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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일제강점기 제주지역 남녀의 일과 역할

그들은 이러한 노동은 물론 저 험(險)하고 박(薄)한 자연을 상대로 싸워가며 영위하는 그들의 원시적 자족적경제(自足的經濟)에서 나오는 “부득기(不得己)"한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저러한 노동을 하지 안코서는 저 소박한 원시적 생활조차도 할 수 없으리 만치 그들의 노동은 너무나 과하고 너무나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즉도 노동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역사적 조건은 없섯든 것이다.

 

인류가 원래 가젓섯고 또 장래에 반드시 가지리라는 저러한 순진한 노동생활을 우리는 불완전하나마 그들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잇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저러한 노동생활에 시민적왜곡(市民的歪曲)과 사위(邪僞)가 석기지 안은 채로 그들의 생활이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잇다면 하는 기원(祈願)을 마지 안는다. 지금의 그것은 비록 순진하나마 너무나 원시적이고 너무나 비문화적(非文化的)인 까닭이다 그들의 “노동”은 너무나 과(過)하고 그들의 영양(榮養)은 너무나 조박(粗朴)하며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문화적이다. 그들의 노동이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인류로서의 생활상 필요한 노동의 형태로서 향상된다면 그 얼마나 다행이랴!(동아일보 1937년 9월 1일).

 

1938년 제주지역의 총가구수에 대한 농가구수 비율(농가비율)은 89.7%, 제주도 총인구에 대한 농가 인구 비율(농가인구비율)은 87.0%이다. 제주지역 농가는 전업농보다 반농반어 혹은 반농반임(축)의 비율이 높으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척박한 토지와 비료(특히 금비) 사용이 미진했던 제주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노동력’이다. 토지생산성보다 노동생산성에 의존하는 조방적 농업성격을 지니고 있던 제주농업에 있어 노동력은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였다.

 

‘소가치 일한다’ 이 말은 힘차게 일한다는 형용(形容)으로 우리가 항상 쓰는 말이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저 방목되어 잇는 우마는 오히려 한가하다. 남녀노소없이 남국(南國)의 쪼이는 폭양(曝陽)에는 적동색(赤銅色)으로 끄시른 그들의 얼굴은 스스로 그들의 노동생활(勞動生活)을 말하고 잇다.

 

우리의 도시에나 농촌엔들 과대한 노동을 하는 자가 얼마나 만흐랴 마는 이곳 제주에 잇어서는 그것이 오히려 전폭적(全幅的) 현상이다. 특히 부녀자의 노동은 한 개의 경이적 사실이다. 그들은 밭에서 김매고, 바다에 어렵(漁獵)하며 시장에 취인(取引)하고 출가노동(出稼勞動)을 한다.

 

제주에 잇어의 부녀자의 노동은 원칙적으로 이러한 가정내부(家庭內部)의 그것에 한정되어 잇는 것이 아니고 또 단순히 가장을 도웁는 종속적(從屬的)인 노동이 아니며 가장과 나란이 하야 동격적(同格的)으로 노동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은 감시(柿))물 드린 노동복을 입고 산(山)떰이 같은 짐을 지고 우마를 몰며 도로에 출몰(出沒)한다. 구덕을 끼고 시장에 가며 노동복을 벗어 노코 회석(會席)에도 나아간다(동아일보 1937년 9월 1일).

 

제주지역 농촌에서 남성들이 하는 일은 기경(起耕)․진압(鎭壓)과 부역․ 토역․ 건축․ 어업․ 기타 힘으로 하는 일 등이 있다. 여성들이 하는 일은 맷돌․ 절구․ 잠수업․ 기타 망건․ 탕건․ 갓 등을 짜는 것, 물긷기․ 세탁․ 재봉․ 요리 등이 있다. 남녀 공동으로 하는 일에는 제초․ 수확․ 비료운반․ 가사경영 등이 있다.

 

 

지역에 따라 산촌에서의 여성은 밭갈이 뒤의 흙 부수기․ 파종․ 흙밝기․ 제초․ 탈곡․ 풍선(風選)․ 맷돌․ 절구․ 양돈․ 양계․ 물긷기․ 취사․ 부역 등과 같은 육체적 노동과 육아․ 부조․ 친족교제․ 금전출납․ 조상제(祖上祭) 등 가사노동을 겸했다.

