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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상품경제화와 지급화 과정 …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갖춰 급격히 성장

 

일제강점기 초기 제주도의 공업은 유치한 수준, 단계로 제주도의 자원, 즉 자연환경을 이용한 약간의 자원을 가공하는 수공업 제품들 예를 들면, 죽제품, 조선모자, 탕건, 양태 등이 주를 이루었고 이외에 주로 자급적 성격을 지닌 약간의 면직물 제품이 존재했었다(高禎鍾, 「濟州島便覽」, 1930).

 

제주 지역에서 가장 특징 있는 민속공예는 말총으로 만드는 관모공예로,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갓공예이다. 이 밖에 조선 시대부터 병사의 군모인 털벙것(털벌립), 패랭이(대패랭이), 정동벌립(정당벌립)이 활발하게 만들어져 진상품으로 납품되었다. 그러나 단발령 이후 제주지역 관물공업, 관모공예는 급격히 쇠퇴해 갔다.갓은 모자 부분과 차양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갓의 모자 부분(총모자라고 한다)과 탕건, 망건을 짰다. 탕건은 선비들이 집에 있을 때 머리에 쓰는 모자이며, 망건은 상투를 틀기 위해 머리를 빗어 올리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두르는 넓적한 띠이다. 갓의 차양은 갓양태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양태라고 부른다. 총모자와 양태의 수요는 일제강점기에 주춤했다가 해방 후 급격히 쇠퇴하였다.

 

상공업(商工業)도 물론 원시적 형태(勿論 原始的 形態)를 버서 나지 못하엿나니 그것은 그들의 자연경제(自然經濟)의 유통공급(流通供給)에 불과(不過)하며 그들의 생활(生活)에 필요(必要)한 옹(甕), 서(鋤), 마포(麻布), 죽롱(竹籠), 즐(櫛), 관물 등(冠物等)의 가내수공업품(家內手工業品)을 생산(生産)할 뿐으로 그것을 시장(市場)에서 혹(或)은 행상(行商)으로서 서로 취인(取引)할 뿐이다.(동아일보 1937.8.31.)

 

일제강점기 초기 제주도 가내공업은 전통적인 품목으로 방직물과 죽제품, 조선인모자, 탕건, 양태 등이 주를 이루었고, 이외에 일본인들의 제주도 진출로 제주도연안에서 잡힌 수산물들을 이용한 수산물통조림, 패각류를 이용한 단추 제조 등이 존재했다.

일제강점기 초기 이출품목에는 전통적인 수공업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립자(笠子), 이외에 마피(馬皮), 우피(牛皮) 등으로 제품의 다양성이나 규모 면에서 미약하다.

 

제주(濟州)는 사방(四方)이 해안(海岸)인 지리적(地理的)관계(關係)로 보아 수산업(水産業)이 가장 적당(適當)하고 둘재 초원(草原)이 광대(廣大)하니 목축업(牧畜業)이 발전(發展)할수잇다고 생각함니다 그리고 또한 재래(在來)에 잇서서 제주(濟州)의 경제계(經濟界)를 만히 완화(緩和)시키든 부녀(婦女)의 가정부업(家庭副業)인 관물제조업(官物製造業)이 불소(不少)한 타격을 밧고 잇스니 그 대(代)로 다른 부업(副業)을 장려(獎勵)하얏스면 조켓습니다.

 

홍순(洪淳) 관물업(官物業) 대신(代身) 직조업(織造業)을장려(獎勵)하는 것이 가장 적당(適當)하다고 생각함니다 경기도(京畿道) 강화(江華)에서는 조합(組合)을 조직(組織)하야 장려(獎勵)한 결과(結果) 일반주민(一般住民)의 경제(經制)가 대단(大端)히 풍부(豐富)하다고 함니다 반드시 어떤 부업(副業)하나를 연구(硏究)하야 제주경제(濟州經濟)를 윤택케 하는 것이 당면(當面)의 문제(問題)일줄 밋슴니다(동아일보 1931년 1월 25일)

 

제주도 가내공업이 확연한 변화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에 와서 이루어진다. 1930년대 제주도 가내공업의 변화 중 흥미 있는 것은 수산물 가공품 이외에 양조업과 누룩, 양말, 옥도 등 이었는데 이 시기에 오면 제품명이 다양해지고 규모 면에서도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되는데, 상품경제화와 자급화 과정이다. 이 시기 어느 정도 안정적 생산기반을 갖는 수산물 가공업 이외에 옥도나 동식물기름 등과 같은 화학제품이 등장한다. 이처럼 제품의 다양화와 특히 자급화 제품생산의 급격한 성장은 당시 제주경제와 제주도민에 있어 상징적 의미가 있다. 즉, 생산의 참여나 이를 통한 소득 창출 면에서 제주도민들의 의지와 영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전에 비해 수산물가공뿐 아니라 농축산물가공업이 나타났다.

