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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
'숨비소리, 바다 건너 세계로' ... 유네스코 등재[43화] 해녀학교가 펼쳐준 인생 퍼레이드 ... 해녀축제에 참가하다
허정옥 논설위원  |  johur19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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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7  0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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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우리는 해녀축제의 일원으로 공식적인 초대를 받게 되었다. 2015년 10월 3일, 해녀학교 졸업생으로서 첫 번째 참가한 제 8회 해녀축제는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열렸다.

우리는 아침 8시에 열리는 식전행사, ‘신명나는 해녀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귀포를 떠났다. 세화리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길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참이니 이왕이면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유람하면서 가기로 하였다.

50년이 넘도록 물질을 해 온 어머니는 93세란 나이가 무색하도록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해녀들을 위해서 도지사가 특별히 차려놓은 잔치자리에 간다는 소리에, 어머니는 ‘해녀가 무엇을 했다고, 그 높은 지사님이 우리를 부르시냐.’ 면서 은근히 기뻐하셨다. “어머니, 이 세상에서 해녀는 가장 훌륭한 어머니세요!”라고 소리치는 나의 등 뒤에서, ‘나는 자식들 고생시킨 죄밖에 없다’시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강원장이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제주도 어머니들은 다 똑같으시네요. 저희 어머니도 늘 ‘너희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노래를 부르시더니....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저희 어머니도 해녀를 하셨는데, 한 번도 고생스럽단 말씀을 안 하셨어요.

늘 자식들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해서 속상해 하셨는데, 어머니가 떠나시고 보니, 이 세상 어머니들은 살아계신 것만으로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거네요.” 얼마 전 어머니를 여읜 강원장의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셨는지, 그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안쓰러운 그늘이 어린다. ‘네 어머니도 해녀를 했으면, 고생 많이 하였구나’ 하는 어머니에게, 우리는 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였다. “예, 어머니!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해녀’라 쓰고, ‘어머니’라 읽는답니다.어머니 덕분에 저희도 오늘, 해녀 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대박입니다.”

   
 
퍼레이드는 구좌읍사무소에서 출발해서 해녀박물관까지 가는 길이었다. 1등에게 1백만원이 걸렸다면서 상금을 향해 저마다 투지를 발휘하는 팀들은 각양각색의 의상과 깃발, 춤과 소리, 참가자수와 구호로 시선을 끌었다.

작년에 1등을 했다는 법환마을 해녀팀은 올해도 2연패를 달성하겠다며 대오를 길게 늘어뜨리고서 출발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써커스의 삐에로 분장을 한 해녀가 신바람 나게 광대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도 한 목소리가 걸걸하게 우리를 불렀다. 누군가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아하, 해녀학교 입학식에서 ‘해녀의 삶’을 연극으로 보여줬던 상군해녀시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퍼레이드의 신바람 속으로 동화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와 한수풀해녀학교를 위해 배정된 새내기 해녀들의 자리를 차지해서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하며 행진을 시작했다.

2∼3키로의 거리를 행진하며 축제의 개막식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거리 양옆에서는 구경나온 주민과 관광객들이 모처럼의 볼거리에 신바람이 나는지 힘차게 손들을 흔들었다. 세상에, 우리가 이 재미난 행사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등장하다니... 내게는 마치 인생일대의 사건과 같은 순간이었다.

해녀학교가 아니라면 내 무슨 복으로 이러한 행렬의 주역을 해볼 건가. 게다가 내가 걷는 사이에 어머니가 제주도의 역점사업으로 홍보중인 전기자동차의 손님으로 뽑혀서 편안하게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상 살다 보니 별 호사를 다 누린다며 화안하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과연 해녀들의 대선배다운 행복이 주름살 수만큼이나 넉넉하게 빛났다.축제가 진행되는 3일 동안 개막식, 콘서트, 시식회, 물질대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그럴듯하게 펼쳐졌지만, 어머니의 자동차 퍼레이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였다.

우리 해녀학교 졸업생들은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면서, ‘숨비소리, 바다 건너 세계로’란 주제를 내건 행사목적에 맞춰서 부스를 열고 제주해녀의 새로움과 지속성을 과시했다. 사실 해녀학교를 통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은 제주해녀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화를 형성하는 활동과 정신이 삶의 현장에서 지속되지 않고 그저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는다면, 제주해녀는 인류유산으로 등재되기에 무언가 아쉬운 형편이었다.

이 중요한 역할을 인식한 듯이 주최측은 ‘새내기 해녀 학생 수영대회’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와 한수풀해녀학교 학생들이 태왁을 짚고서 누가 빨리 헤엄치나를 가리는 경주였다.

이제 겨우 1기를 배출한 법환과 이미 8기까지 나온 한수풀 간의 수영대회는 처음부터 한수풀이 승기를 잡은 분위기였다. 나이, 체력, 경력 면에서 다양한 후보군을 확보하고 있는 한수풀의 선수들은 첫눈에도 젊고 튼튼하고 다부져 보였다. 반면에 법환은 축제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이 선수로 나서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나이도 많은데다가 한수풀의 동문이기도 해서 결코 결기가 발휘될 수 없는 선수까지 동원되었다.

