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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일본군이 주둔했던 마을의 역사 - 옹포

 

명월포•독개•독포라고도 불렸던 역사적인 마을 옹포에는, 감태 공장•통조림공장•한림청장 등 적지 않은 일제의 흔적들이 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 시절 구축되어 확장된 한림항이 인근에 있어, 이 지역이 일본군들이 주둔했던 지역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2014년 여름 옹포리에 일본신사가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필자는, 이 지역 출신 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옹포별장이라는 곳을 탐사했다. 밀림에 아직도 가려져 있는 그곳은, 해방 직후까지 제주에서 흔하지 않을 정도로 온수로 목욕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한림청장(翰 林靑莊)이라 불리던 별장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경찰의 고위 간부가 살았던 집이다. 1929년 일본식으로 지어진 건물과 정원의 조경수로는 동경•한라산•안덕계곡 등지에서 200여 종을 이식했으며, 30여 평의 연못도 딸려있다. 별장 서쪽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일본식 신단이 있고, 건물 내부에 ‘가미다나’라는 일본신을 모시었다 한다.

 

한림청장 글씨 속에 다른 글씨가 있었는데 대한민국 특무대에서 그 글자를 없애라고 해서 시멘트로 바르고 다시 썼다 전한다. 삼성혈 곁에 있는 제주 최초의 관광호텔이 들어서기 전에는, 요인들이 제주에 오면 이 집에 머물렀다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 전후에 세워진 일명 우에무라 제약회사라는 감태공장 흔적이 옹포리에 남아있다. 성산포의 제1감태공장과 옹포리 감태공장에서는 1955년까지 요오드 원료와 염화가리를 추출하여 일본으로 보내졌었다.

 

이곳에는 통조림공장도 들어서 있었다. 공장을 창립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 다케나카 통조림공장으로 불렸다. 일본군은 1931년 군수용 통조림 시설을 이곳에 확장하고, 쇠고기와 청어 통조림을 생산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에는 일본군 1,200명이 통조림공장에서 주야 교대로 하루에 소 400마리를 도살하기도 했던 이곳은 전시국책사업장이었던 것이다. 공장부지 4,800평, 건물 386평, 창고와 사택 512평이었다. 1949년 초에는 명월•금악•상명 등지에서 온 4•3 소개민들이 대거 수용되기도 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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