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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놀림에 주늑 든 아이가 뿌리를 찾아 긍지를 갖다

 

어려서 나는 문씨 성에 대한 긍지를 느끼기 전에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다. 벗들이 ‘뭉개 여덥발’이라 부르며 연체동물처럼 뼈대 없는 집안이라고 놀리면, 나는 그저 주눅 드는 아이였다. 커가면서 뭉개라는 말이 문가(文家)에서 비롯된 말임도, 임금께서 성을 하사한 유일한 고기가 문어(文魚)임도 깨치게 되니, 문씨 성에 대한 남다른 긍지와 자랑이 더욱 커져 갔다.

 

세종대왕인지 성종대왕인지 확실치는 않다. 글을 좋아하는 대왕께서는 먹물이 떨어질 정도로 밤늦게까지 글을 쓰곤 했다. 벼루의 먹물이 떨어지면, 내시는 문어 대가리에 있는 먹물을 대령하곤 했다. 그날도 밤새도록 시문을 짓고 글을 쓰다 보니 먹물이 떨어지자, 임금께서는 ‘그거’ 가져오라고 하명했단다.

 

내시는 준비한 문어 상퉁이 먹물을 대령하면서, ‘그거’ 대신에 이름을 지어달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생각에 잠시 젖은 대왕께서는, 글(文)을 짓고 쓰는데 도움을 주는 물고기란 의미로 문어(文魚)라는 교지를 내렸다 한다. 학창시절 나의 부친은 문씨가 고•양•부 삼성을 제외하고는, 입도가 가장 빠른 성씨라고 말하곤 했다.

 

왕명으로 제주에 예악문물(藝樂文物)을 갖고 온 입도시조는, 고려조정에서 대사간이라는 큰 벼슬을 지냈다고도 했다. 아들에게 가문에 대한 긍지를 갖고 조상에 누되지 않는 후손이 되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입도시조는 서기 1194년 고려 명종 때 대제학으로 제주에 온 할아버지이다.

 

시조이신 문착 할아버지는 성주인 고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후손을 낳고는, 조정에 귀의하여 벼슬을 마친 후에 고향인 전남 보성 복성현으로 돌아갔다 전한다. 그 후 4세기 가까이 문씨 가문의 여러 선조가 고려공신으로, 탐라왕자로, 조선조에서는 우도지관 (右都知管)으로 관직을 맡아 오늘의 제주를 일구는데 기여했음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문씨 입도시조인 문착 할아버지의 호인 남제(南濟)에서 연유한 ‘남제공파’ 가, 전국적인 종친회를 제주에 두고 있을 정도로, 제주에서 특히 후손들이 삶의 터전을 크게 일구었다. 다음은 ‘남평현읍지’에 실린 문 씨시조에 대한 기록이다.

 

 

 

고을 원님이 풍수가 빼어난 전라도 남평 땅을 지나는데,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말이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후에 말이 선 그곳은 장자못이라는 큰 연못가였다. 연못가에 감돌던 오색구름 이 높은 바위(문암文巖 바위라 함)로 향하여 가보니, 그곳에서는 울던 아기가 마치 원님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로 반겼다.

 

이를 어여삐 여긴 원님은 석함(石函)에 누운 아기를 데려다 키웠다 한다. 그때가 서기 472년으로 신라 자비왕 15년, 백제 개로왕 18년, 고구려 장수왕 60년 때였다. 아이는 자라면서 문무 책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을 만큼 총명하였다. 원님은 문사(文事)에 능통한 아이의 성을 문씨라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이라 지었다.

 

이 분이 훗날 신라조정에서 이사부 장군과 함께 큰 벼슬을 한 삼광 문다성 할아버지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문다성은 밝기가 해와 달과 같고, 빛남이 별과 같다.’ 하여 호를 삼광(三光)이라 지었다. 98세까지 장수하였다고 전하는 문다성 할아버지는, 신라조정으로부터 삼중대 광 벽상공신으로 남평백에 봉해지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필자가 찾은 전남 남평읍에는, 문씨 후손들이 장연 서원이라는 사당을 지어 시조를 비롯한 가문을 빛낸 여러 조상신위를 모시고 있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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