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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세밀화명상(13) 꼭 진지하지 않아도 절제만 있다면...

 

시골흙집에서 살아보기 위해 사는 이 없이 거의 10년째 방치해 허물어진 부뚜막을 손 보고 금이 간 바닥은 두께 15cm 넘게 황토몰탈로 덧씌웠지만 연기가 새는 듯하다. 기대한 대로 자고나면 상쾌해야 할 시골흙방에서의 잠자리는 그렇지 않았다. 개운치가 않다.

 

그래도 바닥은 뜨끈하고 하루를 때면 이틀 이상을 가니 열이나 시간에서나 매우 효율적이었기에 환기를 시켜가며 지내왔는데 동네 칠순 노부부가 나무로 때는 이런 방에서 밤새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덜컥 겁이 일었다. 아들이 듣고 이내 온돌을 흉내 낸 전기장판을 보내왔다.

 

시골흙집에서 드디어 살게 됐다는 기쁜 흥분은 잠시잠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생활로 접어들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매사 그렇듯이 선택과 결정에서 온 부정이었다. 그리 야단을 떨고 서울을 떠나더니, 그리 법석대고 시골찬양으로 떠들어대더니 결국? 고작? 너도 별 수? 이런 류의 자기부정이었다.

 

심리이론에 인지부조화론이라는 게 있다. 틀리든 맞든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믿으려고만 한다는 인간의 심리가 내게는 이론조화론-남의 이론,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꿰맞추기-으로 치환돼 자기부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몇 달 겁 집어먹고 방치했던 부뚜막을 다시 손을 봤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게 부뚜막도서관이다.

 

기성 부뚜막으로의 기능 대신 연기로 60년 검게 그을려 먹칠된 천장을 살리고 아궁이를 막고 벽엔 나무널판을 층층이 세워 책으로 채웠다. 그리고 기껏 없애놓고는 이름만 살려 부뚜막도서관이라고 현판까지 걸어 놨다. 석 달 넘어 걸린 더딘 작업 끝에 만들어냈지만 혼자 해냈다는 건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 자뻑은 은근히 자랑으로 이어졌고 슬쩍 또 다른 방을 기웃거리게도 했다.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문간사랑채를 넘보게 되었다. 허물려던 방을 고쳐봐? 부뚜막이 없어진 뒤로 아궁이 불로 데워진 방에서의 찜질이 더 그리워지기도 했다. 한 번 해본 가락이 경력이며 한 번 맛본 오락이 이력이라고 재도전의 힘으로 발현됐다. 역시 더디더디지만 해내고 말았고 불을 지피던 첫 날, 방바닥이 얼마나 뜨뜻하던지 마침 걸려있던 감기까지 그 첫날밤에 물리칠 수 있었다. 부뚜막 하나로 오락가락 즐겨 노니는데 동네 할아버지가 보더니 잘 해놨다며 칭찬을 얹어주신다.

 

“요즘 여자들, 자궁암이라는 거 잘 걸리는가 본데, 부뚜막에서 아궁이에 불 지피며 살아야 했던 때엔 여자들이 그런 몹쓸 병은 걸리지 않았지. 불은 아궁이에만 지펴진 게 아니거든. 두 발 쩍 벌리고 있던 거기로 아궁이 불이 술술 들어와 몸도 지피니 자연 여자 몸에도 좋았던 거지.”

 

19금 같은 얘길 대낮에 서슴없이 해대기에, 남우세스럽기 해서 피할 겸 남자에게도 좋을까요? 물었다.

 

“좋지, 왜 좋지 않겠어. 우리가 힘든 농사 매년 지어내면서도 자식 예닐곱 거뜬히 만들어 키워냈던 게 바로 이 아궁이의 힘이지. 뜨겁게 몸을 지지다보면 밤에 힘이 솟고 아침이 개운하거든. 여기 집들, 다 양옥으로는 바꿔놨지만 새집 양옥은 비워두고 나무로 불 땐 방에서 다들 살고 있잖은가. 요즘은 일부로 비싼 돈 줘가며 찜질방엔가 가는가 본데 어디 그런 곳에 비교하겠는가. 암튼 잘 해놨어. 여기서 자고나면 몸이 더 좋아질 걸세. 근데 자네는 참으로 구식이네, 우리처럼.”

 

구닥다리라고 다 내팽개쳐 버릴 일은 아니라며 훈수 한 마디 더 얹어주고 가는 팔순 어르신의 뒤태가 전혀 구닥다리 같아 보이질 않고 씩씩도 하여 그의 말씀이 신뢰가 간다.

 

칭찬도 받았겠다, 마침맞게 아궁이에 솥 두 개를 얹고 보니 꼭지 두 개가 여자로 연상된다. 아궁이 속이 자궁으로까지 상상연장되며 남상거리게 된다. 벽면 일부분을 여성으로 부조하고는 스스로 좀 염치가 들었던지 이서구의 그림책을 꺼내 그 위 황토벽면에 옮겨보았다. 벽에다 따라 그리기인데 거친 황토흙벽이라 세세하게 그려낼 재간도 없거니와 그럴 재능도 없어 투박한 선으로 스윽 그려냈다. 별 것 아닌 그림도 보고 있자니 지가 그린 거라고 별별 생각으로 이어진다. 만여 년 전의 알타미라, 라스코 벽화, 고령의 암각화, 고구려의 무덤벽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절벽 위의 그림, 그리고 뉴욕 거리나 지하철의 그라피티...... 결국 내가 따라 그려본 벽그림을 낙서로 맺음한다.

 

나도 일부로라도 두 다리 쩌억 벌려 불을 때고 있을 때나 문간사랑채라 집을 드나들 때마다 그 앞을 지나며 보는 때나 자뻑으로 이어지는 기분으로 흐뭇하다. 그래서 만 년 전 동굴 속 인간들이 그려놓고 나처럼 자뻑을 즐겼던 건가. 주술이니 종교였다느니 하는 만 년 후의 해석은 왠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나도 그려놓고 보니 원시인 마음 같은 게 들더라, 이 말이다. 또한 굳이 따로 시간 내지 않고 별로 자리 잡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상에서의 명상이라 자연스럽다. 자뻑만한 긍정의 힘이 있을까. 자만에 빠지지 않는 절제가 곁들여지면 이만한 명상도 없다. 흐뭇한 얼굴이 꼭 진지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린애가 되어 해식 웃는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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