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41화]해녀학교가 펼쳐준 인생 퍼레이드 ... 해녀 영화에 출연하다

 

해녀학교를 졸업했지만, 졸업장에 남아 있는 온기가 우리를 학교 주변으로 모여들게 했다. 학교가 워낙 아름다운 범 섬 앞에 위치해 있어서 경치가 그만이었다. 범 섬은 멀리서 보면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북쪽으로 급경사의 깎아지른 듯 한 해식애를 뚫고 일명 호랑이 콧구멍‘이라 불리는 쌍둥이굴이 있다.

 

하지만 해녀할망들은 제주도를 창조한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고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오백 아들을 낳을 때마다 두 발로 걷어차서 뚫어진 굴이라 믿는다. 어쨌든 이 섬이 있어서 더 신비스런 해녀학교 앞바다는 제주도의 그 어느 곳에서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있을까 싶게 아름다운 곳이다. 게다가 학교에는 추억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우리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느 카페처럼 아늑하고 다정스런 구석이 많은데다가 커피가 공짜였다.

 

우리는 교실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다가 의기가 투합하면 실습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졸업생에게 주어지는 50% 할인 특전은 다른 체험객들과 구별되는 만족감과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 자부심의 근저에는 홈그라운드가 안겨주는 우월감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환경과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친숙한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자아냈다.

 

우리는 철썩거리며 달려드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고래처럼 우쭐거리며 넘실대는 물결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파도와 처음 대면했을 때 겁을 집어먹고 졸아들었던 가슴을 활짝 펴고서 일부러 오리발을 여보라는 듯 있는 힘껏 내갈겼다. 마치 그때의 치욕을 만회라도 하듯이 실습장을 종횡무진하며 물질실력을 과시했다. 여러 명이 어우러진 집단의 힘은 각자의 기량보다 한껏 더 고조된 시너지를 연출하였다. 우리는 지상에 하나뿐인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의 제 1 회 동창생들이었다.

 

물질을 마치고 나와서 샤워하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도 각별한 애정과 열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재학시절보다 더 뜨겁게 학교와 바다를 사랑하고 있었다. 법환 좀녀들이 성게를 까는 틈에 끼어들어서 ‘삼춘들, 우리도 좀 도와드리쿠다, 예!’ 하면서 넉살좋게 틈새를 벌이고 퍼질러 앉기도 했다. 해녀삼춘들은 참새가 자기 새끼를 귀애하듯이 우리들의 입에다 그 귀한 성게를 쏘옥 쏙 넣어주었다. 잡아온 성게를 반으로 잘라서 내장을 버리고 알을 긁어내면 대략 15g 정도의 성게알을 모을 수 있다.

 

그러므로 상군들이 하루 평균 5㎏ 정도의 성게알을 수확하려면 적어도 400개 이상의 성게를 채취해야 한다. 아침에 3~4시간 정도 물질을 해야 가능한 분량이다. 그다음에는 2~3시간 동안 줄곧 성게 수만큼 까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그 지루한 작업 속으로 들어가 우리는 새가 둥지를 틀듯이 삼촌들과 한식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학교 시절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해녀의 실생활이요 문화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입소문을 탄 것일까? 어느 날 해녀 학교로 재밌는 광고가 날아들었다. ‘해녀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졸업생, 선착순으로 모여라.’ 그 중에서 면접을 통해 한 명을 조연으로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조연의 역할 상 이왕이면 50대로서, 제주도 방언을 잘 구사하고, 비교적 물질을 익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참 우습게도 이 세 가지 조건이 나를 겨냥하는 듯 느껴졌다. 어쩌면 내 팔자 속에 ‘영화배우’라는 숙명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은 장난기도 발동했다.

 

사실 나는 시력이 나쁜 탓에 어려서부터 영화보기를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할 때도 슬그머니 극장을 빠져나왔다. 영화를 보고나면 눈이 시큰거리고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아, 지금의 서귀포 관광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개봉할 때는 얼마나 애가 타고 속이 상했던가? 우리의 생애 동안 겪어야 할 고통에 총량이 있고, 기쁨도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어쩜 그동안 관객으로서 누리지 못한 영화에의 아픔을 배우가 되어 한꺼번에 풀어보라는 하늘의 뜻인지도. ‘엄마는 50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연극처럼, 나도 50 줄에서 인생의 새로운 바다를 목도하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 얼토당토않은 기대를 품고 도전한 영화배우 선발시험에서 의외의 행운이 나에게 떨어졌다. 그것은 순전히 천우신조였다. 그야말로 하늘의 도우심. 그렇다! 운명적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뜻밖의 사건이었다.

 

만약 그 면접장에 감독이 직접 들어와서 지원자들을 일일이 인터뷰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애초에 나로부터는 시선을 돌리고 말았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시라, 도수 있는 안경을 끼고서 멀뚱거리는 해녀를. 그러나 감독 대신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도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지원자들을 일대일로 찍지 않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모여 앉아 환담을 나누라고 할 때부터 여신은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우리는 해녀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물질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인턴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제주말로 마음껏 수다를 떨었다. 그러한 우리들을 카메라는 이모저모 다각도로 마음껏 찍어댔다.

