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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과 군함도 ... 식민국가 민족이 겪었던 설움[김선완의 시론담론] 부끄러울 줄 모르는 일본의 문화유산 … 공개하지 않는 진실
김선완 객원논설위원  |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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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31  09: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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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 포스터

‘군함도’의 열풍이 한 여름 처럼 뜨겁다. ‘강제징용’ 이란 무거운 주제인데도 관람객들은 마치 우리 조상들의 아픔을 현실처럼 받아 들였다. 어른들의 관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관람했다. 아내는 영화속 한국인들의 죽음을 보고 연신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다.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모든 관람객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군함도’의 흥행이 가파르다. 지난 26일 개봉 된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는 첫 날 97만명의 입장객에 이어 28일까지 200만명을 기록, 주말을 지나면 300만명이 넘어 설 것으로 보인다.

첫날 입장객은 역대 1위를 기록한 흥행작 '명량'(전체관객 1761만명)과 비슷하다. 첫날 영화 배급사인 ‘외유내강’은 전국의 스크린 2027개를 확보, 독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3일째에도 1961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돼 최근 개봉된 다른 영화사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다가 일본 언론들과 네티즌들도 영화의 내용을 두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그들은 영화 ‘군함도’가 ‘하시마 섬’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이야기 등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18km 떨어진 작은 섬으로 본명은 하시마(端島)다. 하시마 섬은 동서로 160m, 남북 480m, 둘레 1.2km 정도, 축구장 세 개 정도의 크기다. 좁은 섬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면서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10년 일본인 어부가 우연히 석탄을 발견한 뒤 1890년대부터 미츠비시가 해저에 있던 석탄을 캐내기 시작했던 곳이다. 일본은 당시 1,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제철소 용광로에 필요한 석탄을 캐기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군함도'는 최근 강제징용자 실태를 잘 알려주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일본이 2015년 하시마 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국내에 크게 알려졌다.

   
▲ 군함도

그들은 조선인 강제징용의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단긴 아픈 역사를 지운채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란 이름으로 조선과 제철소 등 23곳을 등재시키려 했다.

이 때 우리나라의 외교적인 항의가 계속되자 그들은 ‘2017년 12월까지 과거 한국민들의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기념물을 세우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래서 통과됐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시마 해저 탄광은 한 때 체류자가 5000명이 넘기도 했으나 1974년 86년만에 문을 닫아 무인도가 되었다. 방치된 섬은 ‘배틀 로얄’이란 소설과 영화의 배경에도 나왔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나카사키항 등에서 정기적인 크루즈 관광선이 이곳을 왕래중이다.

2015년 MBC '무한도전'의 '배달의 무도’ 편에서 하시마 섬을 집중적으로 다뤄 관심을 끌었고, 작가 한수산 씨가 긴 시간의 자료조사와 현지탐방을 거쳐 2016년 소설 '군함도'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5년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1945년까지 20대 전후의 조선인 약 800명이 군함도로 끌려갔고, 이중 134명이 숨졌다.

하시마 섬의 해저 탄광은 생지옥이었다. 해저 터널의 좁다란 막장에서는 거의 눕다시피한 자세로 하루 10시간씩 석탄을 캐냈다. 탄광 온도는 45도를 넘나 들었고, 유독 가스가 수시로 나와 폭발사고의 위험도 컸다.

   
▲ 김선완 객원논설위원
하시마 섬 탄부였던 이인우 씨(92)와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어린생활을 보낸 뒤 돌아온 최장섭씨(88), 구연철씨(86) 등의 증언에 따르면 해저탄광의 열악한 작업 조건과 영양 실조 등으로 사망하는 인부가 많았고, 일부는 탈출을 감행하다 익사하거나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기록은 조선인 징병으로 군인, 군무원, 보국대 등으로 끌려온 인원은 36만4186명(군인은 육군 18만6980명, 해군 2만2299명 등 20만9279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기록과 조사에서는 징병자 외에 탄광, 조선소, 비행장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한 징용자는 모두 300만명에 이른다.

필자의 아버지도 당시 큰 아버지 대신 18세 나이로 미츠비시가 운영하는 비행장 건설현장으로 강제징용을 다녀 오셨다. 아버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육남매 자식들을 모아 놓고 “나라 잃으면 강제징용과 같은 설움을 당한다”고 하셨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강제징용의 중노동이 남긴 지병에 평생을 힘겨워하시다 일찍 생을 마감하셨다. 억울한 가정사지만 힘 없던 시절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눈물이기도 하다.  [제이누리=김선완 객원논설위원]

김선완은?=영남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정치부·사회부 기자 생활을 거쳐 현재 에듀라인(주) 대표이사. 한국리더십센터 영남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경북외국어대 통상경영학부와 경북과학대학 경영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산학연구원 이사 및 부원장, 대구·경북 지방자치학회 연구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마케팅의 이론과 실제’, ‘판매관리의 현대적 이해와 해석’, ‘리더와 리더십’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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