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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전 세계 여성들에게 가능성의 본보기 … 경영세계의 근로 모델

 

제주해녀의 삶과 정신은 특히 여성 지도자들에게 크나큰 도전이 되었다. 2012년 5월, 제주를 방문한 울산시 여성정책위원들을 대상으로 ‘제주해녀의 특성에 내재된 여성정책의 과제’를 주제로 특강을 하게 되면서부터 제주지역 여성단체와 경영인, 기업계와 경제단체, 대학생, 북한이탈주민 등에게 제주해녀를 소개할 기회들이 생겼다.

 

이들과 강의를 통해 가슴으로 공감하게 된 것은 해녀들의 물질에 대해 체휼하고 공감하는 정도가 남성들과 색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제주해녀의 억척스러움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 더 강하게 반응을 보였다. 현상으로 드러난 물질의 상황이나 결과보다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여성들의 처지에 더 애가 쓰이는 눈치였다.

 

가장 강렬한 반응은 해녀들의 출산 문화에서 몇 차례의 놀라움과 충격으로 나타났다. 우선 제주인의 생활문화를 대변하는 속담 중에서 ‘똘 나민 도새기 잡앙 잔치허곡, 아들 나민 조름팍 찬다(딸 낳으면 돼지 잡아서 잔치하고, 아들 나면 엉덩이를 찬다)’는 말에서 모두들 눈이 뚱그레졌다.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아들선호사상은 여성들 내부에서도 신앙과 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여져 온 가치가 아닌가? 그런데 ‘삼다도라 제주도는 여자의 섬이라서, 역시 딸이 우대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놀람과 감동이 솟구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딸이 해녀가 될 살림밑천이라서 환영받는다는 속사정을 듣고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실망스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그 딸들이 셋쯤 되면 한 해에 밭을 하나씩 살 정도로 해녀들의 물질이 가정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역사적 기록 앞에서 장내가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해녀의 출산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들으면서는 얼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물질을 하다가 산통이 오면 태왁에 몸을 기대고 심호흡을 하면서 뭍으로 나오는 다급함, 집으로 가는 도중에 혹여 아이가 길바닥에 떨어질까 봐 ‘조금만 참았다 나오라’면서 달래는 간절함, 불행히도 길 위로 아이가 떨어져 나오면 길동이로 불리는 안타까움, 배를 타고 물질을 나갔다가 배에서 낳게 되면 배선이가 되는 속사정 등은 얼마나 충격적인 생활상인지가 여성 지도자들의 얼굴에 그대로 투영되어 아른거렸다.

 

이윽고 출산을 완수한 해녀가 휘청거리는 허리를 끈으로 동이고서 사흘만에 다시 바다로 들어가 물질을 시작하면, 아기는 젖 대신 것(죽과 같은 이유식)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모든 여성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윽고 ‘해녀 아기는 이레 만에 것 먹인다’는 속담에 이르러서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침도 굶은 채 정신없이 물질하는 동안에 젖이 퉁퉁 불러오면, 해녀는 그 젖을 못 먹어서 우는 아기 생각으로 마음이 비감해진다. 하지만 그 해녀의 심정보다 정작 더 애가 타는 건, 우는 아기를 달래야 하는 현장의 아기업개다. 아기업개는 해녀가 물에서 나오자마자 울다 지쳐서 그만 축 늘어져버린 아기를 곧바로 밀어 넣듯이 안긴다.

 

그러면 엄마를 만난 아기가 급하게 젖을 빨다가 숨이 막혀서 헐떡거리며 운다. 우는 아기를 달래며 엄마도 울고 아기업개도 울면, 장내는 한순간 눈물의 분위기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아기를 빨리 재우기 위해 생겨난 애기구덕이 혜성같이 등장하면 청중들의 기분은 다시 감탄으로 전환된다. 사실 애기구덕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육아용품이다. 며느리는 구덕을 흔들며 부르는 ‘웡이자랑’이란 자장가 속에다 시집살이의 애환을 담아서 시름을 달랜다. 이 서러운 해녀의 육아 환경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기야 50∼60년대의 제주섬은 북한땅보다 더 황폐하고 고달픈 삶터가 아니었던가? 알고 보면 북한 여성들과 제주여성들은 은근히 닮은 점이 많다. 이를테면 생활력이 억척스럽다, 가장의식으로 뭉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우대한다는 점 등이 공통분모다. 반드시 해녀에게만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 여인들은 한여름의 뙤약볕에서 콩밭을 맬 때, 밭 중간에다가 나무기둥을 세우고 헝겊을 덮어서 그늘케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애기구덕을 놓아두고 그 안에다 젖먹이를 뉘고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란히 앉아서 김을 맨다. 아기가 깨서 울면 얼른 달려가서 젖을 주고, 곧바로 김매던 자리로 복귀하기 위한 제주여인들의 작업관리 방식이다. 어쩌면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데릭 테일러(F. Taylor)가 보더라도 자신이 고안한 과학적 관리법의 시간관리 및 동작관리보다 한 발 더 앞선 기법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해녀들은 골체(삼태기)에 젖먹이를 뉘여 놓거나 좀 큰 아기는 바닷가 바위에다 끈으로 묶어 놓고 물에 드는 방식으로 작업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였다. 아니, 효율성을 넘어서 불가능한 미션(Mission Impossible)을 돌파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불가피한 대응조치였으리라.

 

그러나 놀라움의 절정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제주도 여인들이 치르는 남편의 장례식은 모든 여성들의 얼굴을 비장한 색으로 물들여버린다. 장례의 절차가 거의 끝나고 봉분이 완성될 즈음, 장구를 맨 여성이 ‘얼씨구’ 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장구채를 치면, 봉분 위에 서 있는 남성이 발로 다지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신호로 조문객인 여성들이 일제히 타령을 부르며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운다. 상주로 하여금 저 세상으로 간 남편에 대한 슬픔에서 벗어나 어서 이 세상 삶으로 귀환토록 촉구하는 의식이다. 아, 제주 여인들에게는 슬픔을 삭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노래와 춤으로 울음과 한을 급속히 날려 보낸 후 어서 속히 일터로 나가 땀 흘려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자는 취지다. ‘해녀’라 쓰고 ‘어머니’라 읽는 제주인의 삶에서 보면, 이 모든 어머니들의 생활풍습이 해녀들의 것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해녀들이 일제시대에는 항일 투쟁에 앞장서서 일본과 싸우고, 4.3사건 때는 여정이 되어서 마을을 지켰으며, 6.25 때는 해병대로 참전해서 북한과 싸웠다는 대목에 이르면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감탄의 도가니가 된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살신성인의 주인정신이요, 진정한 가장의식이며, 여성 본연의 모성의식인 셈이다. 이 모성을 바탕으로 한 해녀들의 정신과 생활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는 리더십의 표상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바로 해녀들의 바당밭이 리더십의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제주해녀의 모성적 리더십은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아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힘들며 고용이 불안한 사회에서는 남성들과 기업인들에게도 ‘주인 정신으로 일하기’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요컨대 제주해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경영세계의 근로 모델이요, 리더십의 화두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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