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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생각하는 사람이 터널 속에서 보는 세상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32) 극단적, 절망적으로 해석할 준비가 된 우울증
이범룡 원장  |  medre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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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18: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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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언제나 빨리 찾아오지요. 그 날이 내일이 될 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여기’ 삶이 황금보다도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라고 말하지요.

“살고 싶지 않아요.”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살을 생각한다고 짐작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라면 “야, 죽을 바엔 차라리...”로 시작되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실제 자살을 한 경우도 사후에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다른 모습의 삶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죽을 생각을 하냐고요.

‘터널 시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울병 환자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터널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볼 수 있는 풍경이 한정되지요. 터널 밖으로 나와야 전체풍경이 다 보이잖아요? 우울병 환자는 터널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방향과 풍경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진실의 한 부분일 겁니다. 문제는 오로지 그 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 사진에서 보이는 터널 밖 풍경은 아름답지만, 우울병 환자가 보는 풍경은 어둡고 끔찍하고 고통만이 영원히 가득한 모습입니다. 현재 그가 인식하는 세계의 전부지요.

   
▲ [구글]

P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죽을 바엔 차라리...’라는 조언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움은커녕 진료실에서조차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 더욱 절망할지 모릅니다. 오히려 자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고 언제나 빨리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P씨는 은연중에 자신과 똑같은 숙명을 가진 인간끼리의 대화라는 걸 깨닫고 위로를 받게 됩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고두고 이야기해 나갈 주제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터널 시야를 설명했습니다. 다른 경우도 많지만 특히 우울병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설명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중요한 문제들은 최대한 전체 풍경을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P씨는 생활에 중요한 결정들은 조금 뒤로 미루고 당장은 터널을 빠져나갈 동력과 시간을 얻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P씨는 그 중요한 결정에 죽음이 우선 포함된다는 암시를 받을 겁니다.

이제 우울병 치료제를 설명합니다. 우울병 치료제는 감기치료제처럼 오늘 먹고 내일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수면이나 식욕이 먼저 좋아지지만 어느 정도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이제 터널 시야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데는 보통 2,3주 걸립니다. ‘반드시’ 벗어납니다. 복용방법은 물론 흔한 부작용도 설명해야 합니다.

다른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근 우울병 치료제의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행여 나타난다고 해도 심각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일시적'입니다. 이 부분을 꼭 이야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혹시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환자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울병 환자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극단적이고 절망적으로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 이범룡 밝은정신과 원장.
P씨에게 약을 처방하고 다음 방문 날짜를 이야기 해 줬습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P씨에겐 원내처방을 하기 때문에 간호사는 다음 방문 날짜를 다시 이야기하고 약 봉투에도 또박또박 적어줄 겁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울병 환자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P씨에게 혹시 궁금한 게 있는지 물었습니다. 다음 P씨 의문에 안심이 되며 다음 방문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죽음을 이야기했던 P씨였기 때문입니다.

“이 약에 중독되지는 않나요?”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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