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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30) 성적 욕망에 대한 강력한 방어

 

 

6개월 전이다. 30대 중반 여성 S씨는 화가 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미혼이다. 좋아하는 외국 배우가 있다. 애도 있는 유부남이다. 2달 전에 20살 가까이 어린 여성(그 나라 연예인?)이 그를 유혹했으며 이제 그 여성과 가깝게 지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화가 난다. 울기까지 했다. 더 절망스러운 일은 팬 카페에 들어가 댓글들을 사전 찾아 번역하며 다 읽어보았는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희희낙락 좋은 댓글만 있다. 어쩌면 내 감정을 인정받지 못 할 거라는 건 나도 안다. 

 

최근에 다시 방문했다. ‘화병’이 생길 것 같다. 다른 병원에 다녀 봤는데 의사가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현실감을 찾으라고만 한다. 무시하는 것 같다.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없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듣기만 해주면 안 되나? 6개월 전 그 주제다.

 

그 외국 남자 배우도 비난했지만 그를 유혹한 어린 여성을 더욱 비난하기 시작했다. 슬쩍 옷을 벗으며 유혹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또 유부남이 나이 차가 20살이나 되는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는 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따진다.

 

팬 카페에 들어가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회원 가입이 되지 않아 더 미치겠다. 솔직한 이야기로 그 여자부터 죽이고 싶다. 8개월 이상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른바 ‘광팬’인 셈이다.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이라면 일시적으로 그런 마음도 품을 수 있으리라. ‘우리 오빠를 누가. 가만두지 않겠어.’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났고 분노와 증오는 더욱 커졌다. 처지가 안 돼서 그렇지 입장바꿔 S씨가 그 여성이라면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이냐고 물었다.

 

자신은 ‘순수한’ 팬일 뿐 그 여자와는 다르다고 했다. 유부남이에요, 유부남. 만약 그 남자 배우가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결혼을 안 했거나 이혼했거나 사별했거나, 그 여성에 아무런 감정도 안 느꼈을 거 같으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질투다. 

 

S씨는 결혼을 두려워한다. 어머니가 결혼을 하라고 보채며 선을 몇 번이나 봤지만, 어머니 입장 때문에 억지로 나갔을 뿐이다. 나가서도 상대 남자에게 미리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통제가 심했다. 어머니를 원망한다. 하지만 독립할 자신도 없다.

 

한 두 번 면담으로 정신역동까지 추론할 수는 없지만 S씨는 성(性) 억압이 심하다. 억압이 심한 만큼 환상은 더욱 커진다. S씨가 생뚱맞게 “윤리”를 내세워 그 여자를 비난하는 건 성적 욕망에 대한 강력한 방어라고 생각한다. S씨에게 성적 욕망의 자각은 무서운 위협이다.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을 쓴 게 1930년이다. 원 제목은『문명 속의 불행』이었다. 문득, 그 제목이 S씨에게 더 걸맞다는 생각을 했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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