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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제주목관아지와 향사당 등지 안내판에 적힌 별에 대한 이야기

 

제주에는 방성, 성주, 수성초당 등 하늘의 별과 관계한 어휘가 적지 않다. 특히 제주목관아지와 관덕정 그리고 향사당 등지를 거닐 적마다 도처 구석진 곳에 숨겨진 역사문화 안내판에서 별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읽으며, 새삼 제주는 별의 나라였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안내판에 적힌 내용들을 모아 소개한다.

 

칠성대: 주성 안에 있다. 삼성이 처음 나왔을 때 삼도를 나누어서 차지하였는데 북두칠성을 모방하여 대를 쌓고 나누어 거처하였기 때문에 칠성대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조) 칠성대는 탐라 시대부터 전해내려 온 최고의 유적으로 탐라사회의 결속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한 문화상징이었으며 탐라왕의 호칭인 성주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대는 북두칠성을 항로지표로 삼아 동아시아해를 누비며 주변국과의 교역을 통해 삶을 영위했던 해상왕국 탐라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탐라는 ‘별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제삼도인 천기성은 증보탐라지와 파한록에 따르면 외전동(로베로호텔과 재활의원 앞)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칠성단 월대 터: 탐라 도읍의 기점이 된 월대. 전설에 따르면 삼성이 탐라의 도읍을 정할 때 북두칠성의 별자리에 따라 칠성대를 쌓고 터전으로 삼았다. 그 터는 칠성로 3개소, 관덕로 1개소, 남문로 2개소 등이었다. 그 뒤 훼손되어 1736년(영조 12년) 김정 목사 때 보수정비, 일제 초까지 보존되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성주청지(星主廳址): 탐라국의 전통을 이어온 성주청(星主廳) 터. 제주도는 삼국시대에 탐라(耽羅)라는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통일신라 때부터 간섭을 받으면서 탐라의 왕후에게 성주(星主) 왕자(王子)의 봉작이 세습되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1403년(태종 3년) 성주제도가 폐지되어 조선시대에는 진무청(賑撫廳)으로 존속했다. 1910년 이곳에 제주우편수급소가 생기고 1927년 제주우편국 청사가 들어섰다.

 

 

 

제주 도처의 들판과 목초지에서 말들이 노니는 모습인 고수목마 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예전에 말을 키웠다는 고마장의 이름 을 딴 고마로 축제가 여러 해 전부터 열리고 있고, 2016년에는 김만일의 고향인 남원읍 의귀리에서는 제주의귀말축제가 처음으로 열렸다.

 

퇴임 후 나는 가시리의 갑마장 길과 몽골의 초원을 걷는 힐링의 시간도 더불어 가지려 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말 축제인 몽골의 나담(naadam) 축제에도 관심이 간다. 전국 최초로 선정된 말산업 특구인 제주에 어울리는 축제를 만들어가는 역할이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기도 하다.

 

2016년 나는 말들의 고장이었던 우도에 살고 있다. 1697년부터 1842년까지 150여 년 동안 우도에는 오로지 말들만 살았었다. 말로 가득했던 우도의 옛 풍광을 상상해 본다. 말을 돌보던 목자들은 하늘에서 방성을 보며 신세 한탄도 했으리라. 도시 하늘에서는 방성을 비롯한 여러 별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우도에서 보는 별빛이 너무 곱다. 저 별 중에는 방성도, 수성도, 덕성도 빛나고 있을 것이다.

 

아들과 나는 말띠 동갑으로 한 세대 차이다. 의식이 바뀌려면 한 세대인 30년이 더 걸린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의 시대여서 인지, 의식도 물질도 금세 바뀐다. 아들과 나는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세대차이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그 간극을 줄 일 수 있을까? 대개의 해결책은 조상들의 삶 속에 숨어있다. 과거에서 교훈을 배우는 민족은 흥하듯, 과거에서 배우려는 가문은 번창할 것이다.

 

‘거만한 부자는 3대 가지 못한다.’라는 선인들의 말씀 을 자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사족을 하나 더 붙이련다. 필자의 큰 딸이 경주 김씨 청년과 2016년 11월 결혼하여 미국 뉴욕에 보금자리 를 마련했다. 제주를 넘어 세계와 교류하는 시대이다. ‘말을 키우려 면 제주로, 사람을 키우려면 서울로’라는 고어(古語)는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이다. 후손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자아실현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길 두 손 모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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