하지만, 경기를 알리는 심판의 호루라기가 ‘삐리릭’ 하고 싸움을 돋우자 선수들은 모두 가열차게 발차기를 시작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표적을 향해 헤엄쳐 가는 동안 경기장을 둘러싼 구경꾼과 취재진들이 함성을 지르며 투지를 올렸다. 아, 트랙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가슴이 터지더라도 등수에 들어봤을 텐데...,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고, 초반 스퍼트가 늦는 바람에 끝내 선두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다행히 우리 팀의 영림이가 3등으로 진입해서 학교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1등으로 골인한 선수가 수영선수란 소문에 위안을 삼으며,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서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나 이 대회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경주가 불러일으키는 과도한 경쟁이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주최 측은 다음해에 대회의 방식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제9회 해녀축제는 2016년 9월 24일부터 이틀간 다시 해녀박물관에서 열렸다. ‘숨비소리, 바다 건너’를 주제로 내걸고서 예년과 달리 물소중이를 입은 해녀 대표와 도지사, 관련 기관장들이 ‘불턱 성화 퍼포먼스’를 거창하게 치뤘다. 연말에 예정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온 도민들이 뜨겁게 하나가 되어서 한 마음으로 기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해녀학교 학생들을 위한 행사는 ‘새내기 해녀물질대회’로 이름을 바꿔서 수영 대신 소라잡기로 경주내용이 달라졌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바다에 소라를 흩뿌려놓고서 한수풀과 법환 해녀학교 학생들이 별도로 소라를 채취하는 방식이었다.

지나친 경쟁을 배제하고 실질적인 해녀물질의 기량을 판가름하기 위한 취지란다. 이제는 2기 학생들이 들어와서 숫자가 늘어난 법환도 이 정도의 대회를 치룰 만큼 규모가 커졌다. 1기생들 중에는 이미 정식해녀로 어촌계에 가입되어서 기존 해녀들과 나란히 수심 6∼7 미터를 잠수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 경주에는 제대로 된 물질실력이 승패의 관건이 될 터였다.

하지만 웬걸, 막상 대회가 시작되고 보니 아직 인턴십도 못 거친 2기생들의 투지와 활약이 대단하였다. 수심이 우리들의 키를 넘을 듯 말 듯 한 깊이에 모래바닥이다 보니, 실력보다 체력과 눈치, 민첩성이 요구되는 경기가 되었다.

게다가 초보자들이 풍덩거리면서 모래바닥을 들쑤셔놓는 바람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서 도무지 소라가 어디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손으로 바닥을 이리저리 더듬으면서 소라가 있나 없나를 짐작해 보는 수밖에. 그러니 물에서 나오자마자 누가 먼저 들어가서 바닥을 더 부지런히 훑어보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되었다.

이 역시 체력이 실력인 싸움이었다. 물질하고 나와서 ‘호오이’ 하는 숨비소리도 내지를 새 없이 무턱대고 자맥질을 해대야 하는 판국이라니... 아, 나는 새내기 후배들이 거침없이, 무턱대고, 발빠르게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장면을 망연자실 쳐다보면서 ‘해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경주시간이 끝나고 심판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에 물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의 망실이를 쳐다보면서 민망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 해녀로 활약 중인 소영이, 은주의 망실이도 홀쭉하니 늘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각자의 망실이를 차례차례 저울에 올려서 무게를 달아본 후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1등을 했다가도 그보다 무거운 망실이가 등장하면 순위가 뒤바뀌는 식이었다. 나는 겨우 7 키로에 불과한 망실이를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발밑에 내려놓고서 마치 관심이 없는 양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소라만큼은 누구보다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 어쩌랴. ‘아, 이건 진짜 해녀물질이 아니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면서 동기들끼리 서로를 다독이며 어색한 웃음을 날렸다.

다행히 잡은 소라를 각자가 집으로 가져가도 좋다는 바람에 서운한 마음을 망실이에 집어넣고서 유쾌한 걸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해녀학교를 나온 덕택에 축제에 참가하고 경주도 하면서 제주해녀의 일원으로 행사를 즐길 수 있는 게 아닌가?

   
▲ 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참, 이번 축제에서 새로 도입된 ‘제주해녀 수기공모전’에서 나에게 우수상을 선물해 주신 어머니의 물질담은 살짝 자랑하고픈 나름의 영웅전이다. ‘해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란 공모전의 주제에 따라 내 어머니의 얘기는 ‘인생, 싸는 물 이시민 드는 물 이신거’란 제목으로 토로되었다. 어쩌면, 이 얘기를 끄집어내려고 내가 이다지도 제주해녀에 천착하며 몸부림을 치는지 모르겠다.

이틀 간 총 4만5천명이 참가한 축제의 열기가 바다 건너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등재 결정지인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그리고 제주를 주목하는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다 퍼져나갔던 것일까?

12월 1일, 드디어 우리의 기원대로 제주해녀가 세계유산이 되어서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이 또한 우리들의 축제가 가담하여 이뤄낸 결실 중 하나이리라.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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