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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 아래의 피비린내, 추연의 죽음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55)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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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8  16: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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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추연Cuyen(저영褚英, 1579~1615)은 누르하치의 맏아들이다. 버일러Beile(패륵貝勒, 원래는 도로이버일러doroibeile, 다라패륵多羅貝勒)에 봉해졌고 ‘홍(洪)바투루(Baturu, 용맹)’라는 호를 내렸다. 전투에 용맹하게 임해 탁월한 공을 세워 아버지가 중용했다. 형제끼리 불목하면서 불경을 저지른 인물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떠벌리자 형제들에 의해 아버지에게 알려졌다. 누르하치는 대노해 그를 유폐시켰다. 만력 43년(1615) 유폐된 곳에서 죽었다.

추연은 용감하게 전투에 임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버지 누르하치가 여진족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는 대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후금(後金) 한국(汗國)을 건국하는데 탁월한 공헌을 한 공신으로 누르하치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추연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며 영웅의 틀을 잡아갈 때 누르하치는 그를 높은 담장 아래 유폐시켰다. 2년 후 사지로 몰아넣었는데 향년 36세였다. 누르하치는 왜 그렇게 유능한 조력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역사서에 명확한 기록이 없어 추연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다.

 
   
 

추연은 어릴 적부터 부친을 따라 곳곳으로 원정을 나갔다. 18세 때 전공을 쌓아 홍바투루라는 호를 받고 버일러에 봉해질 정도였다. 오랍(烏拉)부와의 전투 중 다이샨(Daišan, 대선代善)과 함께 사기를 북돋으며 용감하게 싸웠다. 수급 3000을 베고 말 5000필과 병기 3000을 획득하는 전공을 세우고 개선했다. 아버지 누르하치의 칭찬을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재차 알하투투먼(AlHatuTumen, 阿爾哈圖土門 : 광략廣略의 뜻으로 ‘용맹과 지혜’를 의미)으로 봉해졌다. 따라서 추연은 광략버일러라 불리기도 한다.

추연이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기도 했고 맏아들인 까닭에 만력 40년(1612) 반백이 된 누르하치는 그에게 집정하도록 했다. 그의 위신을 세워주고 능력을 개발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맏아들은 아버지를 실망시킨다. 추연의 가장 큰 단점은 도량은 작으면서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그에게 나눠준 부속, 국인, 목군, 재산이 적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그보다 어린 여러 형제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달라고 했다. 누르하치도 추연이 대권을 집정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적장자 계승이라는 원칙을 준수해 맏아들 추연에게 정치를 맡겼다. 그가 대권을 행사하면서 도량이 좁은 문제점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추연이 집정한 후에도 예전처럼 변함없이 편협했고 더 심술궂게 변해갔다. 4명의 동생(다이샨, 아민阿敏, 망굴타이(Manggūltai, 망고이태莽古爾泰), 홍타이지)에게 “형의 말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친형이 한 어떤 말도 아버지 칸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맹세를 하게 했다. 그리고 “나와 우호적이지 않은 형제나 나에게 좋지 않게 대하는 대신들은 내가 칸에 앉은 이후 모두 사형에 처할 것이다”라고 언명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끝내는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추연의 4형제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와 누르하치가 의지하는 5대신이 마침내 연합해 칸에게 폭로한다. 들춰내 알리면서 “칸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들의 목숨은 보존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말까지 전했다. 누르하치는 대노했다. 추연에게 “너는 어떻게 자신의 형제들과 네 아버지가 중용하는 5대신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말이냐? 내가 어떻게 네게 집정하도록 할 수 있더란 말이냐? 내가 전쟁을 못하고 국사를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늙기는 했으나 국가 대권을 넘긴 것은 아니다”라며 책망했다. 누르하치는 대중의 분로를 사고 집정의 재능이 없는 장자를 재심임할 방법이 없었다. 그해 가을 오랍(烏拉)을 정벌할 때 추연을 다이샨과 함께 남아 성을 지키게 했다. 이듬해 누르하치는 오랍 정벌에 친정했으나 추연을 참가시키지 않았다. 이때부터 추연은 군왕의 자격을 실질적으로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추연은 폭발했다. 부친에게서 훈계 받은 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고개를 숙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주의 글을 써서 부친과 여러 동생들, 5대신들을 저주했다. 저주문을 불사르며 하늘에 고하면서 자신의 증오를 쏟아 냈다. 그는 부친 누르하치가 오랍 친정에서 패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측근들을 동원해 부친의 대군이 패전하고 돌아올 때 성문을 닫아걸고 부친과 여러 동생들이 입성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측근들이 두려움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그 일에 참여했던 동료 한 명은 두려움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기도 했다. 다른 참여자들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솔직하게 누르하치에게 음모를 고백하기로 하고 스스로 추연의 죄를 전부 털어놨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누르하치는 다시 한 번 대노했다. 즉각 추연을 유폐시켰다. 고민에 빠졌다. 맏아들의 존재를 생각했다. 그의 존재는 국가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여러 아들들과 여러 대신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 분명했다. 추연이 죽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 판단했다. 마침내 1615년 8월 추연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해는 추연이 36세요, 칸은 57세였다.

이렇게 본다면 추연이 피살된 근본 원인은 부친인 누르하치의 권력과 지위를 위협해 스스로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간 것이니 누굴 탓하랴. 하지만 권력이 없었다면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추연의 죽음은 애석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건 알아야 한다, 상술한 추연의 죽음의 원인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야사에 근거한 것임을…….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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