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56)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복진(福晉)은 만주어 ‘푸진(Fujin)’의 음역으로 처, 귀부인이란 뜻이다. 청(淸)대 만주족의 친왕(親王), 군왕(郡王), 친왕세자(親王世子) 등의 정실부인을 가리킨다. 대복진(大福晉, ?-1626)은 나라(納喇) 씨로 우라(烏喇) 버일러(dorobeile, 패륵貝勒 : 귀족, 왕 혹은 제후) 만타이(萬泰)의 딸로 누르하치의 대비(大妃)다. 아지거(Ajige, 아제격阿濟格), 도르곤(Dorgon, 다이곤多爾袞), 도도(Dodo, 다탁多鐸) 세 아들을 낳았다. 누르하치가 죽자 함께 순장(殉葬)됐다. 도르곤이 섭정할 때 익호를 ‘효열무황후(孝烈武皇后)’라 칭하고 태묘에 모셨다. 도르곤이 죄를 짓자 익호를 폐지하고 묘에서 빼냈다.

 

고대 황실에서 생활한 여인들은 우리들의 상상처럼 그렇게 아무 걱정이 없거나 자신의 뜻대로 아늑한 삶을 누리거나 하지 못했다. 예로부터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를 옆에 두는 일과 같다고 하여 ‘반군여반호(伴君如伴虎)’라 했으니, 늘 역린을 조심해야 했다. 영욕의 부침은 일순간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화를 당할지 몰랐다. 누르하치가 죽고 열여덟 시간 후 그가 가장 총애하던 대복진(대비大妃) 아바하이(Abahai, 아파해阿巴亥)는 4대 버일러들에 의해 산채로 순장됐다. 이유는 누르하치가 순장하라고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대복진은 젊고 아름다우나 질투가 심해 칸(Kahn)을 불쾌하게 했으니 만약 남겨 둔다면 나라를 혼란케 할 근원이 될 수 있음으로 반드시 순장하라고 했다고.

 

당시의 관습에 처를 남편과 순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했다. 하나는 처를 사랑했었고 또 하나는 어린 아들이 없어야 했다. 아바하이는 앞의 조건에는 부합하나 그녀에게는 양육해야 할 어린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칸이 그런 유언을 남겼을 것이라 믿지 못했다. 그래서 도리를 따지며 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4대 버일러들은 그녀에게 칸의 유언이니 자신들도 불인견이요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고 권했다. 그리고 순장 의식이 모두 준비가 됐다고 했다. 규율에 따르면 순장자는 화려하고 장중한 차림을 하고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하배(下拜)하고 활시위를 못에 걸어 교살했다. 만약 순장자가 순장에 응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목을 졸라 죽였다.

 

그러니 아바하이는 순장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 예복으로 갈아입고 주보 등 장식물로 치장했다. 규칙에 따르면 피순장자는 울어서는 안 되지만 그녀는 여러 버일러들에게 어린 아들 도르곤과 도도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래 그녀는 그럴싸하게 “나는 12살부터 칸을 모시며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26년 동안 먹었다. 칸의 은혜가 깊으니 난 그분을 떠날 수 없다. 그러니 그분을 쫓아 지하로 내려간다”고 했다.

 

살아있는 대복진의 순장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누르하치의 여러 비(妃), 예를 들어 측비(側妃 청 왕실의 지위가 원비元妃 대비大妃의 아래, 서비庶妃의 위) 보르지진(Bor JiJin) 씨, 일건조로(Ilgenjolo) 씨, 예혈나라(YehielNara) 씨, 나타나라(HattaNala) 씨, 그리고 서비(庶妃) 자오지아(ZhaoJia) 씨, 니우구루(NiuGulu) 씨, 가우야조로(Gamuyajolo) 씨, 시리조로(Silijolo) 씨 등은 모두 천수를 누렸다. 홍타이지(Hungtaiji 황태극皇太極) 때에도 중궁황후나 인지궁(麟趾宮) 귀비, 연경궁(衍慶宮) 숙비(淑妃), 영복궁(永福宮) 장비(莊妃), 그리고 명호가 없는 서비 모두 선제를 따라 순장되지는 않았다.

