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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창가에서] 불평등을 평등으로 이끄는 장애인 건강권

우리 병원에 가끔 오시는 장애인 김씨가 있다. 그는 45세 정도의 남자 분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오시는데 전자차트에 이름이 뜨면 나는 자연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김씨를 안으로 들어오게 도우면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셨어요? 전에 장염 기운은 좀 좋아지셨나요?”
“아, 예...어...으... 좋...으아... 즈...었..어...요...오...”

 

뇌성마비를 가진 김씨는 내게 대답을 하면서도 숙달된 기계 작동으로 앞, 뒤, 좌, 우 휠체어를 돌리며 좁은 진료실에서 공간을 확보한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감...기... 여...얼... 마...니...나...아...아...었...”

 

김씨는 자기 증상 표현을 다하지 않는다. 다 말하려고 하면 힘도 들지만 의사가 알아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중요 포인트만 말해도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나는 대강 그 정도만 듣고 일단 청진기를 들고 진찰을 시작한다. 목이 부었나, 내부 장기는 괜찮은가 살핀 다음 설명을 해준다.

 

“냉방병으로 생긴 몸살 감기 같아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추울 거예요. 요즘 다들 이렇게 오니까 집에서 너무 차게 지내지 마세요. 약은 3일이면 충분하니까 잘 드세요.”

 

질문과 대답이 원활하지 못하니까 내가 일방으로 설명을 일사천리로 하면서 처방을 하고 보낸다. 다시 김씨는 휠체어를 돌려서 나가고 대기실 의자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1층으로 힘겹게 내려갈 것이다. 여기 오기까지는 늘 그렇듯이 장애인콜센터를 이용해서 전용택시를 1시간 넘게 집에서 기다린 후 타고 왔을 텐데, 갈 때는 그 택시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의사들의 장애인 감수성

 

김씨뿐만 아니라 병원에 오는 중증장애인들을 대하다보면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다른 장애인들은 모르겠지만 대화가 쉽지 않은 장애인들, 뇌성마비나 청각장애인과 같은 경우에 충분한 문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도 있지만 시간을 들여도 필요한 만큼 정보를 얻거나 건강에 관한 교육 내용들을 전달해 주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의사들은 나처럼 간단한 진찰만 하고 처방을 내리고 만다.

 

진료만 그럴까? 또 거의 모든 동네의원들이 거의 2층 이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1층 위치보다 건물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거동 장애를 가진 분들이 접근하기 힘든 구조에, 진료실로 들어가기 또한 너무 힘든 과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화장실에 장애인 전용 변기나 세면대를 갖춘 곳은 얼마나 있을까?

 

흔히 의사나 간호사들은 의학을 배웠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잘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서 거의 많은 의사들은 장애인을 잘 모른다. 장애와 질병은 잘 알겠지만 장애인들의 사회 문제점, 복지, 건강상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보다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전국에 등록장애인들이 250만 명 정도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며, 장애인들이 병원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지, 그래서 차라리 오지 않고 아픈 걸 참거나 약국에서 대강 약을 사 먹어버리고 있다는 현실을 모른다. 여성 장애인들은 아기를 각조 싶어도 마땅한 산부인과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이 없어서 차라리 불임 수술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발달장애 아이가 충치가 있어도 치과 진료 받기가 너무 힘들어 그냥 썩어가는 채로 방치해버리고 있다는 현실이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감수성이란 얼마나 느끼느냐, 하는 것인데 장애 감수성이란 얼마나 잘 이해하고 느끼느냐, 라고 할 수 있겠다. 장애인들의 건강 문제와 해결 방법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감수성이 높아야 할 의료인들이 생각보다 낮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 대해서 어떤 방향과 정책을 가져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장애인건강권법 시행과 장애인주치의제도

 

보건복지부에서 2015년 12월에 마련된 장애인건강권법(⌜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올해 말부터 시행이 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 중이라고 얼마 전 발표를 했다. 법률에 의해 장애인들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은 건강검진, 장애인주치의제도, 각종 장애인 대상 보건의료 활동들이 있을 예정이라고 덧붙이는 내용을 언론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주치의제도는 충분한 준비와 소요되는 재정 마련, 의료인들에 대한 교육 여건을 갖춘다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우리는 아무 병의원을 찾아가는데 익숙해있어서 그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치의제도의 최대 장점은 나를 잘 아는 의사가 주로 자신의 건강을 맡아서 돌봐주는 것을 말한다. 오래도록 봐왔기 때문에 아픈 곳이 있어서 찾아가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와 진료 기록을 보면서 진찰하게 되어 더 세밀하고 오류가 없이 진행할 수가 있다. 이제까지 그 제도를 못 시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부나 정치인의 무관심과 재정 마련 불충분, 의사들의 이해 부족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아쉽게도 전체 국민이 아닌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하지만 그나마 진심으로 반길 일이다. 한국의 장애인 수는 최근 몇 년간 변하지 않는데 대략 250만 명(제주도는 전국의 1.3%인 3,2000여 명) 정도이다. 그 중 중증장애인의 수는 2015년 통계를 보면 1/3 정도인 81만 5천 명(제주도는 41%인 13,00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중증장애인 비율은 제주도의 경우 전국 평균인 38.8%에 비해 높으며, 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인 경우는 전국 평균 8.5%인 것에 비해 제주도는 10%로 높은 것으로 나온다. 장애인이 가지는 문제들이야 여기에서 일일이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경제활동 참여, 사회 활동에서의 어려움 등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진료 현장에서 장애인을 대할 때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때의 문제점들이 가장 심각하게 다가온다.

 

1981년 장애인복지법(당시에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처음 제정된 후 35년 넘는 동안 발전을 거듭하면서 장애인들의 권익과 복지 향상을 위해 기여해 왔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건강문제에 대한 통계, 구조 개선, 의료보장 내용은 없었다. 이번에 장애인건강권법이 마련되면서 비로소 장애인들에게 양 날개를 붙여준 셈이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작의 첫 디딤돌을 놓았으니 거기에서부터 흔들리지 않는 다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장애인건강권법과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는 장애인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법률에도 명시했듯이 지금까지처럼 건강에 대한 불평등의 내용을 평등하게 하기 위한 정책과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장애인들 대상으로 여러 통계관리, 접근성의 개선이라든지 찾아가는 진료, 포괄적 건강관리나 더 나아진 재활운동 등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국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어서 제주도를 비롯한 각 지자체의 관심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참에 나도 장애인 감수성 교육부터 먼저 공부를 해야겠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란 책을 펴내는 등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다룬 다수의 논문을 낸 보건정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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