보스와 멜로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오카스테는 자신이 아들과 결혼하여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새파랗게 질려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목을 매서 자살하고 말았다. 오이디푸스는 조사 결과 자신이 부친인 라이오스를 죽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모든 게 신탁과 같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죄책감에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더 이상 테베의 왕이 아니며 그 곳에서 살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테베를 떠나기로 하였다. 장님이 홀로 도시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시대였다. 효녀였던 안티고네는 장님이 된 부친을 따라 나섰다. 부녀는 아테네에 도착하여 테세우스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부녀는 복수의 여신을 모시는 사당에서 지난날의 죄를 깨끗이 씻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슬라이드의 첫 번째 사진은 안티고내와 눈 먼 오이디푸스가 길을 떠나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오이디푸스의 무릎에 엎드려서 통곡하는 안티고네를 그린 장면이다. 세 번째는 부녀가 황량한 계곡을 지나는 장면이다.

 

오이디푸스가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나자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테베의 왕위를 두고 서로 다투었다. 둘은 협상을 하여 1년씩 번갈아 가면서 왕이 되기로 합의를 하였다.

 

먼저 형 에테오클레스가 왕권을 잡았는데 1년이 지난 후에도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라는 지역의 왕들과 동맹을 맺어 테베를 공격하지만 실패하였고 형제는 일대일 대결을 벌였다. 맞대결에 둘은 모두 치명상을 입어 죽고 말았다. 라브다코스 왕가의 남자 혈통이 모두 죽자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인 크레온이 테베의 왕이 되었다.

 

크레온 왕은 전왕이던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게 하였지만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아무도 수습하지 못하게 막았다.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를 역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겠다고 공표를 하였다.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를 도와 아테네로 갔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가 사망하자 테베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천륜이라고 생각하여 크레온 왕의 명령에 불복하였다. 그녀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위에 흙을 뿌려줌으로써 도리를 다하였다.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를 붙잡아 사형 선고를 내렸다. 왕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에 대한 죄를 물은 것이다. 크레온은 그녀를 라브다코스 왕가의 무덤들이 있는 곳에 가두었다. 안티고네는 목 메달아 자살하고 말았다.

 

그런데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이몬은 자신의 연인이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 갔지만 이미 그녀는 주검이 된 상태였다. 하이몬은 연인의 죽음에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안티고네의 시신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크레온은 뒤늦은 후회를 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얼마 후 폴리네이케스와 동조하여 테베를 공격했던 아르고스의 무리들이 다시 쳐들어와 테베를 멸망시켰다. 이 후 테베는 아주 오랫동안 폐허로 남게 되었다.

 

마지막 슬라이드입니다. 제우스와 이오의 후손 중에 아게노르라는 사람이 있었고, 아게노르에게는 카드모스라는 아들과 에우로페라는 딸이 있었다. 카드모스는 에우로페를 찾아 나섰다가 아레스의 부하인 왕뱀을 죽였다. 카드모스는 아레스의 딸인 하르모니아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 자손들이 모두 불행에 빠지게 된다.이것이 테베의 전설 혹은 카드모스가의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상징적으로 이런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우연히 폐허가 된 도시를 찾았다. 폐허의 규모로 보아서는 과거에 상당히 발전된 도시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 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 도시를 세웠고, 어떻게 해서 멸망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당연히 갖게 된다. 그런 호기심에 작가들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 도시의 발생과 성장 그리고 멸망에 대해 많은 추측성의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아마도 테베의 전설은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철은? =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고를 졸업했다. 고교졸업 후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와 서울대병원에서 영상의학을 전공했다. 단국대와 성균관대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현재 속초에서 서울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부터 줄곧 서양사와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두다가 요즘은 규명되지 않은 고대와 중세사 간 역사의 간극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는 전공서적인 『소아방사선 진단학』(대한교과서)이 있고 의학 논문을 여러 편 썼다. 헬레니즘사를 다룬 <지중해 삼국지>란 인문학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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