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53)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경산(景山)은 자금성(紫禁城)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맞은편에 있다. 원(元)대에는 대도(大都) 성내에 있었던 작은 토산으로 청산(靑山)이라 불렀다. 명(明) 영락(永樂) 14년 궁전을 건축할 때 원나라 때 옛 성을 허물고 자금성을 보호하는 해자(垓字)를 만들면서 나온 흙을 그곳에 쌓아 만세산(萬歲山)이라 불렀다. 원 왕조의 왕기를 누른다는 뜻으로 진산(鎭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황궁을 지으면서 그곳에 매탄(煤炭)을 묻었다 하여 속칭 매산(煤山)이라 하기도 한다. 숭정(崇禎) 17년(1644) 3월 19일 새벽녘 이자성이 농민 봉기군을 이끌고 북경을 공략하자 숭정 황제 주유검(朱由檢)은 궁성을 나선 후 매산 동쪽 기슭의 홰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고 전한다. 청(淸) 순치(順治) 12년(1655)에 경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7년 1월 북경지역 원격탐지 결과전람회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원격탐지로 찍힌 북경의 경산공원 평면도를 보면 가부좌를 튼 사람의 모양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경산 좌상(坐像)’이다. 조작한 것이 아닌 정밀한 원격탐지 기술로 측정한 것이다. 원림 북부 수황전(壽皇殿) 건축군은 ‘좌상’의 머리 부분이고 대전과 궁문은 눈, 코, 입처럼 구성돼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에는 웃음을 짓고 있다. 수염부분은 송백이요 어깨, 흉부, 손과 발은 남부의 산이다. ‘경산 좌상’은 과학계와 고고학계에 흥미를 자아냈다. 몇 년 동안 전문가들이 연구와 고증을 했으나 수확은 그리 크지 않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나중에 ‘경산 좌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다. 무당산(武當山) 권법 연구가 담대강(譚大江)이 연구 분석을 통해 북경의 ‘경산 좌상’은 무당산 ‘자소(紫霄) 좌상’처럼 모두 도가(道家) 양생(養生)의 도식이라고 했다. ‘경산 좌상’은 도교의 신으로 ‘좌상’의 머리에 관이 씌워졌고 얼굴에는 수염을 있으며 두 손은 배에 합쳐져 있어 도교의 신(神) 모양과 특히 부합된다고 본 것이다. 즉 진무대제(眞武大帝)와 닮았다는 것!

 

원래 ‘경산 좌상’은 명 왕조 영락 연간에 세워진 낮은 언덕처럼 생긴 산이다. 명 성조(成祖) 주체(朱棣)는 남경을 공격해 황위를 찬탈했다. 그 당시 진무대제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즉위 후 궁을 세우고 전무대제에게 보답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보다 앞서 담대강과 관련 인사들이 무당산 고(古)건축물들을 연구하던 중 무당산 자소궁(紫霄宮) 건축물들이 주위의 산세와 어울려 인체 형상처럼 교묘하게 안배해 지었음을 알게 됐다. 사람 모양처럼 보였기에 ‘자소 좌상’이라 불렀다. ‘경산 좌상’과 격은 달라도 정교한 솜씨가 같은, 즉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라 보고 둘 다 도교 양생지도(養生之道)의 안내도라 했다.

 

그런 추론에 사람들은 건축설계가 도교의 양생을 말하는 도식이라면 어찌 쉽게 알아차릴 수 없도록 숨겼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담대강은 도교의 경전인 도장(道藏)은 무척 방대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으나 시종일관 하나의 바람, 즉 ‘장생불로’로 귀결된다고 했다. 도교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도의를 바탕으로 수성(修性)하고 진원(眞元)을 수련하는 것으로 그 오묘함을 세인들에게 알리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나 도교에서 가장 강구하는 것은 ‘충허(沖虛)’, ‘염담(恬淡)’으로 고결한 심리와 관념의 지배아래 그들은 또 ‘천기(天機)’를 아무렇게나 ‘속인(俗人)’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심혈을 기울려 건축디자인으로 일반인들에게 ‘암시’해주려고 그런 현묘한 방식으로 배치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경산 좌상’은 도가의 기공을 연마하는 도식이란 뜻이다. 북경 경산공원의 건축물 배치, 방위, 그리고 건축 명승지의 명칭이 모두 도가(道家) 내공(內功) 수련의 술어와 부합되며 도가 수련의 술어는 결국 은어(隱語)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럴까? 어쨌든 이러한 오묘한 추론은 ‘경산 좌상’에 대해 신비를 더해주는 것을 맞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있는 것을 있는 것 그대로 보지 않고 비슷한 것을 끌어들여 무엇인가 신비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인간의 원초적 호기심이 만들어낸 허상을 아닐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