 

순치(順治) 황제가 죽었을 때는 정비(貞妃) 한 사람이 순장됐지만 서비였다. 당시 문헌 기록을 보면 정비의 순장은 황실의 뜻이 아니라 청궁(淸宮)의 적막한 세월을 참고 견디지 못해 자원했다고 돼 있다. 그런 면에서 아바하이의 순장과는 다르다. 아바하이는 지위가 높은 국모(國母)였고 미성년인 아들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죄과를 제소하고 난 후 “선제의 유언”이라 선포했고 “쫓으려 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돼 있다. 강제로 순장됐으니 살아 있는 대복진의 순장에는 분명 다른 음모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그보다 몇 년 전 대복진은 몇 차례 풍파를 겪었다. 누르하치의 서비 다이인차(Daiincha) 씨가 누르하치에게 “대복진이 두 차례나 첫째 버일러(다이샨)에게 맛있는 요리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첫째 버일러는 받아먹었습니다. 한 번은 넷째 버일러(홍타이지)에게 보냈지만 넷째 버일러는 받아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복진은 하루 두세 번 첫째 버일러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무슨 일인가를 상의하려고 했습니다. 대복진 자신도 두세 번 심야에 출궁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일러바쳤다. 그러한 일들에 대해 누르하치가 불쾌하게 여겼지만 침착하게 처리했다.

 

 

 

 

여진(女眞)은 몽골(蒙古)족과 마찬가지로 부친이 죽으면 아들이 서모(庶母)를 취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풍습이 있었다. 누르하치 자신도 죽은 족형에게서 형수 곤다이(Gundei 곤대衮代)를 이어받아 대복진으로 삼았고 그 스스로도 공개적으로 자신이 죽으면 다이샨으로 하여금 아바하이를 계속 이어받도록 하겠다고 표명했다. 그때, 아바하이는 미래 지위에 대해 생각했다. 군주가 될 다이샨에게 자신이 흠모의 정을 표현하면서 미래에 대비하고자 했다. 정리에 맞는 이야기다.

 

알아둬야 할 것은 누르하치가 이미 화갑(花甲)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반면 아바하이는 30세 성년이 아니던가. 여인의 자태가 가장 무르익을 나이임엔. 늙은이가 젊은 처를 둔다는 것은 백발이 홍안을 끼고 있는 것이니. 다른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도둑을 잡으려면 훔친 물건을 찾아야 하고 간통범을 잡으려면 둘 다 잡아야 한다지 않았던가. 간통의 증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르하치는 대복진의 죽을죄를 사면하고 처를 내버렸다.

 

여기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무 지위도 갖지 못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미천한 서비(庶妃)가 어떻게 칸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고 아들 셋을 둔 대복진을 감히 고발할 수 있었을까? 팔기군 중 2기를 이끌고 참정하고 있는 ‘4대 버일러’ 중 첫째이며 칸이 태자로 앉히려고 하는 첫째 버일러 다이샨을 감히 연루시킬 수 있는가? 아이신기오로(AisinGioro 애신각라愛新覺羅) 씨족의 권력투쟁에 따른 것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칸이 이미 늙었으니 누가 계승할 것인가? 아들들이 암중 투쟁의 중심이 돼 있었다.