 

소고기나 완두콩 통조림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1930년대에 가서도 여전한 성장세를 유지한다. 특히 일본의 군수제품화가 되면서 규모 면에서 높은 성장을 유지한다. 이외의 제품들은, 물론 1920년대에 비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다 하더라도 조제품인 옹기, 기와 쟁기 및 가정 공업품인 면포(연간 3만7천척, 가격은 8만3천원), 죽세공(연간 3만4천개, 가격2만7천원), 갓(8만7천개, 가격7만5천원) 양태(17만근, 가격 4만4천원)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1930년대에 와서 비로소 양말, 어패류 및 축우를 원료로 하는 통조림제조, 해조류를 원료로 하는 옥도 제조, 조개껍질을 원료로 하는 단추제조, 도내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는 양조업, 이의 원료가 되는 누룩 생산이 활발해 졌다.

 

양말공장은 1930년대에 와서 소규모 기계공장으로 자리 잡았고, 통조림 공장은 1930년대 초 도내 16개가 있었다. 옥도공장은 감태, 말(馬尾草)을 태운 재를 화학적 공정에 따라 가공한 것으로 원료의 공급제약으로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해방 이후까지 꾸준히 생산되었던 제품이다. 모조 진주공장은 이른바 유리구슬 제조공장으로 전적으로 일본수출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제주경제에 있어서 별 의미가 없다.

 

한편 일본에 돈 벌러 다녀온 직공이 일본인 자본가의 도움으로 원료인 유리막대를 일본에서 수입하여 다시 이를 가공 수출하는 일종의 가공공업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주 부분적이었고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누룩공업은 양조업원료인 누룩을 제조하는 것으로 도내소비용인 양조업의 발달과 함께 농촌 부업적 성격을 띠며 급속히 증가하였다.

 

면직물 생산은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농촌의 면직물업은 주로 자가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영세한 농가부업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며, 기술적으로도 전래의 기구에 의한 극히 낮은 생산력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연경제의 잔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 특수한 역사적 조건을 배경으로 한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제주농가의 경제적 행위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면, 1930년에 들어오면서 제주도의 가내공업은 이분화과정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다소 진전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품목에 따라 일면 퇴보, 일면 진전의 두 경향이 동시에 나타난다.

 

당시 진보의 경향을 보이던 품목은 양말, 관힐(罐詰), 패물(貝物), 곡자, 옥도, 양조, 조면(繰綿)공장 이고 퇴보적인 경향을 보이는 품목은 양태, 망건, 탕건, 모자 등이다. 양말이나 양조 등의 품목은 자급적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품목으로 수입대체품목으로 도내소비의 증가에 기인하여 생산이 증가하던 품목이던데 반해 양태, 망건 등과 같은 전통적 수공업은 육지부의 소비패턴의 변화로 인해 반출량이 줄어든 탓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화되어가던 제품들을 몇 가지로 분류하면, 우선 전통적으로 가내수공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던 각종 방직물, 양태, 탕건 등과 같은 관물, 수산물을 가공한 제품 등이 있다. 수입 대체목 혹은 도내 자급화 경향을 보여주는 양말, 양화, 양복, 농기구, 이외에 과자, 청량음료는 도내 소비 행태의 변화에 따른 일용품으로 제품생산의 다양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제품은 일종의 화학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기름이다. 주로 동식물기름인데 이 역시 당시 소비의 변화추세에 맞추어 생산된 제품이다. 화학공업의 경우, 육지부에서는 근대적 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질 유지와 동물질 비료의 성장에 의해 전체 화학공업의 성장이 이루어 졌다. 그것은 단순히 양적인 성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호당 생산액의 증가를 동반한 성장이었다. 반면 식물질 유지와 식물질 비료는 지극히 낮은 호당 생산액을 보이고 있어, 자급적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제품들 중에서 도외 반출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또 육지부에 경쟁력이 있었던 제품은 그리 많지 않다. 옥도, 조선관물, 각종 면포, 정도이고 새로운 것으로 염화가리가 주목된다. 그러나 이들 제품 모두 타 이출품 즉 농산물이나 농산물 가공제품에 비하면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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