 

이외에도 비료운반, 수확, 탈곡, 풍선(風扇) 등의 작업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수도작 작물의 재배작업과 비교해 볼 때 여성 노동의 비중이 매우 크다. 조재배도 마찬가지이다. 조는 대맥(大麥)보다 제초작업 횟수가 많다. 특히 작물의 성장기인 성하(盛夏)에 작업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 제주여성들의 작업은 매우 힘들었다. 심지어 ‘조검질 메다’가 질식사할 뻔한 위험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제주농업노동에 있어 여성의 노동비율은 57.5%를 차지한다. 이처럼 제주 농업에 있어서 여성노동비율이 높았던 이유는 제주농업이 비료 사용이 적은 전작(田作)중심이었다는 데 있다. 제주지역의 주요 재배작물은 조, 보리, 육도, 메밀, 피 등과 같은 전작물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전작(田作)은 논(水田)에 비해 잡초가 많다. 따라서 금비(金肥) 보급 이전 제주지역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초는 여성노동의 몫이였던 경우가 많아 여성노동이 강화(强化)되는 결과를 낳게 한 것이다. 제주농업에 있어 여성노동투입비율이 전국평균에 비해 높은 것은 이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진다.

 

 

그러면 제주도 남자들은 ‘무엇을 했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한 기록을 보면, ‘해녀를 아내로 둔 제주도 남자들은 여자 대신 아기나 보고, 술과 게으름, 방탕으로 일생을 보낸다’고 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제주도 농업형태를 보면, 여성노동비율이 57.5%(논농사인 경우 남성대 여성의 노동투입비율은 7:3인데 비해 밭농사지대에서는 평균 4:6)로 타 지역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과 남성의 ‘일’ 분담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토양 특성상 자갈이 많고 수전(水田) 지역에 비해 잡초가 많았기 때문에 여성노동 투입비율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화전(火田) 일구기, 밭갈기, 진압(鎭壓), 농기구나 농작물 운반 등은 남성노동력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해녀물질에 있어서도 남자의 역할은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면 비료로 쓸 ‘둠북’을 채취할 경우 혹은 감태 등과 같은 해조류 채취 작업에 있어서도 남녀의 협업(協業)은 관행적으로 이루어 졌다.

 

나는 지금(只今) 부녀자의 노동에 대하야서만 말하엿으나 그것은 결코 부녀자의 노동에 한한 그것이 아니다. 남자들 역시 동일한 노동생활을 영위(營爲)하고 잇다. 혹은 제주에는 여자만이 노동하고 남자는 한거음수(閑居飮水)하는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잇다. 그러나 그것은 왜곡(歪曲)된 상식적 과장(常識的 誇張)이다. 여기의 남자도 여자 못지 안케 그리고 우리사회의 남자에게 못지 안케 노동한다.

 

다만 우리사회의 노동생활과 제주의 그것이 가지고 잇는 차이가 “부녀자에 잇서 가정 현저하게 표현되는 까닭으로 그것을 통하야 전체적으로 그들의 노동생활의 성질을 인식하려고 하는 것이다(동아일보 1937년 9월 1일).

 

이 기사(記事)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여성의 일이 많다는 것이 남성의 노동기피나 방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밭작물 재배에도 남자와 여자의 일 은 구분되어 있다. 기경(起耕)이나 진압(鎭壓), 밭 만들기, 수확, 운반 등은 남자노동의 몫이고 여자노동은 검질 메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놓고 보면, 당시 제주사회에서는 남녀의 분업과 협업이 자율적으로 잘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제주농업은 조방적 성격이 강해 남성들이 자기 노동력을 100% 발휘할 만큼의 노동기회가 좀체 주어지지 않아 계절적 실업상태에 놓였던 경우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일(渡日)로 인한 일본 하급노동시장으로의 진출은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새로운 노동기회의 창출과 노동시장의 확대를 의미하며 새로운 소득원으로 인식되었다. 나아가 이 기회를 통해 당시 제주도민 자신들의 경제적 한계를 극복해 보려 노력하였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당시 제주지역 ‘남녀의 일 역할’ 이란 노동기회와 노동력 발휘의 사회적 최적화, 혹은 사회적 분업이라 여겨진다. 각자 노동력 발휘에 적합하고 경쟁력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작업현장에서 노동력을 십분 발휘하였던 것이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 역할 혹은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면 거기에 적합한 남자 또는 여자 노동력이 분업 혹은 협업형태로 투입되어 효율적인 생산에 임했다. 물론 가사 분담 차원에서 보면 이와는 180도 다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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