 

누르하치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팔기(八旗)제를 실행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팔가(八家)’를 정해 한 물건을 얻더라도 여덟 가가 같이 나눠야 했다. 군사상 전투를 벌일 때 팔기의 기주(旗主)가 최고사령관이 됐다. 버일러들은 자신이 통솔하는 수하들이 있었고 전투에 임했을 때는 연합해 작전을 펼쳤다. 이런 형세는 정치, 경제, 그리고 군사상 상당한 집중력을 거둘 수 있었다.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골고루 펼칠 수 있는 집단통치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칸의 계승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러 왕자들이 권력투쟁을 불러오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당시 팔기 중 홍타이지는 2황기(黃旗)를, 다이샨은 정홍기(正紅旗)를, 아민(Amin 阿敏)은 양람기(鑲藍旗)를, 망굴타이(Manggūltai)는 정람기(正藍旗)를 장악하고 있었다. 나머지 양홍(鑲紅), 정백(正白)과 양백(鑲白) 3기의 기주는 아지거(Ajige), 도르곤과 도도가 장악하고 있었다. 아지거, 도르곤, 도도는 각각 19세, 12세와 10세 때 1기(旗)를 가지게 되면서 여러 형들과 권력을 다투는 기주가 됐다. 여러 형들은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전장을 누비면서 피로 얻은 기주의 자리였다. 그런데 어린 동생들은 모친의 총애아래 칸의 후사로 얻은 것이니 어느 누가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었겠는가?

 

 

 

 

아바하이의 세 아들 아지거, 도르곤, 도도가 장악하고 있는 힘은 이미 ‘4대 버일러’ 중의 하나의 역량을 넘어서 있었다. 만약 그들의 힘에 모친 아바하이의 국모라는 존엄이 더해진다면 5명의 기주 중 어느 누가 두렵지 않겠는가? 누가 또 감히 복종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아바하이는 팔기군과 대금(大金)의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팔왕(八王)에게는 국정을 논하는 균형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대금국과 그들 모두, 심지어 아바하이와 숙원 관계에 있는 홍타이지와 망굴타이에 대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모친을 없애면서 3명의 동복형제의 힘을 분산시켜 3명이 연합해 지대한 힘을 이룰 수 없도록 해야 했다. 만약 도르곤, 도도가 성년이 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들의 모친을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 대금 정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누르하치가 임종할 때 아바하이 혼자 지켜봤다는 점이다. 아바하이는 여러 황자들에게 누르하치 칸의 마지막 유언이라며 “도르곤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고 다이샨이 보정(輔政)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4대 버일러’들이 단호하게 반대한 것은 뻔하다. 그들에게도 근거가 있었다. 버일러들이 공동으로 국정을 논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칸이 생전에 반복적으로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서면으로 작성해 모든 버일러들에게 나눠 줬었기 때문이다. 서면으로 작성된 검은 글자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임종 시 유언을 들은 제3자가 없었다. 유언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칸이 그렇게 유언했다하더라도 죽기 전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한 말과 다름이 없으니 잘못된 명령으로 집행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이른바 ‘임종 유언’이라 표명했으니. 가족들끼리 권력 투쟁의 피비린내 속으로 휩싸이게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서로 불화하는 불씨를 남겼다. 일찍부터 그렇게 재앙의 불씨는 지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홍타이지의 지위와 명성이 점차 커지고 있던 터인데 어떻게 황위를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도르곤에게 넘길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대복진에게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그저 죽을 수밖에.

 

이런 상황을 분석해 보면 누르하치의 대복진을 산채로 순장하는 참극을 연출한 것은 ‘4대 버일러’들임을 알 수 있다. 누르하치의 유언에 따른 것은 확실할까? 아무튼 생모는 아닐 지라도 선왕의 대비를 순장시켰다는 것은 아이신기오로 가족 내의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황권투쟁이 내포돼 있음은 분명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만문원당(구만주당) 번역 연구가이신 길공구 선생이 다음과 같은 사실 확인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1620년 다이샨과의 암바 푸진(대부인)과의 부적절 관계는 도르곤의 친모 아바하이가 아니고 망고이태(망월타이, 망굴타이)의 친모 군다이입니다. 군다이가 당시 대복진(암바 푸진)이었고 군다이가 유폐된 후 친아들 망월타이에게 살해된 이후에 아바하이가 암바 푸진에 오르게 됩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