 

마지막으로 영화사측 조감독이 ‘만약에 조연으로 뽑힌다면 영화 찍기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지원자들은 오전만 된다, 오후만 가능하다, 주말은 힘들다, 격일제라야 한다, 일정표를 봐야 한다는 등 각자의 형편들을 털어놓았다.

 

그 순간 반장의식이 발동한 내가 불쑥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여러분, 우리 중에 누가 되더라도 영화사측 스케쥴에 맞추기로 합시다. 모처럼 우리 제주해녀를 널리 알리는 기회인데다 해녀학교도 적극 홍보된다고 하니, 해녀학교 출신답게 주연을 빛내며 조연으로 헌신합시다”라고.

 

바로 이 마지막 발언이 가산점을 얻었을까? 어쨌든 나는 제주도가 낳은 불멸의 영화감독, 오멸 선생의 야심작인 ‘인어전설(가제)’에 배우로 출연하게 되었다.

 

나의 역할은 ‘춘자어멍’이었다. 전문배우인 문희경이 주연으로서 옥자 역을 하고, 공동 주연의 비중으로 유명배우인 전해빈이 영주 역을 맡았다. 옥자는 바다횟집을 운영하면서 억척스레 물질을 해내고 해녀들을 대표해서 회장직을 수행하는 전형적인 상군해녀다. 영주는 수중발레 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 아쿠아리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쫓겨나 제주로 찾아들어온 장래의 제주해녀다.

 

춘자어멍은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태풍으로 사별한 후 모텔을 운영하면서 물질로 살아가는 옥자의 선배해녀다. 그녀에게는 서투른 물질연습으로 바닷가를 전전하는 ‘춘자’란 딸이 있다. 스무 살의 춘자는 엄마처럼 해녀가 되어서 바다 속 구석구석을 누비며 아빠를 찾아보고 싶은 꿈을 꾼다. 이 영화는 옥자의 좌충우돌 가운데 영주와 춘자 모두 해녀가 되어서 바다로 함께 나가는 해피앤딩으로 끝맺는다.

 

영화를 찍는 동안 제주 전역의 바닷가를 돌면서 제주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서 제주도를 일주한 경험이 있지만, 사실은 혼자서 하루 12시간씩 페달을 밟느라 바다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성산포에서 가까운 김녕리의 쪽빛바다, 서귀포 중심에 있는 외돌개의 황우지 절경, 그리고 우리나라 100대 미포인 보목포구에서 카메라가 가장 분주하게 움직였다.

 

제주도가 달리 보물섬이 아니었다. 섬 전역이 보석처럼 영롱한 해안으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왕관처럼 빛나고 있었다. 어디가 더 예쁘고 덜 예쁜 게 아니라 모두가 다르게 다 예쁜 거였다. 내가 사는 고장에 이런 비경들이 있다니, ‘과연 탐나는 도다’ 싶은 감탄과 경이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오, 신비로운 섬, 아름다운 제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내가 해녀학교 인턴십을 한 보목동의 해녀양식장에서 물질 장면을 가장 많이 찍게 된 사실이었다. 집 앞에 있는 해녀불턱에서 딸에게 ‘물질은 절대 안된다’며 억척스런 해녀의 일생을 반추하는 장면에서는 엄숙한 슬픔이 복받치기도 하였다.

 

그런 나에게 춘자는, 자기도 엄마와 함께 물질을 하면서 바다에서 아빠를 만나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나, 춘자어멍은 인생의 무게를 태왁에 싣고서 ‘호이 호오이’ 숨비소리에 한을 토하며 자식을 위해 살아 온 전형적인 제주해녀였다. 내가 왜 목숨 걸고 이 물질을 해야 하는지, 영화 속 춘자어멍은 말없이 온 몸으로 제주해녀를 대변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태왁을 어루만지고 물질도구를 손질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 그 바다에 남편이 있고, 자기의 운명이 있고, 딸의 미래가 있었다. 바다는 그녀의 전부, 인생 그 자체였다.

 

어쩌면 나의 해녀학교와 영화 출연도 내 삶의 숙명이 아닌가 싶은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자기가 사는 집 앞에서 영화를 찍는 게 그리 쉽게 생길 수 있는 사건이 아니잖은가? 하기야 보목동 섶섬 앞바다는 소설가 황순원이 1956년에 쓴 소설, ‘비바리’의 배경이 되었을 만큼 제주적인 곳이긴 하다.

 

이 소설은 1973년, 박호태 감독에 의해 영화로 개봉되었다. 이중섭 화백도 서귀포에 머무는 동안 바로 이 섬을 배경으로 해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어쩌면 시대와 장소는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인생극장의 배경이 아닐까?

 

언젠가 개봉될 이 영화를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내가 영화배우를 다 해보다니..., 순전히 해녀학교 덕분이다. 내 인생에 해녀학교가 들어오면서 생긴 뜻밖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